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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an 28. 2022

15_ 그놈에 명품가방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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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  아휴, 오랜만에 모임 갔다가 별소리를 다 듣네!


나 :  왜요? 무슨 일 어요?


어머니 :  아니, 갑자기 여편네들이 내 가방을 보더니 명품가방은 없느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없다고 했더니 그 나이 먹도록 명품 하나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잔소리들을 어찌나 하던지…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아니, 이 나이에는 꼭 명품가방 있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니? 내가 살 마음이 없으면 안 사는 거지!



… 화창하던 어느 봄날, 기분 좋게 나가셨던 어머니가 짜증을 한껏 받은  집으로 들어오셨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아주머니들과 가진 식사 자리에서 몇몇 분들이 어머니의 평범한 가방을 보고 한소리 하신 모양이었다. 60대가 되면 명품가방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그 나이에 명품 하나 안 들고 다니면 너무 없어 보인다고 말이다.


그 얘기를 듣고 어찌나 기가 막히든지.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물건으로 사람 무안을 주는 한심한 사람이 어머니 주변에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사실에는 자신을 지키는 선에서 남에게 상처 주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성숙함을 익혔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는 거 아닌가. 대체 그 긴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뭘 보고 배우며 산 것인지. 나이를 처먹기만 한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될 때면 어른이라는 존재에 드는 실망감이 적지 않다.


“너 그 가방 없어? 어휴, 그 가방도 없으면 어떻게~~?”

라는 말을 하는 50대에게

“사람은 겉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야~”

초등학생에게 가르치는 걸 알려줘야 하나 고민되었다.

안 그러면 사람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아는 초등학생들에게 무시를 당할테니 말이다.


볼품없는 건 명품가방이 없는 내 어머니가 아니라, 가방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본인이라는 걸 알아야 할 텐데.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른다든데 (출처 : 세상에 예쁜 것. 故 박완서 작가) 모든 사람이 다 그 광채가 나는 건 아닌가 보다.


어른이 되었다면 혹여나 행색이 너무 초라하거나 오염(?)되어 불쾌감을 줄 정도의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을 조용히 피하거나 상대에게 조심스레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정도의 배려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누구든 타인을 함부로 해도 되는 자격은 없으니까. 그래서인지 외적인 것으로 사람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하는 사람을 보면 그냥 무시하면 될 것을 그러지를 못하고 이렇게 말이 길어져 버리고 만다.


명품이 필요 없다는 물건이라는 게 아니다.

명품이 없다고 무안을 주는 사람이 나쁘다는 거다.


사실 나도 어머니가 명품가방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했다.

60대에 명품 가방 하나 마련하지 못한 어머니가 딸은 속상한 법이라. 솔직히 우리 집이 명품 하나 못 살 정도도 아니고. 그동안에 알뜰살뜰 덕분에 비상금도 어느 정도 마련했고, 저금도 조금 하고 있어서 그거 1~2개 산다고 해서 당장 생활비가 쪼들리거나 카드빚에 시달릴 정도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몇 번 어머니께 구매를 권유했다. 근 단칼에 거절당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단호하게 한마디 하셨다.


"명품가방을 든다고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해하고 좋아하는 건 아니야~"


맞는 말씀이었다.

사람마다 가진 고유의 성향이 있어서 누구는 자기 월급보다 비싼 명품가방을 샀을 때 엄청나게 행복하기만 하고~ 누구는 남의 이목 때문에 별로 갖고 싶지도 않은 거 억지로 샀다고 볼 때마다 스트레스받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명품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안 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명품 좋다는 건 알지만 내 월급으로는 과하다고 생각에 사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내 어머니는 그중에서 제일 마지막 유형이셨다. 늘 명품 좋다는 건 알지만 가방 하나 사면서 가격 때문에 부들부들 떨고 싶지는 않으시다고 하셨다.


예전에 지인분이 가방을 하나 주신 게 있긴 하다.

더 이상 필요 없어서 정리하는 거라며 패턴은 명품인 가방 하나를 주셨다. 근데 이게 진품이면 정말 이걸 남을 까 싶다가도 그분이 부자라서 짝퉁은 아닐 거 같고…. 하여튼 이런 이유로 짝퉁 일지 모르는 명품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가방이 하나 있기는 하다. 근데 한 번은 그 가방을 보시던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혹시 이 가방이 진짜 명품이라고 해도 이걸 메고 다닐 때 유난히 더 행복하거나 즐겁지는 않아. 다른 사람들은 비싼 걸 들고 다니면 자존감도 높아지고 그런다는데 나는 아니야. 이걸 메고 있다고 해서 진짜 이런 거 척척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내가 사는 아파트가 30평대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잖니. 이 가방 하나만 바뀌는 거지 오래된 작은 아파트에 한 푼, 두 푼 아껴가며 사는 모습은 그대로지. 그래서 오히려 비싼 가방을 메면 내가 이거 하나 마음대로 못 사는 수준에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가 않아.”


어머니는 늘 남들한테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신다.

거기에 대고 남들은 밖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그런 거 메고 다니는 거라고 하면 “무시하는 사람이 잘못된 거지!”라며 꾸지람이나 듣는다. 사람은 남루하거나 누추하지 않고 단정하면 되는 거라는 가르침과 함께. 그럼 나는 할 말이 없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으니까. 이런 거야 말로 60년 살아온 찐내공이다.


하지만 못난 딸내미는 한동안 어머니가 남들한테 초라해 보이는 게 싫어 명품 구매를 강요하였다. 어린 마음에 명품가방 들고 다닐 때 기분 좀 안 좋은 거 무시하면 되지 그게 뭐라고 가방 하나를 못 사냐며 화를 낸 적도 있다. 근데 결국은 나도 어머니를 닮은 모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명품가방을 사는 게 불편하다는  마음이 이해가 되는 걸 보면. 나도 깔끔하고 단정함에는 신경 쓰지만, 남에게 잘나 보이기 위함에는 크게 관심이 없이라. 격식 있는 자리에서 남들 눈에 잘 보이기 위해 치장을 하고 다닌 날이면 어김없이 집에 와서  ‘역시 그렇게까지 안 어울리게 치장하는 것보다 그냥 단정하고 자연스러운 게 훨씬 이쁜 것 같아.’라며 후회하는 건 두 모녀가 똑같다.


그렇게 딸이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서 어머니의 입장을 생각해보니 내가 명품 구매를 강요했던 게 어찌 보면 어머니께는 큰 스트레스였겠다 싶었다. 그래서 더 이상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외출용으로 디자인 깔끔한 가방 1~2개는 마련했다. 시장에 가지고 다닐법한 가방을 들고 모임에 나가시는 건 도저히 못 보겠어서. 장소에 따라 옷차림을 조금은 신경 쓰는 게 예의기도 하니까.


여전히 가끔 모임에 나가서 이런 일을 겪으시는 어머니를 볼 때면 외관으로 사람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거 같아 안타깝다. 부디 어느 순간에는 누군가 명품가방이 없다며 의기소침해져 있을 때 “그런 거 없으면 어때~ 행복하게 잘 사는데 그게 하등 필요가 없는데! 쓸데없는데 신경 쓰지 말고 산책이나 가자~!”라며 상대를 배려해 주고 따뜻하게 위로해 줄 아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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