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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Aug 07. 2022

95_ 아직 젊든, 이미 늙었든 오늘부터 시작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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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깊이 새겨진 배갯잇 자국은 예전엔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사라지더니 이젠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도 선명하다. 여름에 모기 물린 자리는 2달이 지난 지금도 원래 피부색으로 회복하지 못해 거무스름하고, 입가에 주름은 한 해가 다르게 깊어지며, 떨어지는 체력에 챙겨 먹는 영양제만 3개가 넘는다. 20대에는 관심도 없던 영양제인데.


20대가 다 끝날 무렵까지도 입가에 주름이 나한테도 생기긴 하는 건가 의문을 가지며 살았다. 겨울에도 얇은 청바지 하나 딱 입고 나가도 추운 줄을 몰랐다. 근데 지금은 기모 바지 아니면 밖을 나갈 수가 없다. 너무 추워서 미치겠다.


그래도 아직은 젊었다.

그래서 돈이 없는 것이 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의 나이가 오십 중반을 넘어가니 젊음에 가려져 있던 가난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가장의 취업, 안전하지 않은 직장으로 인해 언제 수입이 끊길지 몰라 불안했고, 이전과 다르게 부모님에 앓는 소리에 병원비 걱정부터 됐다. 무엇보다 사치스럽게 살지 않았는데도 아직도 속옷 하나 사는데 그 값을 고민하며 사야 하는 게 이상했다.


가난은 하나둘 일상에서 그 존재를 드러냈다. 서서히 숨통을 조이면서. 그때쯤 생활이 작년보다 더 가난해졌다는 걸 매일 실감했다. 남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빈곤이 우리 가족의 발끝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인생은 점점 찰랑거리던 빈곤 속에 발을 담그기 마련이다. 서서히 허벅지로, 배꼽으로, 가슴으로, 그러다 턱밑까지 깊이 들어가 차오르는 가난에 괴로워하게 될 거였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물쩍 넘어갔다가는 여유는커녕 떨이 채소와 유통기한 임박한 식재료도 큰맘 먹고 사다 먹다가 나중에는 뱃속에 동글동글 이상한 혹이 잡혀도 병원비가 무서워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는 그 지경에 이르고 말게 훤했다. 두 분은 이미 노쇠한 몸으로 입에 풀칠하는 게 힘에 부친 지 오래시다.


그래서 감히 ‘나중에 해도 되겠지’라는 말을 내뱉지 못한다. 오늘 조금씩 준비한다. 부모님에게서 본 인생이 너무도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매일 늙어가는 게 너무도 실감이 난다. 서른부터는 미친듯이 사십을 향해 달려가니 지금 당장 노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우물쭈물하다가 마흔 중반에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고 망연자실하며 지금의 나를 원망할 미래의 내 모습이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해야 나의 20년, 아니 내년이 편해지고 내 미래가 좋은 쪽으로 바뀐다. 오늘에 행동이 내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삼십 년을 넘게 살면서 몸소 체험한바, 노후 준비는 지금부터 조금씩 해두려 한다.


‘미리 좀 해둘걸….’ 이런 후회 더는 하고 싶지 않다. 이미 지겹도록 해봤다.


부자가 되는 건 버겁게 느껴져 도전을 포기하더라도 비참한 빈곤에서 멀어지는 것만큼은 해내야 한다. 즐길 거 많고 살기도 좋은 현시대에 사람답게 소소한 행복 챙기며 재미나게 살려면 누구든 빈곤에서만큼은 한 걸음 크게 물러서야 한다.


월급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득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아닌데 그걸로 인제 와서 뭘 할 수 있을까 싶겠지만, 뭐라도 한 우리 집은 5년 동안 재무 상태는 많이 안정되었고 더는 돈을 걱정하며 병원 가기를 망설이지 않게 됐다. 여전히 가장의 실직은 타격이 크기는 하나 그로 인해 먹고살 걱정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두 분의 70대를 상상하면 떠오르는 건 근심, 걱정이 아니라 작은 여유와 희망이다.


노후 준비를 시작할 당시 부모님이 60~70대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년이었다. 길다면 긴 시간이다. 빈곤에서 멀어지기 충분한 시간. 물론, 그동안 적은 소득으로 연금, 비상금, 보험 등을 마련하느라 빠듯해진 생활이 괜찮지는 않았다. 어려운 노력은 아니었으나 실천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아주 가끔은 금액이 불어나는 속도는 느리고 문득문득 단번에 해결되지 않는 가난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음이 심란하기도 했다.


하지만 뭐라도 해야 했다.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그게 도움이 될까 하는 의심은 정말 쓸데없는 시간 낭비였다. 늦게라도 시작해야 한다. 남은 생을 가난에 허덕이며 살기 싫다면 그래야 한다. 이미 늦었다고 손을 놓기에는 내가 살날이 얼마나 길지 알 수가 없다. 내 나이가 몇이든 발끝에서 찰랑거리는 빈곤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


팔십이 넘었다면 나중을 위해 준비하라고 권할 수 없지만, 50~70대 초반까지는 그래도 나중을 생각해서 자금 준비 좀 해둬야 하지 않냐 걱정 어린 말을 건네게 된다. 어쩌다 10~40년을 더 살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50대가 60대로, 60대에서 70대로 넘어가기까지 걸리는 1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지 않다. 삶을 바꾸어 놓기에 절대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꾸준히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중·고등학생도 할만한 정도의 노력으로 매달 불로소득 70~100만 원 정도는 확실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게 빈곤은 물론, 가난에서도 크게 한 발짝씩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젊은 나이라 아직 멀었다며 혹은 이미 늦었다며 포기하지 말고 늦게라도 시작하자. 최소한 자신의 인생이 빈곤을 향해 걸어가는 꼴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은 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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