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과 경계의 울타리를 낮출 수 있다면

by 글담

등불이 위를 밝히니,

등불 아래는 옅은 어둠이 번집니다.

바깥이 어두워질수록 등불 위는 더 밝아지고,

등불 아래 어둠은 더욱 짙어지겠죠.

한여름보다 한겨울에 어울리는 등불을 보니,

얼마 전 골목을 지날 때가 떠오릅니다.


“어, 이 시간에 2층에 불이 켜졌네?”

“그냥 켜둔 게 아닐까요?”

“한번 올라가 볼까?”

골목길을 지나 익숙한 성당 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한동안 부지런히 오가던 공간의 불빛을 보니 반가웠나 봅니다.

아이들을 위한 밥상을 하느라 거의 매주 찾아갔던 곳이었으니까요.


살짝 올라가 보니 두 사람이 대화 중이었습니다.

조심스레 올라간 발걸음을 다시 되돌려 내려오는데,

누군가 나와서 어떻게 왔냐고 묻습니다.

뒤돌아보니 성당의 신부님입니다.

예전에 함께하던 신부님의 후임으로 오신 분인데,

그날 처음 본 사이라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흘렀죠.


예전에 밥상을 함께하던 사람들이었다고 밝히며 돌아가려 하자,

신부님이 다시 부릅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좋다면서요.

올라가니 따뜻한 차 한 잔과 이야기 밥상이 펼쳐집니다.

자칭 아나키스트라는 신부님의 넉살에 웃으며 수다를 떱니다.

추운 겨울밤,

아무 때나 들를 수 있는 사랑방의 공동체가 새삼 그리운 날입니다.


연대와 환대.

요즘 부쩍 이 두 단어의 관계를 생각하곤 합니다.

무작정 손을 맞잡자는 것도 아니고,

익숙한 사이에서의 환대도 아닌,

낯선 이들과의 연대와 경계 없는 환대.

참 어려운 숙제입니다.


낯섦과 경계의 울타리를 낮출 수 있다면,

그 어떤 갈등도 파괴적인 게 아니라 건강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원래 민주주의는 갈등을 먹고 자라는 시스템이니까요.

그 갈등이 증오와 절멸의 주문으로 커지는 것은 혐오와 차별 때문입니다.

내 안에도 이 불씨가 남아 있을 수도 있겠죠.

끊임없이 자성을 하고 성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인간들을 만나야 하죠.

즉 다양한 이웃들을 보러 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