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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Feb 05. 2022

21_ 중산층이 붕괴되고 있다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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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에 산 지 30년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 집 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던 논, 밭은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변하고 혼자 기어 다니지도 못했던 갓난아기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 취업을 했다. 그중에는 부모가 되어 갓난아기를 키우는 사람도 있다. 30년이라는 세월은 여기가 그때 거기가 맞나, 이 어른이 그때 그 아기가 맞나 싶을 만큼 사람도 환경도 완전히 바꿔놓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어릴 적 알고 지내던 언니, 오빠, 동생들에 삶도 달라졌다.

그리고 그들이 성장하는 동안 내 부모님과 이웃집 아줌마, 아저씨들에 인생도 변했다. 부모 세대가 50대일 때는 크게 달라지는 게 없었는데 60대에 들어서면서 삶이 꽤 눈에 띄게 하향선을 탔다. 주식으로 치면 폭락 장이랄까.


남편이 사장이었던 그 집과 지금도 임대료만 몇 군데서 받는 그 집, 몇 년 전 대기업에서 퇴직했다는 그 집, 공무원 연금으로 매달 300만 원 넘게 나온다는 그 집… 우리 집보다 잘 살던 그 집들이 다들 쪼라 들고 있다. 대부분 전보다 빠듯하게 사신다. 그동안 보증을 잘못 서거나 사기를 당하는 등 크게 나쁜 소식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들에게 생긴 변화라고는 은퇴 후 근로소득이 사라지고 자식들은 손주를 낳았다는 거 정도였다.

우리 집과 다르게 돈 잘 벌고 자산도 넉넉해 그 재산만으로도 여유롭게 살 수 있을 듯했던 아줌마와 아저씨에게는 돈을 대단히 잘 벌지 못하는 자식들이 있었다. 자기 자신보다 소중한 자식들이.


취직한 자식은 집 한 채조차 쉬이 살 수가 없었다.

집이 없으니 월세를 살아야 하는데 그럼 돈을 모으기가 어렵다. 월세 빼고 남는 돈 모아 가지고는 10년이 넘어도 집을 살 수가 없다. 대기업을 다녀도 매한가지다. 월급 많이 받고 혼자 살면 부모가 경제적으로 도와줄 일이 딱히 없는데 결혼하고 손주 생기면 본인들에 능력으로는 여유로운 삶을 유지할 수가 없다.


결국, 부모에게 손을 벌린다.

자식이 자신의 풍요로운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동안 대학이니 결혼자금이니 해줄 거 다 해줬으니 이제 돈이 그만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결국, 부모님의 노후 시간과 자금에 야금야금 손을 댄다. 전보다 가난해지는 것이다.


중산층이 붕괴하고 있다.

노후에 가난은 서민이나 해당하는 줄 아는데.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중산층에서 짐을 싸고 내려오고 있다.


남편이 사장이던 아주머니는 이제 그냥저냥 먹고살고 자식이 둘인 아주머니는 매달 300만 원이 넘는 불로소득이 들어와도 여행 한 번 편히 못 가고 생활비를 걱정하신다. 자식에게 예상치 못한 사정이 생겨서 생활비를 대주느라 그렇다. 10억짜리 가게를 샀다는 순 아주머니도 곧 자식 하나 결혼자금 대주고 나면 여행 다니던 것, 놀러 다니던 것 전처럼 할 수가 없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잘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 숫자가 유지되는 게 아니라 점점 줄어들고 있다.


중산층에 붕괴다.

더 이상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는 둥, 대기업 부장이 빈곤한 노후를 보낸다는 둥 하는 기사는 드문 경우를 뜻하지 않는다. 얼굴도 모르는 옆 동 사람에 이야기가 아니라 옆집 사는 얼굴 아는 사람에 이야기다. 나 또한 지금 그저 너무 흔히 일어나는 일을 적은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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