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동 트기 전에 꺼내 든 시집은 고요합니다.
어느 시인이 시를 읽을 때는 음악이라 생각하라고 했죠.
그러니 조용한 음악이라고 해도 틀어 놓으면 두 곡의 음악이 겹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시인의 말대로 아무런 소리 없이 조용히 시를 노래하듯 읽습니다.
또 다른 시인의 표현처럼,
“고요가 더 고요해지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시를 읽고 나면,
희끄무레 밝아오는 이른 아침에 전화기가 몸을 떱니다.
매일 새벽, 혹은 밝아오는 아침에 안부를 전하는 글모임의 인사가 도착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중 한 분이 시를 한 편씩 소개합니다.
시를 읽으면서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시가 담은 노랫말의 의미를,
또 하나는 이 시를 지었을 때의 세상을.
계몽적이거나,
또는 견뎌내라는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시대와 시를 실로 엮어 봅니다.
종이냄새 잔뜩 나는 신문을 읽고 커피를 마시면 새벽의 일상은 마무리됩니다.
다시 한번 고요가 더 고요해지는 순간이죠. 그럴 때는 세상의 고요를 더 느끼려 밖으로 나섭니다.
달과 별이 또 한 번 편지를 보내는 듯한데,
오늘은 편지를 열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하염없이 바라만 봅니다.
하얀 입김을 쏟아내며 손을 비비곤 세상의 고요를 온몸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그 고요가 침묵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이 시작되는 순간을 알리는 듯 지나가는 시내버스는 고요를 깨트리지 않습니다.
고요의 또 다른 고요가 되어 고요의 풍경으로 마음속 깊이 들어옵니다.
고요한 곳을 찾아 떠났던 곳에서 본 하늘 아래 고요의 불빛.
고요가 침묵이 아니듯,
고요는 어둠을 뜻하지 않습니다.
불 밝힌 전구는 이제 곧 어둠이 온다고 알려줍니다.
그렇게 속삭이는 빛의 소리가 제법 고요합니다.
이제 돌아가서 책을 좀 정리해야겠습니다.
방에 고요를 더하는 책의 고요한 내음도 좋지만,
두 발 뻗고 누울 수는 있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