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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an 27. 2022

14_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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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빨래를 두 손으로 꼭 잡고 탈탈 털어 너는데 낡은 잠바와 보풀이 잔뜩 일어난 옷들이 수두룩이다. 하루 이틀 입어서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건 집안일 일부를 맡아서 하고부터였다. 빨래 외에도 부모님의 식사를 챙기기 시작하면서 두 분의 입맛은 물론 건강과 기분 상태에 따라 식단을 달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부모님의 상태를 신경 쓰게 되었고 그제서야 두 분이 무표정으로 말 한마디 없이 식사하시는 날이 대부분이라는 걸 알았다.


그동안은 두 분이 그럭저럭 즐거운 삶을 보내시는 줄만 알았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에 앉아 내 인생만 신경 쓰며 살 때는 부모님과 하루종일 함께 있어도 두 분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요즘 기분은 어떠신지~ 어디가 아프신지 알지 못했다. 집에 크게 아픈 이 하나 없었고, 빚 없었고 그래서 행복하신 줄 알았다. 이번 주에 치킨을 시켜 먹고 다음 주에는 방어회를 사 먹을 정도는 되니 이 정도면 행복한 삶이라 여겼다. 더 이상에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 혼자 하시던 식사, 빨래, 두 분의 출근·퇴근을 챙기는 등 집안일을 하고 집안에 지출까지 세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출퇴근, 식사, TV나 휴대전화 보기, 산책이 전부인 아버지의 일상과 일하러 가시지 않는 날에는 삼시 세끼를 차리고 중간중간 산책이나 장을 보러 가시는 것이 전부인 어머니의 삶. 어린 자식에 재롱 덕에 터지던 웃음소리는 20년도 전에 끝이 났고 그쯤  사람들과 어울리던 것도 줄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부부 사이에 불화와 빠듯한 월급으로 인한 한숨으로 채워진 지독하게 단조로운 무미건조한 생활이었다.


회사와 집만 오고 가는 무한 반복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우울증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하지만 내 부모님은 원래 그렇게 살아오셨으니까, 긴 세월 그렇게 살아오셨으니까 예외일 줄 알았다. 그 우울한 일상이 두 분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당연한 일일거라 생각했다.


근데 그 삶을 공유하고 보 어두운 기분이 절로 든다.

하루하루 살아감에 감사해야 할 인생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탓이다. 작은 일에도 즐겁고 보람되게, 작은 것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집안에는 웃음소리 1번이 들리지를 않는다. 웃을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포함하여 가족들의 생계까지 책임지는 일은 상당히 지치는 일이다. 몸이 고되어 일을 좀 쉬고 싶으시다는 것,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로 여생을 보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것,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돈 때문에 못 나가신다는 것… 그런 것들은 젊은이들에게도 우울한 일이다. 그리고 평생 이렇게 벌어먹고만 살아야 할 듯한 인생은 더는 여유를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희망을 야금야금 앗아갔다.


그동안 자식 키우느라 고생했으니 쉬어야 하는데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자식을 통해서도 그런 미래를 기대할 수 없으니 희망을 품기가 더 어렵다. 오래도록 써온 몸뚱이는 점점 닳기만 해서 한 해가 다르게 약해짐을 느낀다. 염색으로 까맣던 어머니의 머리카락은 좀만 가까이서 보면 조금 자란 새 머리카락으로 인해 그 속은 새하얀 눈밭이 따로 없다.


하지만 그런 부모님의 삶은 무심하면 보이지를 않는다.

부모님의 얼굴, 부모님의 표정, 부모님의 하루, 부모님의 , 여행에 다녀오신 분들에 이야기를 들을 때면 슬퍼지시는 표정까지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영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곰팡이가 피고, 뒤틀어지고, 깨진 20년 넘게 쓴 거실장이 깨끗하고 고장 하나 없어 쓸만하게 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늘 부모님의 삶을 대충 보아 넘긴 탓이다.


작지 않음에도 모른척하면 쉬이 가려져 버리던 것들.

그러니 자식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손을 벌릴 수 있는 것이다. 부모의 고된 삶을 알면서도 아버지의 인생보다, 어머니의 인생보다는 내 인생 힘든 것이 싫다며 돈, 육아, 살림을 도와달라고 할 수 있는 건 부모가 겪는 불행은 보지 않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연예인은 코 옆에 점이 있더라, 요즘 최애 음료가 자몽에이드라더라 귀신같이 알면서 부모님이 순댓국을 좋아하신다는 것,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 피었다는 건 알아채지 못했다.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늘 쳐다보는 둥 마는 둥 한 탓이다. 그동안 부모님을 대충 흘겨보고 산 탓이다.


1만 원짜리 옷만 사 입으시는 것이 궁상이 아니라 절약이고 300원짜리 봉지 커피 한 잔이 여유가 아닌 한숨인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부모님의 재정상태를 들여다보고, 보험을 확인하고, 적금을 세어보고, 연금을 더 해보고, 집안에 빨래를 하고, 두 분에 식사를 차려드리고 나서야 양쪽 눈에 두껍게 씐 무관심을 걷어낼 수 있었다. 식사 시간이 얼마나 건조한지, 옷에 보풀이 얼마나 많은지 덕분에 이제야 부모님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잠깐만 보면 모른다.

조금 자세히 봐도 모른다. 그 사정은.

잠깐 보면 눈가의 주름이 많아지신 것만 보이고, 조금 자세히 보면 어렸을 적 크게만 보였던 덩치가 작아지셨다는 것밖에 모른다.


아주 자세히 보아야 안다.

부모님이 깨는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는지 자세히 보아야만 안다. 생각보다 부모님이 가난하고 외로운 삶을 살고 계시다는 걸. 우리가 좀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그 삶을 살고 계시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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