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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Feb 10. 2022

23_ 부모님의 가난한 노후에는 자식이 있었다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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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머니, 아버지가 우리를 낳지 않으셨다면….’  

 


부모님의 노후를 살피다 보면 빠듯하다 못해 살아가기 어려운 사정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괜히 그동안 왜 노후 준비를 안 하셨을까 탓을 할라치면 거기에는 우리 자식들이 커다란  원인 중 하나로 버젓이 버티고 있으니 부모를 탓하려던 마음은 죄책감으로 탈바꿈하고 염치를 아는 나는 고개나 푹 숙이고 만다.


우리 집에는 아들과 딸, 총 두 명에 자식이 있다.

자식들은 그동안 고액과외는커녕 브랜드 옷도 다섯 손가락에 뽑을 만큼 사봤을 정도로 풍족한 생활을 제공받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10대였던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학교와 학원만 다니며 친구들과 생활비 걱정이 아닌 철없는 수다만 떨며 소소한 행복을 챙길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부모님의 희생 덕분이었다.


다만, 워낙 소득이 적은 편이어서 두 아이에 식비와 학비를 감당하기도 영 버거웠을 게 뻔했고 그 와중에도 더는 우리 집에 소득이 늘어날 일이 없을 거라는 것을 확신하셨던 어머니는 나 어릴 적부터 우리에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셔야 했다. 당시 아버지는 아내가 집안일만 하기를 바라셨으므로. 하여 어머니는 풍족하지 못한 아이들에 양육비와 교육비를 감당하기에도 빠듯하기만 한 아버지의 소득에서 훗날 아이들 대학 학자금과 결혼 자금 등을 고민해야 했다. 그러니 늘 돈은 모자랐고 두 분의 노후 준비는 뒷전이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 번듯한 직장을 얻고 나면 더 이상 자식들에게 돈 쓸 일 없을 테고, 그러면 그때부터 집에 들어오는 소득은 두 분에 노후 생활에만 쓰면 될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자식들이 용돈을 조금 보내준다면 부자는 아니더라도 병원비, 생활비에 대한 큰 걱정은 안 하고 살 수 있겠지 하는 희망. 하지만 막상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맞이한 결과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스스로 집 한 채를 살 수 없는 취직한 아들과 병에 걸려 서른이 넘도록 부모님 덕에 먹고 자는 딸이었다. 그동안의 생각과 희망은 딱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식이 모두 취직을 했다고 해도 매한가지다.

돈은 자꾸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흘러 들어간다. 

부모님께는 매달 용돈 조금 드리면서 독립자금이며 결혼자금 명목으로 몇백에서 몇천만 원을 꺼내 가니 한쪽이 너무 기울어진다. 결국, 부모님들의 노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안정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늘 위태롭기만 하다.


어느 날 이웃 아주머니께서 한숨 섞인 자랑을 하신다.

아들이 가끔 자기에게 빌린 돈을 갚는다며 10만 원, 20만 원을 놓고 가는데 한 번은 보너스를 받았다며 50만 원이나 턱 하고 주고 갔다며 좋아하셨다.


그런데 곧

그 아들이 1년에도 몇 번씩 와서 생활비 부족하다고 돈 가져가고~

손주들하고 놀러 갈 때 아주머니를 모시고 가서 아주머니가 돈 다 쓰게 하고~

이제 손주들 초등학생 되고 나니 지금 사는 집이 좁다며 이사 가야겠다고 또 아주머니한테서 뭉텅이 돈 가져가고~

애들이 커서 자가용이 작다며 바꿔야겠다고 징징거려서 또 돈을 가져갔단다. 그러면서 그동안 장사한답시고 빌려간 돈은 아직도 갚으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행복과 그 존재가 주는 든든함을 감히 자식 키우느라 드는 비용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은 상스럽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가 내게 주던 맹목적인 사랑과 새로운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가는 날들을 양육비니 학비니로 따지는 건 서로의 가치 차이가 너무 커서 아예 댈 것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돈이 들어가는 건 좀 신경이 쓰인다. 날카롭게. 왜냐하면 그 사랑하는 자식이 효도는커녕 누군가에 노후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자신의 부모를 의미한다.


자식한테 유학이니 뭐니 돈이 억수로 많이 들었다고 해서 취직 후에 내가 해준만큼 내놓으라고 지출내역서 작성하는 부모는 드물겠지만. 주변에는 그저 자식이 취직하면 지들은 지들 알아서 잘 살아만 주면 땡큐고 나는 내 인생 살겠다는 분들도 많지만.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노후의 가난에서 자식은 큰 원인이 아니라 작은 원인쯤으로 승진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말했다시피 자식들은 취직을 하고 나서도 결혼한다고, 집 산다고, 독립한다고 목돈 턱턱 가고 아이 낳으면 애 봐달라는 통에 어머니들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도 하니, 이거야 원. 그래놓고 가끔 소량의 용돈을 드리는 모습이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가 따로 없다.


받은 만큼 평소에 부모님께 잘하기라도 하면, 그래서 부모님 노후를 좀 책임져주기라도 하면 노후의 가난은 그리 걱정할 문제는 아닐 듯싶다. 하지만 본디 자식이란 것들은 돈 받은 며칠만 잘하다가 금방 연락이 뜸해지는 족속들 아니던가. 만약 부모님이 해주신 만큼 자식들이 감사를 표한다면 우리나라에는 효자가 넘쳐서 나의 이런 생각은 너무도 쓰잘데기 없는 것이 되었겠지.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어머니의 억척스러운 알뜰함아버지의 지독한 성실함에는 늘 에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식들에게 자신의 무언가를 내어주는 바람에 늙을수록 가난해지고 만다. 그리고 늘 도움을 받은 자식들은 가난한 부모님을 챙길 여력이 있어도 없다. 결국, 부모님은 노후에 가난에 처하게 된다. 그 가난에 이유에는 자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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