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에 글을 써내려간다면

by 글담



“여긴 또 오고 싶네. 그때는 하루 이틀이 아니라 당분간 머물 곳으로 말이야.”

여정이 중반을 넘어갈 무렵,

여러 곳을 지나치며 들렀던 공간과 숙소 중에서 유독 마음을 내려 놓았던 그곳.

프랑스의 아라스는 작은 도시입니다.

한적한 광장을 돌아다니며 서툰 영어로 말을 주고받던 곳.

무엇보다 숙소에서 바라본 어스름이 내려오던 해 질 녘의 풍경,

지친 여행자를 달래줄 마법에 홀려버렸습니다.


“여행이 아니라 머물고 싶다.”

저절로 속내가 입밖으로 튀어나옵니다.

물론 낯선 곳에서 느끼는 정주의 희망도 어쩌면 여행의 환상일 테죠.

그걸 알면서도 머물고 싶다는 것은 지친 일상이 아직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겠죠.


너른 광장을 노닐다가

좁은 골목을 헤매다가

이름을 알 수 없는 건물과 나무와 사물에 눈길을 빼앗기다가

층층이 쌓인 시간의 노곤함을 조금씩 허물어 갑니다.

그러다가 숙소에 돌아오니 해는 뉘엿뉘엿 내일을 위해 쉬러 갑니다.

3층 방에서 바라본 석양은 차츰 흐릿해집니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 때문일 테죠.

눈물을 먹물 삼아 노을에 글을 조금씩 써내려 갑니다.

한동안 쓰지 않았던 글을 쓰려니 쉬이 글이 써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쓰겠다는 마음을 먹었으니 다행입니다.

다시 글쟁이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말이죠.


쌀쌀한 날씨가 한순간에 따뜻한 공기로 바뀌어 가볍게 입고 나가는데,

주말에 무려 한파가 온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뜬금없는 날씨 소식에 가을을 즐기던 그때 그곳이 떠올랐습니다.

누구나 다 마음속에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이 있겠죠.

오늘 하루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을 때,

그 덧없음을 떨쳐냈던 그때 그곳을 떠올렸으면 합니다.

한순간의 위로가 아니라 다시 걸어갈 힘을 얻기 위해서라도,

잠시 쉬어가는 게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기 위해서라도,

오늘 저녁,

노을에 글자 하나하나 엮어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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