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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 아휴, 오랜만에 모임 갔다가 별소리를 다 듣네!
나 :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어머니 : 아니, 갑자기 여편네들이 내 가방을 보더니 명품가방은 없느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없다고 했더니 그 나이 먹도록 명품 하나 없으면 어떻게 하냐고 잔소리들을 어찌나 하던지… 내 참 어이가 없어서! 아니, 이 나이에는 꼭 명품가방 있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니? 내가 살 마음이 없으면 안 사는 거지!
… 화창하던 어느 봄날, 기분 좋게 나가셨던 어머니가 짜증을 한껏 받은 체 집으로 들어오셨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아주머니들과 가진 식사 자리에서 몇몇 분들이 어머니의 평범한 가방을 보고 한소리 하신 모양이었다. 60대가 되면 명품가방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그 나이에 명품 하나 안 들고 다니면 너무 없어 보인다고 말이다.
그 얘기를 듣고 어찌나 기가 막히든지.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물건으로 사람 무안을 주는 한심한 사람이 어머니 주변에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사실에는 자신을 지키는 선에서 남에게 상처 주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성숙함을 익혔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는 거 아닌가. 대체 그 긴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뭘 보고 배우며 산 것인지. 나이를 처먹기만 한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될 때면 어른이라는 존재에 드는 실망감이 적지 않다.
“너 그 가방 없어? 어휴, 그 가방도 없으면 어떻게~~?”
라는 말을 하는 50대에게
“사람은 겉모습이 중요한 게 아니야~”
초등학생에게 가르치는 걸 알려줘야 하나 고민되었다.
안 그러면 사람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아는 초등학생들에게 무시를 당할테니 말이다.
볼품없는 건 명품가방이 없는 내 어머니가 아니라, 가방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본인이라는 걸 알아야 할 텐데. 세월이 연마한 고통에는 광채가 따른다든데 (출처 : 세상에 예쁜 것. 故 박완서 작가) 모든 사람이 다 그 광채가 나는 건 아닌가 보다.
어른이 되었다면 혹여나 행색이 너무 초라하거나 오염(?)되어 불쾌감을 줄 정도의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을 조용히 피하거나 상대에게 조심스레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정도의 배려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누구든 타인을 함부로 해도 되는 자격은 없으니까. 그래서인지 외적인 것으로 사람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하는 사람을 보면 그냥 무시하면 될 것을 그러지를 못하고 이렇게 말이 길어져 버리고 만다.
명품이 필요 없다는 물건이라는 게 아니다.
명품이 없다고 무안을 주는 사람이 나쁘다는 거다.
사실 나도 어머니가 명품가방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했다.
60대에 명품 가방 하나 마련하지 못한 어머니가 딸은 속상한 법이라. 솔직히 우리 집이 명품 하나 못 살 정도도 아니고. 그동안에 알뜰살뜰 덕분에 비상금도 어느 정도 마련했고, 저금도 조금 하고 있어서 그거 1~2개 산다고 해서 당장 생활비가 쪼들리거나 카드빚에 시달릴 정도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서 몇 번 어머니께 구매를 권유했다. 근데 늘 단칼에 거절당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단호하게 한마디 하셨다.
"명품가방을 든다고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해하고 좋아하는 건 아니야~"
맞는 말씀이었다.
사람마다 가진 고유의 성향이 있어서 누구는 자기 월급보다 비싼 명품가방을 샀을 때 엄청나게 행복하기만 하고~ 누구는 남의 이목 때문에 별로 갖고 싶지도 않은 거 억지로 샀다고 볼 때마다 스트레스받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명품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안 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명품 좋다는 건 알지만 내 월급으로는 과하다고 생각에 사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내 어머니는 그중에서 제일 마지막 유형이셨다. 늘 명품 좋다는 건 알지만 가방 하나 사면서 가격 때문에 부들부들 떨고 싶지는 않으시다고 하셨다.
예전에 지인분이 가방을 하나 주신 게 있긴 하다.
더 이상 필요 없어서 정리하는 거라며 패턴은 명품인 가방 하나를 주셨다. 근데 이게 진품이면 정말 이걸 남을 줄까 싶다가도 그분이 부자라서 짝퉁은 아닐 거 같고…. 하여튼 이런 이유로 짝퉁 일지 모르는 명품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가방이 하나 있기는 하다. 근데 한 번은 그 가방을 보시던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혹시 이 가방이 진짜 명품이라고 해도 이걸 메고 다닐 때 유난히 더 행복하거나 즐겁지는 않아. 다른 사람들은 비싼 걸 들고 다니면 자존감도 높아지고 그런다는데 나는 아니야. 이걸 메고 있다고 해서 진짜 이런 거 척척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내가 사는 아파트가 30평대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잖니. 이 가방 하나만 바뀌는 거지 오래된 작은 아파트에 한 푼, 두 푼 아껴가며 사는 모습은 그대로지. 그래서 오히려 비싼 가방을 메면 내가 이거 하나 마음대로 못 사는 수준에 살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가 않아.”
어머니는 늘 남들한테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신다.
거기에 대고 남들은 밖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그런 거 메고 다니는 거라고 하면 “무시하는 사람이 잘못된 거지!”라며 꾸지람이나 듣는다. 사람은 남루하거나 누추하지 않고 단정하면 되는 거라는 가르침과 함께. 그럼 나는 할 말이 없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으니까. 이런 거야 말로 60년 살아온 찐내공이다.
하지만 못난 딸내미는 한동안 어머니가 남들한테 초라해 보이는 게 싫어 명품 구매를 강요하였다. 어린 마음에 명품가방 들고 다닐 때 기분 좀 안 좋은 거 무시하면 되지 그게 뭐라고 가방 하나를 못 사냐며 화를 낸 적도 있다. 근데 결국은 나도 어머니를 닮은 모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명품가방을 사는 게 불편하다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는 걸 보면. 나도 깔끔하고 단정함에는 신경 쓰지만, 남에게 잘나 보이기 위함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라. 격식 있는 자리에서 남들 눈에 잘 보이기 위해 치장을 하고 다닌 날이면 어김없이 집에 와서 ‘역시 그렇게까지 안 어울리게 치장하는 것보다 그냥 단정하고 자연스러운 게 훨씬 이쁜 것 같아.’라며 후회하는 건 두 모녀가 똑같다.
그렇게 딸이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서 어머니의 입장을 생각해보니 내가 명품 구매를 강요했던 게 어찌 보면 어머니께는 큰 스트레스였겠다 싶었다. 그래서 더 이상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외출용으로 디자인 깔끔한 가방 1~2개는 마련했다. 시장에 가지고 다닐법한 가방을 들고 모임에 나가시는 건 도저히 못 보겠어서. 장소에 따라 옷차림을 조금은 신경 쓰는 게 예의기도 하니까.
여전히 가끔 모임에 나가서 이런 일을 겪으시는 어머니를 볼 때면 외관으로 사람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거 같아 안타깝다. 부디 어느 순간에는 누군가 명품가방이 없다며 의기소침해져 있을 때 “그런 거 없으면 어때~ 행복하게 잘 사는데 그게 하등 필요가 없는데! 쓸데없는데 신경 쓰지 말고 산책이나 가자~!”라며 상대를 배려해 주고 따뜻하게 위로해 줄 아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