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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아야 하는 글을 쓴다는 건

by 글담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친 주말 끝자락의 오후.

반가운 이들과 함께 산책을나섰습니다.

옅은 붉은 빛의 노을을 기대하고 나섰지만,

아직 햇살은 대지를 환하게 밝히는 중입니다.

산책을 마칠 즈음에는 노을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길을 떠나기 전에 아직도 환한 대낮에 불 켜진 창을 봅니다.

창을 열어도 벽일 텐데,

아예 창을 열 수 없는 창인데,

노란 불빛은 아스라한 과거의 풍경을 소환합니다.

이 창이 있는 거리 자체가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라서요.


노란 불빛을 보며 쓰다 만 글의 이음을 고민합니다.

글이 글을 이끈다고 하죠.

지금 그런 상태인 듯한데,

어째 제멋대로입니다.

말고삐를 잡아당기듯 글 고삐를 잡아봅니다.


문장에 눈을 돌리니 의도가 자꾸만 숨습니다.

의도를 드러내자니 글은 딱딱한 훈계가 됩니다.

이쯤 되면 잠시 글을 덮어야겠죠.

눈을 감고 노란 불빛을 떠올리며 명상이라도 해야 할 듯.

사실 명상이라기보다 멍때리는 것이겠지만요.


조지 오웰은 예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최고의 예술은(그러니까 가장 완벽한 사고의 전달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참 어려운 말입니다.

살아남는다는 말의 의미 자체가 무거운 숙제로 다가옵니다.


최고의 예술을 꿈꾸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제 글이 다른 사람에게 살아남았으면 합니다.

그 일이 참 어렵군요.

의도를 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서술해야 할지,

자칫 서술과 문장에 의도가 묻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닌지.


의도를 아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고 하지만,

쓰는 이는 기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겠죠.

난해하게 저 혼자 아는 글을 쓰는 것은 오만일 테니까요.

설령 독자가 글쓴이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하더라도,

글쓴이는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의도를 글 곳곳에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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