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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an 31. 2022

18_ 시한폭탄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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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갔더니 루게릭병이래요.”


어머니의 휴대전화 속에서 힘이 쭉 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직장 동료(이하. 으니 아주머니)의 전화였다. 몇 달 전부터 손가락 움직임이 둔해졌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그 둔함이 어머니 눈에도 보이더라며 걱정하던 참이었다. 당시 으니 아주머니 나이는 50대였다.


아이들이 있었다.

고등학생, 대학생. 보통 한국에서는 독립은커녕 아직도 보살핌을 받는 시기였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이제 당신이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해서 아주머니는 남편분이 돌보기로 했다. 그 덕에 젊은 아이들은 어머니를 돌보느라 시간을 길 일도, 돈을 벌어다 드려야 하는 일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어차피 평소 자식들에게 학원 하나 제대로 보내주지 못하던 형편이었고 아이들은 조부모가 돌봐주고 있었던 터라 아이들은 어쩌냐는 말을 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으니 아주머니는 어머니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며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한다고 했단다. 아들은 어머니가 그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펑펑 울더라고.


그들은 가난한 부모였다.

맞벌이로 공사판이니 도배니 열심히 일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부모라는 울타리는 아무리 허술해도 서 있기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법인데 그게 무너져버렸다. 가난하지 않았더라면 무너지지는 않았을 텐데. 그 탓에 아들은 최소한 더는 내가 일하지 않으면 치킨 한 마리도 공으로 생길 일이 없는 척박한 현실을 살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힘들어지면 아버지가 짊어지던 것들이 자신들에게 넘어갈 거라는 것도 말이다.


시한폭탄이다.

노후에 부실한 재정상태는 시한폭탄이다.

당사자도 자식들도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시한폭탄.


하지만 무탈한 일상을 보내는 이들은 그 시한폭탄이 보이지를 않는다.

멀쩡하신 부모님 갑자기 병에 걸릴 리 없었고, 일자리는 아직 안 잘리셨으니까 미리 걱정할 필요 없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에게 그런 속 시끄러운 일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 부모님께 신경 쓰고 싶지도 않고.


“미연이 아줌마 수술했데. 간병은 누가 해주는지 원…. 들어가는 돈도 걱정이고.”


어머니는 멀쩡하던 지인에 병원 소식을 들으실 때마다 속이 새까맣게 타도록 걱정하셨다.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면서.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식들은 귓등으로 흘려듣고는 아 그래요 한마디 할 뿐이다. 아직 내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 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만연하게 깔린 시한폭탄을 굳이 인지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불운한 일들이 평생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믿으면서.


나 역시 우리 집에 시한폭탄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건 내가 많이 아팠을 때였다. 당시 어머니는 일을 조금 쉬셔야 했고, 아버지는 다 큰 딸내미를 먹여 살려야 하셨으며, 나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외출했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전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폭탄이 나에게서 한 번 터지고 나서야 그때 입게 되는 피해를 조금 경험하게 됐다. 노후에 가난이 이렇게까지 여러 사람 인생을 흔들어놓는다는 걸 그제서야 실감했다.


정말 말 그대로 인생에 시한폭탄이었다.

부모님의 돈을 관리하고 보니 이놈에 폭탄이 시간과 자산의 정도에 따라 저절로 커지고 자가증식까지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째깍째깍 커져 버린 폭탄은 부모님 부양, 엄청난 병원비, 간병비 등의 금전 문제로 하나둘 터져 버리고야 만다. 그러면 우리는 그때서야 큰 타격을 입고 괴로움에 빠져 허우적거릴 뿐이다.


만약, 10분 뒤 부모님이 쓰러지셨다는 연락이 온다면 어떨까?


아니면 두 분 다 일자리가 끊겼다며 전화를 해오신다면?? 그래서 오늘부터 평생 부모님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거나 다음 달부터 내가 생활비를 100만 원 넘게 보내드려야 한다면 그때도 어떻게든 될까??


이 폭탄은 나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터져버리고 말 것이다. 

내가 직장에 다니느라, 아이를 돌보느라 당장 밥도 혼자 못 드시는 부모님에게 간병인은커녕 생활비 보내 드릴 여유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그리고 폭탄이 터지면 그 즉시 자식과 배우자는 그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해결해야 한다.


물론, 안 터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바란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누군가는 터지고, 누군가는 안 터지는데 그게 누가 될지 모른. 이렇듯 누구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대비를 하면 폭탄을 줄일 수 있다.

폭탄이 핵폭탄급으로 커지기 전에 보험을 점검하고, 불로소득을 준비하는 등 뭐라도 조금씩 하다 보면 크기를 확실히 줄일 수 있다. 암에 걸렸을 때 암 보험 덕에 돈 걱정 안 하고 좋은 치료를 받는다거나, 미리 조금씩 마련해둔 연금 덕에 생활비 걱정을 덜하는 식으로. 그러면 폭탄이 터져도 그냥 ‘퐁’, ‘퐁’ 하고 작게 터져서 충분히 감당 가능한 작은 타격으로 끝난다.


폭탄의 피해는 단 한 번만 겪어도 더는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공포감은 물론이요, 실상 겪게 되는 피해가 절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폭탄이 터지면 내 삶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은 미리 경험해보는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 닥치고 나서, 삶이  무너지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 그러니 오늘 이 글을 읽었다면 그 후회 경험 명단에서 슬쩍 빠지기 위해 한 번은 살펴보기를 바란다. 부모님과 나에게 깔려있는 폭탄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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