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구름 Jan 30. 2022

17_ 이렇게 위태로운 줄은

목차__ 上

.

.

부모님의 노후가 이렇게 위태로운 줄은 몰랐다.

위태로운 상황이란 무엇이던가. 가진 것에 감사하다며 당장 쪼들리는 생활을 “이 정도면 괜찮다~”라는 말로 외면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불안에 떨며 위험한 상황에 대한 노출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비밀스레 가려져 있던 두 분의 재정 상태를 들여다보고 식은땀이 먼저 흘렀다. 흡사 허술한 기둥에, 스러져가는 지붕에,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얇디얇은 벽으로 지어진 집을 보는 것 같아서. 부실하기 그지없어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집. 늘상 허술하게는 보였지만 큰 빚도 없고 사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멀쩡은 한 줄 알았다. 남들 다 있는 자가용도 없고, 집 평수도 작고, 돈 드는 취미 생활도 없고, 여행은커녕 1년에 1번 시골에 다녀오는 게 전부고, 생수 한 병을 사는데도 고민하며 산 세월이 수십 년째라 괜찮을 거라고 안심하고 살았다. 근데 그 결과가 삐끗하면, 가족 중 누구 하나 간병이 필요할 만큼 크게 아프거나 가장이 실직하면 바로 무너지는 상태라니. 알싸한 배신감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늘 그런 상태였다.

다만, 내가 이제 안 것일 뿐. 그동안 늘 알뜰한 편이었고 부모님은 쉬지 않고 일하셨기 때문에 생계유지를 위해 그리고 자식에게 들어가는 돈이 적지 않음을 모르고 두 분에 노후가 조금이나마 안정적일 알았다. 그리고 10년 뒤에도 지금처럼 일하시면서 오늘처럼 그냥저냥 큰 문제없이 사실 거라는 생각에 더 걱정을 안 했다.


본디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내게는 크게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으며 살아가기에 오늘 웃을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하지만 실상 아버지는 나이 때문에 회사에서 잘릴까 해마다 불안해하고 어머니는 이미 일이 줄었다. 두 분에 몸은 하루가 다르게 여기저기 아픈 곳이 드러나는 중이라 빈곤이 코앞에 떡 버티고 있어서 삐끗하면 거기 몸을 담글 판이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집을 팔아야지 하고 갈만한 곳 시세를 알아보니 살만한 곳은 죄다 집값이 올라갔다. 우리 집은 별로 안 올랐는데. 중소기업 다니시던 아버지의 퇴직금으로는 생활을 1년 버텨기도 힘들다. 지금 있는 개인연금 상품은 들인 자금이 너무도 부족해 얻는 것도 부실하다. 그나마 지금 아버지 통장에 따박따박 들어오는 국민연금 74만 원이 현재에도 미래에도 가장 큰 불로소득인데 최소 식비, 관리비, 휴대전화 비용, 보험료 등 고정지출만 해도 벌써 80만 원이 넘으니 이거야 원.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두 분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만한 자산이 없다. 이미 부모님은 조금 가난한 삶을 계셨고 거기서 딱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거기가 바로 빈곤이었다. 쌀 사는 것도 걱정해야 할지 모르는 삶에 대해서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런 미래를 조금 걱정하는 중이다.


작아도 편안하게 잘 수 있는 집 있고, 매달 꼬박꼬박 보험은 그럭저럭 든든하고, 가끔 치킨시켜먹고, 현금 좀 있고(진짜 조금), 국민연금도 받으시니까 이 정도면 두 분 노후는 안전하다며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기나 했다. 근데 실상은 빈곤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니.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계셨다.

환갑이 되시기 전부터 어머니의 얼굴에 자꾸 그늘이 지고 멕아리 없이 일상에 우울감을 느끼셨던 건 노후의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점점 사라졌기 때문일 게다. 어머니는 가끔 뜬금없이 경제적으로 더 나아질만한 뾰족한 수가 없다는 말 한마디를 공중에 툭 던지시며 희망 없는 얼굴을 하시고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예전에는 우리 집이 아주 안전한 평야 위에 놓여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 집은 절벽 끝에 집에 반쯤 걸 터져 있었고 그런 집을 빈곤이라는 그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게 붙들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늙고 쇠약해지신 부모님이셨다. 만약, 한 분이라도 그 끈을 놓아버리면 집이 절벽 아래로 추락할 판인데도 나는 아무것도 모른 체 덜렁거리는 집 안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소파에 누워 TV나 처 보면서 “이 정도면 행복하지~”하며 살았다. 이미 가난이라는 불행에 두 발이 닿은 것도 모르고.


그 사정을 아는 지금에서야 늦게나마 발가락에 빈곤만은 닿지 않도록 바지런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중이다. 주변에서 누가 빈곤에 몸을 담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 가계부를 정리하면서 조심해야지, 조심해야지 나가는 돈을 다시 한번 더 단도리하면서.


그래도 어쨌든 위태롭다.

이렇게 위태롭다는 걸 지금에야 알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16_ 제발 옷 좀 사 입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