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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an 26. 2022

13_ 부모님의 사정을 너무 모르는 건 아닐까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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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어머니에게 걸려온 한 통에 전화.

급하게 100만 원이라도 빌려줄 수 없냐는 이웃 아주머니의 부탁이었다. 사연인즉슨, 최근에 혹해서 투자하느라 진 빚에 몇 배로 이자 없이 대출을 해주겠다는 전화를 받고 남의 돈까지 끌어서 보냈는데 그게 보이스피싱이었단다. 그래서 갚아야 할 돈이 불고 불어서 대략 1,000만 원 정도라고.


"어쩌지? 우리 집도 요즘 병원비 때문에 나갈 돈이 많아서…. 그나저나 큰일이네. 남한테 빌린 돈까지 갚아야 한다니애들한테는 얘기해봤어?"


어머니가 넌지시 물어보니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아주머니의 첫째 자식은 굴지 기업에 취직하고, 둘째는 학원 강사로 잘 나가고, 셋째는 자기 자리에서 인정받아 취직됐다고 했지만 자식들에게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동안 부모로서 금전적 도움도 많이 주지 못했는데 본인이 진 빚을 어떻게 얘기하냐며 여기저기 또다시 돈을 꾸는 중이라고. 그러면서 늘상 그렇듯 통화 끝에는 아이들이 잘살고 있어서 기특하다는 말을 쏟아내셨다.


다른 어느 날은 어머니 친구분이 집에 놀러 오셨다.

그리고 뜨겁게 내온 커피가 다 식을 때쯤 대뜸 일할 데 어디 없느냐고 물으셨다. 남편분이 사업을 하시는데 꽤 오래전부터 수입이 좋지 않아 아주머니도 요양사로 일하고 계시던 참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식들 다 독립하고 아주머니, 아저씨 모두 돈을 버니 생활이 어려울 리가 없어 의아했던 어머니가 물으셨다.


"일자리? 나도 요즘 찾기 어려워. 우리 나이가 그렇잖아. 그리고 일이 있어도 몸 생각도 해야지. 예전 생각해서 두 탕 뛰다가는 병원비가 더 나간다니까. 근데 갑자기 일은 왜 찾아? 남편 회사가 영 어려워서 그래??"

 

"아니, 그건 아닌데 요즘에는 그걸로도 생활이 어려워서~. 애들 다 결혼해서 각자 살지만 월급 그거 얼마나 돼? 걔들도 자식 키우느라 절절매는 거 눈에 빤하니 만날 때마다 세제라도 하나 더  들고 가게 되고 손주들 과자라도 하나 가져가려니까 영 빠듯하네. 나도 하루가 다르게 늙는데 지금 몸 움직일 때 조금이라도 더 일해놓으려고. 더 늙으면 지금 하는 일도 어려울 텐데 그때 생활비 어떻게 하나 생각만 하면… 휴, 한숨밖에 안 나와."


한숨 끝에는 손주 육아에 힘들다는 푸념이 섞여 나왔다.

하지만 끝끝내 자식들이 부모를 챙기더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리고 그 집 자식들은 아빠가 집에 생활비 안 가져온 지가 얼마나 됐는지~ 엄마가 일을 더 알아보러 다니는지 나는 아는 아주머니의 사정을 모른다고 했다. 그냥 아버지가 사장님이고 어머니도 일을 나가시니까 그냥저냥 살만한 줄 안다고.


뭐, 이렇게 남의 이야기할 거 있나.

장성해서 취직 잘한 자식들이 2~4명이 돼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친척분들만 주변에 줄줄이고 내 부모님만 해도 아등바등 살고 계시는 인데. 가난에 허덕이는 60~90대만큼 흔한 삶도 없다.


그런데도 자식들은 부모 사정을 너무 모르는 게 아닐까.


그러다 “어?”하는 순간 부모님의 실직이라든가 몰랐던 빚, 없던 병이 생겨서 자식들이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그때야 심하게 당황하고 난처해하다가 양쪽 모두가 힘들어지는 게 부모님의 사정을 모를 때의 가장 큰 문제점인데. 자식은 그 위험을 좀 알아야 하는 거 아닐까?


문제가 터지면 자식은 늘 2가지로 반응한다.

어떻게든 부모를 돕겠다며 나서서 자기 생활마저도 힘들어지거나 아니면 자기가 잘살고 못 사는 것에 상관없이 부모의 힘든 처지를 외면한다. 후자는 “부모님 보면 너무 짠하지. 죄송하고. 마음이 아파. 근데 어쩌겠어….” 한마디로 자신의 죄책감과 외면을 마무리 지으면 끝이다. 그 죄송스러움에 무게를 가리는 건 참 쉽다.


부모들은 흔히들 본인은 불행하게 살아도 자식만 행복하면 됐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산 부모들에 여생은 괜찮아 보이지를 않는다. 본인들이 괜찮다는데 내가 이러쿵저러쿵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자식 자랑 줄줄이 하면서 만날 혼자 계시고, 노인네 찾아오는 사람이라고는 요양사님 한 분뿐이고, 돈 조금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어른들을 볼 때면 여간 속이 불편하다.


주변에는 이미 닥친 노후에 생활비 걱정으로 한숨이 짙은 분들이 흔하다. 남편이 사장인데도, 아파트 월세 받으며 사시는데도 돈 한 푼 더 아끼려고 아등바등하신다. 일 하나 더 나가려고 아등바등한다. 자식은 대기업에 다니고, 전문직이고, 서울에 집이 2채고 하는데도 부모는 가난하다.


이제라도 내 인생 좀 훨훨 자유로이 살고픈 욕구를 꾹꾹 누르며, 노쇠한 육신으로 여전히 자식 뒷바라지를 하고, 집에 들어와 쉬어 터진 반찬 입에 넣으며 TV나 보다 잠에 드시는 늙은 부모님들. 내 끼니만 걱정하며 잠시라도 자유로이 살고 싶다는 바람을 치워버릴 때마다 마음에 들어서는 건 뭘까. 그게 행복은 아니라는 거쯤은 나도 알겠다.


자식은 부모가 밥은 먹고 사시니까 별문제 없다 부러 단정 짓고는 무언가를 묻지도, 알아보려 하지도 않는다. 더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아서 부모에게 무언가를 희생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관심을 거둬들인다는 걸 나도 자식이기에 안다.


하지만 결국 그 어려운 사정이 수습되못해 터져 버리는 문제를 부모가 감당하지 못하면 그 몫은 자식에게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몫을 모른 척 밀어버리면 그만이긴 하다만 그렇게 부모를 외면하지 않을 거라면 그들의 사정을 좀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최소한 다 늙은 가난한 노인네들에게 일을 시키고 꽁짓돈을 가져가는 자식은 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부모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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