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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an 29. 2022

16_ 제발 옷 좀 사 입어~!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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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 제발 밖에 입고 나갈 옷 좀 사~!”


몇 년 전부터 마트만 갔다 하면 어머니는 내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신다. 백수가 된 지 5년이 넘었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염치를 아는 나는 눈치가 보였다. 먹고 입는 것부터 시작해서 보험료, 병원비, 건강식품값, 속옷, 양말…. 숨만 쉬고 살아도 내야 하는 돈이 있었고 그 외에도 인터넷과 휴대전화까지 쓰니 소득은 0인데 지출은 플러스인 마이너스 인간이 되었다. 기본적인 것부터 생필품까지 아낀다고 아껴도 나한테만 최소 40~50만 원이 든다. 아버지 수입에 약 20%다. 그러니 그깟 예쁜 옷 한 은 도저히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집에 있으면서 알게 되는 거라고는 느려진 걸음걸이와 둔해진 사고력, 무료한 일상 속에 늙어가는 내 부모님의 모습뿐이라. 이미 다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질질 끌고 나가 유쾌하지 않은 일을 해서 벌어온 돈은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만 원과는 전혀 다른 이다. 해서 부모님이 벌어오신 돈은 쉬이 쓸 수가 없다. 겨우 옷 한 벌조차도 도저히 살 수가 없다. 다행히(?) 나갈 일이 거의 없어서 집에만 있기도 하고.


하지만 어머니는 딸이 집에만 있어도 예쁜 옷 하나 사 입지 않고 지내는 것이 마음 아프셨던 모양이다. 요즘 나갔다 하면 다른 애들처럼 예쁜 옷 좀 사 입으라고 성화이신 걸 보면.


근데 맛있는 걸 사 먹을 때도, 머리를 할 때도, 화장품을 살 때도 그 힘든 도배 현장에서 쩔쩔매는 어머니가, 자기보다 어린 이들에게 굽신거리는 아버지가 손목에 무겁게 걸리니까. 딸은 그 성화를 못 들은 척한다. 부모님에 돈을 관리하면서부터 그리 되었다. 우리 집 상황이 전혀 녹록지 않는다는 것과 아끼며 살아야 하는 사정이 여전하다는 걸 알게 된 그때부터. 그러니 사정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얼마나 차이가 큰 건지.


나의 소비 한 번에 새벽에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지침도배 현장에서 동동거리며 흘린 어머니의 땀이 결제된다. 내 돈 쓰자고 늙은 부모님을 그 일터로 내보내는 꼴이다. 본디 그런 돈은 마음 편히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옷은 일단 세일하는 거, 미용실에서는 5,000~10,000원짜리 커트만 한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다.


마트에서 사고 싶은 옷이 즐비해도 옷을 사는 즉시 무거운 죄책감을 얻는 것보다 차라리 마음 편하게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행복하다. 그러다 보니 몇 년간 옷을 거의 사지 않았다. 막상 안 사면 안 사는 대로 살아져서 속옷이나 집에서 입는 옷이 다 해졌을 때 말고는 더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정말 밖에 입고 나갈 옷이 없더라.

입고 외출하기에는 누추한 것들만 남아서. 그래서 최근에는 외출용으로 계절마다 1벌씩 다. 물론, 할인 문구가 빼곡한 것들로. 어차피 옷에 할인 상품 표시돼있는 거 아니라 사서 입으면 정가 제품 입는 것이니 그게 그렇게 속 상하지는 않다. 그래서 새 옷을 입고 나가면 기분은 좋다. 뭔가 신경 써서 입었다는 그 느낌. 거기에는 부모님의 고생한 시간이 녹아있다는 것에 대한 죄송스러움도 함께 섞여있기는 하지만.


나중에는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옷을 사는 날이 오겠지.

내가 번 돈으로 부모님께 선물도 드리고. 나는 아직도 이런 희망을 가지고 산다. 그 희망이 후줄근하게 지내는 것을 개의치 않게 해 준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저 속상하신 모양이다. 부모 걱정하며 옷 한 벌 편히 못 사는 딸내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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