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가져오라는 선배의 말에 달려간 그곳은 가을이었습니다.
시간을 한움큼 쥐고 찾아갔는데,
그 시간은 밥집을 찾느라 써버리고 말았네요.
원래 가기로 한 곳은 하필이면 쉬는 날이었고,
두 번째 찾아간 곳은 건물이 통째로 사라져 헛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세 번째 찾아간 곳은 고진감래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간 모래처럼 떠나보낸 시간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찾아간 강가는 고요했습니다.
따가운 땡볕 아래 산책이 달갑지만은 않았지만,
걷다 보니 마침 구름이 해를 가리고,
바람이 몸을 한 번 감더니 슬며시 흘러갑니다.
늦더위라고 해도
바람만은 가을이었습니다.
바람이 나를 감싸고 강으로 흘러갈 때,
코스모스는 살포시 고개를 숙이며 꽃잎을 팔랑거립니다.
산책길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덩그러니 놓인 배가 보입니다.
찬연한 가을 햇살 아래 배는 온몸을 드러낸 채 드러누웠습니다.
더는 갈 곳도,
나를 것도 없다는 듯 이 나루터에서 저 나루터로 다니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순간 삶의 한가운데 맨몸으로 서 있는 나를 떠올립니다.
나는 무엇으로 채우고 싣고 나르고 어디로 가는 걸까요.
머리가 복잡하니 저 배처럼 한곳에 머물고 싶습니다.
강가에 홀로 남은 배를 보니,
갑자기 읽다 만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잠시 일을 제쳐두고 읽어야겠습니다.
그 소설의 제목이 내 오랜 시간의 안식처라서 자꾸만 눈에 밟히네요.
종이에 물이 번지듯,
커피 원두가 뜨거운 물에 부풀어 오르듯,
내 마음속은 이미 그곳의 오랜 기억으로 뭔가가 차오릅니다.
가을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