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의미

by 글담

아직은 여름인가요.

바람은 몸을 둘러싼 열기를 한 꺼풀 벗겨 내주는데,

햇볕은 벗긴 더위의 곱절을 더 해 입힙니다.

조용한 교정을 거닐 때도 가을의 모습보다 여름 흔적이 더 남아 있습니다.

능소화는 여전히 고운 자태를 숨기지 않고요.


능소화도 찬 바람이 불면 제 흔적을 지우겠죠.

그 사라짐은 자연스러운 것일 터.

억지로 살리려 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흔적을 지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니 떠날 뿐이겠죠.


그저 스쳐 지나가며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았을 뿐이지만,

가끔 존엄한 사라짐이 떠오릅니다.

이를테면,

존엄한 죽음과도 같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죠.


생의 끝자락에 있는 분들이 병상에서 연명치료를 거부해도 온전히 평온을 얻기는 힘듭니다.

병원은 환자에 대한 책임을 내세우며 숨이 붙어 있는 한,

생명 유지를 위한 온갖 처치를 하기 때문이죠.

그렇지 않으면 처벌을 받는다고 하니 어쩔 수 없겠죠.

그 상황에서 환자는 자신의 마지막을 고통의 시간으로 살아야 합니다.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가족으로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곡기를 끊을 자유도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당사자의 존엄도 눈 감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게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될까요?

집에서 평온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옵니다.

이제 곧 마지막 계절인 겨울이 오겠죠.

평온한 겨울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능소화를 바라봅니다.

그때는 없겠지만,

아스라이 사라졌을 능소화를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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