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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an 16. 2022

5_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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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널다 보니 낡은 잠바와 보풀이 잔뜩 일어난 옷수두룩하다. 하루 이틀 입어서 생긴 게 아니다. 생전 보이지 않던 그 보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집안일 일부를 도맡아 하고부터였다. 식사와 설거지 역시도 그랬다. 주방일을 시작하면서 부모님의 입맛은 물론 건강과 기분 상태에 따라 식단을 달리하면서 자연스레 두 분의 상태를 신경 쓰게 되었고 그때서야 두 분이 무표정으로 말 한마디 없이 식사하시는 날이 대부분이라는 걸 알았다.


그동안 부모님이 그럭저럭 즐거운 삶을 보내시는 줄 알았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에 앉아 내 인생만 신경 쓰며 살 때는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두 분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요즘 기분은 어떠신지~ 어디가 아프신지 딱히 알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으므로. 집에 빚이 없고 간병해야 할 만큼 아픈 이도 없어서 이 정도면 행복한 인생이라 여겼다.


이번 주에는 치킨을 시켜 먹고

다음 주에는 방어회를 사 먹을 정도는 되니

괜찮은 삶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머니 혼자 감당하셨던 식사, 빨래, 두 분의 출·퇴근을 챙기는 등 집안일에 일부를 맡아하고 집안에 지출까지 세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지독하게 무미건조하고 군데군데 가난하여 즐겁지 않은 두 분의 단조로운 생활이 잔뜩 널려있다. 행복한 건 정말 아주 가끔 잠깐 있다가 간다.


출퇴근, 식사, TV나 휴대전화 보기, 산책이 전부이신 아버지와 일하러 가지 않는 날에는 삼시 세끼를 차리고 중간중간 산책이나 장을 보러 가는 게 전부이신 어머니. 어린 자식 재롱 덕에 터지던 웃음소리는 벌써 20년 전에 끝났고 그즈음에 어울리던 사람들도 안 본지가 오래다.


부부 사이에 불화와 빠듯한 월급으로 사는 게 바빠서, 생활에 여유가 없어서 아이들이 다 크고 난 후에도 여전히 일하느라 지치고 생활이 쪼들리는 건 변함이 없다. 자신을 포함하여 가족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하는 그 부담감과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내놓는 희생이 여전함두 분은 웃음을 잃었다.


회사와 집만 오가는 무한 반복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우울증을 안겨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게 내 부모님에게는 예외인 줄 알았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사셨던 분들이니까. 그 우울한 일상이 두 분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염색으로 까맣던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가까이서 보니 그 속은 새하얀 눈밭이 따로 없다. 몸이 아파도 일을 나가야 하고, 쉬고 싶어도 쉴 수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돈 생각에 망설이게 되고, 여행에 다녀오신 분들에 이야기를 들으실 때 두 분에 눈썹 끝이 아래로 축 내려앉는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았다.


무심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는 사정이다. 곰팡이가 피고 유리는 깨져서 엉망인 20년도 넘은 거실장을 깨끗하고 쓸만하게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삶도 그럭저럭 괜찮다고 여기고 만다. 부모님의 얼굴, 부모님의 표정, 부모님의 하루, 부모님의 일상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


그러니 자식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손을 벌릴 수 있는 것이다. 부모의 고된 삶을 알면서도 아버지의 인생보다, 어머니의 인생보다는 내 인생이 힘든 것이 싫다며 돈, 육아, 살림을 도와달라고 할 수 있는 건 부모가 겪는 불행은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긴, 실하고 위태로운 부모의 삶은 자식에게는 외면하고 싶은 거긴 하다. 그저 무심하면 내 마음은 편하니까.



'내 엄마, 아빠가 이렇게 살고 있었다고?' 



그걸 아는 순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면으로 두 분의 삶을 바라보며 두 분이 처한 처지와 기분을 알고 난 후로 내려앉은 가슴은 올라올 기미가 없다. 좋아하는 연예인은 코 옆에 점이 어디가 있더라, 턱 밑에 피부 트러블이 올라왔더라 귀신같이 알고 옆에 지나가던 사람이 맨 가방이 샤넬이라는 건 스치기만 해도 알면서 같이 사는 사람의 피부에 검버섯이 피고 주름이 깊게 파이는 건 알아채지 못했다. 그동안 부모님을 대충 흘겨보고 산 탓이다.


이제는 1만 원짜리 옷만 사 입으시는 것이 궁상이 아닌 절약이고 300원짜리 봉지 커피 한 잔이 여유가 아닌 한숨인 이유를 안다. 수년간 부모님의 빨래를 하고, 식사를 차려 드리고 나서야 알았다. 옷에 보풀이 얼마나 많은지, 식사 시간에 TV를 켜지 않으면 왜 안 되는지. 잠깐만 보면 모른다. 조금 자세히 봐도 모른다. 그 사정은. 잠깐 보면 눈가의 주름이 많아지신 것만 보이고, 조금 자세히 보면 어렸을 적 크게만 보였던 덩치가 작아지셨다는 것밖에 모른다.


아주 자세히 봐야 안다.

부모님이 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는지 자세히 봐야 다. 그래야만 알 수 있다. 생각보다 부모님이 가난하고 외로운 삶을 살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좀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그 삶을 내 부모님이 살고 계시더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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