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성을 느끼며 세상을 사유합니다

by 글담

비가 올 듯 말 듯 구름은 그저 흩뿌려져 있습니다.

노을을 보려 했더니 마치 거대한 기둥인 듯한 빌딩이 가로막았고요.

역광으로 빌딩은 그 찬란한 빛을 뽐내지 못합니다.

눈부신 기둥과 같은 빌딩보다 여백의 하늘에 더 눈길이 갑니다.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구름도요.


디지털 세상에 포위당한 이 순간에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봅니다.

픽셀의 하늘이 아닌 그 자체로서의 하늘을.

가끔은 사진 속의 하늘에 시선을 둡니다.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선을 두는 거죠.

보지 않으니,

하늘이 가슴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눈으로 하늘을 보듯,

귀로 일상의 속삭임을 듣습니다.

중간에 그 어떤 매개도 없이 주변의 소음과 수다를 듣는 거죠.

날것 그대로의 소리를 듣다 보면,

날것 그대로의 세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하루 대부분을,

매개를 통해 세상을 보고 듣습니다.

스마트폰과 이어폰으로 세상과 만나는 이질감.

내 생각을 앗아가는 시간.

글 쓰는 것조차 이처럼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


책을 읽고,

만년필로 일기나 메모를 하고,

간혹 눈과 귀를 열 때,

물성을 느끼며 세상을 사유합니다.

계절이 바뀐다는 것도 미묘하게 알 수 있고요.


찬란한 햇빛이 누그러질 때,

빗방울이 툭툭 떨어질 때,

손을 슬며시 뻗어 햇살과 빗방울의 열정과 냉정을 만지작거립니다.

사유를 데우고 식히는 순간.

어느덧 공책을 펴고 긁적입니다.

쓰다 만 글을 이어가며 끙끙 앓으면서 손가락으로 세어 봅니다.

마감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 머리가 지끈거리는군요.

커피를 들이켜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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