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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Feb 17. 2022

26_ 그 집 손녀는 랍스터를 먹어봤다고 했다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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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 하나가 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 찜질방에서 할머니 두 분이 나누시던 이야기다.

     

“우리 딸내미가 애가 셋이잖아. 맞벌이하면서 얼마나 힘들겠어?”


차가운 식혜 한 을 앞에 두고 할머니는 딸내미 이야기간식처럼 꺼내놓으셨다. 서두는 맞벌이를 하며 초등학생 되는 자녀를 키우는 딸아이가 안쓰럽다는 내용이었다. 근데 그 안쓰러움은 식혜 한 모금을 더 마시기도 전에 서운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니, 글쎄 나는 애들이 돈 때문에 맛있는 거 하나 못 사 먹고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돼서 계절마다 손주들 옷 다 사 입히고, 때마다 제철 과일이니 음식 좋은 거 해다가 먹이고 그랬는데. 저번에 손주 하나한테 요즘 뭐 하고 지내냐고 물어보니까 놀이공원 시즌권인가 뭔가 사 가지고 거기 다니느라 바쁘다는 거 있지? 주말에 나 보러 안 오나 전화할 때마다 바쁘다길래 어딜 그렇게 쏘다니나 했더니, 참나. 지들 집 사느라 대출받은 게 많아서 애기들 치킨 한 마리 더 사주기 여의치 않을까 걱정했더니….”



자칫 무료할 수 있는 찜질방에서 할머니의 이야기는 흥미로웠으나 남에 이야기를 듣는 것이 께름칙해 반대쪽 끝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할머니의 서운함만큼이나 컸던 목소리 탓에 남의 사연선명하게 듣게 되었다. 나도 자식이지만, 그 집 딸 내외의 행동에 그건 좀 별로다 하면서 혼자 미간을 찌푸리던 중 할머니는 마지막 클라이맥스라는 듯 더 큰 목소리로 말에 속도를 내셨다.


“저번에 애들 점심해주려고 준비하는데 손녀 딸내미가 뭐라는 줄 알아? 랍스터를 먹자는 거야, 랍스터를. 그게 그렇게 맛있다나 뭐라나. 그래서 내가 그걸 먹어 봤느냐고 물었더니 지 엄마가 먹고 싶다고 하면 사준다면서 나보고 그날 그거 먹고 싶다고 하데? 내가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둘이 벌어도 넉넉지 못할까 봐 지들 명절이며 생일 때면 부족함 없이 재닐 수 있게 용돈 두둑이 챙겨주고, 거기다 이사 때나, 집에 돈 문제가 생길 때마다 도와줬더니. 지들은 랍스턴지 랍스탄지 먹고 다녔다니 내가 얼마나 기가 차? 첫째 손자 녀석은 연어가 그렇게 좋데요. 그 비싼 거 얼마나 먹어댔으면 애가 그 맛을 다 알아. 난 아직 60년을 넘게 살았어도 랍스터 한 번 먹어본 적이 없는데…. 내가 돈이 없어서 못 사 먹었겠어? 시장에서 옷 한 벌 사 입을 때도 애들, 손주 생각해서 뭐 하나 허투루 안 사고 돈 아끼느라 그랬지….”



손주들은 스키장이니 워터파크니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했다.

딸 내외는 그런 곳 외에 가까운 마트나 공원에 가끔 할머니를 모시고 가서 할머니 돈만 다 쓰고 온다고 했다. 할머니는 내가 걔들보다 부자인데 걔들이 나보다 더 잘 먹고산다며 한숨을 푹 쉬셨다.


당신은 더 늙어서 애들한테 짐 되기 싫고 손주들 맛난 거 한 번 덜 먹을까 걱정돼 랍스터는커녕 연어도 쉬이 먹을 엄두를 못 내는데 자식, 손주들은 좋은 데는 지들끼리만 가고 외식도 열심히라며 서운함에 슬픈 목소리를 섞어 내셨다.


“우리 손녀가… 그 어린 게 바닷가재 맛을 알더라고. 그게 얼마나 비싼지 알지? 난 애들하고 그거 한 번 먹으러 간 적이 없는데….”  



할머니는 1년에 6번이나 될까 말까 하게 외식시켜주면서 이렇게 효도하는 자식 어딨냐며 자랑스러워하는 자식들에게 내가 황송하기라도 해야 하는 거냐며 속상해하셨다. 옆에서 한참을 듣고 계시던 할머니는 우리만 궁상떨며 살지 애들은 지들 먹고 싶은 거 먹으며 잘만 산다며 씁쓸한 위로를 건넸다.


할머니의 섭섭함은 손녀딸이 비싼 걸 먹었다는 것에 대한 질투가 아닐 것이다. 그 섭섭함이 할머니를 생각하는 딸자식에 마음이 눈곱만큼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는 것 정도는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나도 알 듯하다.


아마 평소에 어디 좋은 데 갈 때마다 어머니를 모시고, 언제 어디서건 어머니 돈은 절대 안 쓰려고 하고, 지극정성 어머니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자식이었다면 그깟 랍스터 손녀딸이 먼저 먹었다고 한들 그게 뭐가 기가 막힐까. 오히려 할머니가 평소 좋은 대접을 받아왔더라면 난 못 먹었어도 우리 손녀딸은 그런 좋은 먹어봐야지 하며 손녀 입에 맛난 거 들어가 좋기만 하다고 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할머니는 언제쯤 랍스터를 맛보게 되실까?

늙은 어머니의 식탁 위에 랍스터를 놓아줄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 그날 내가 들은 할머니의 섭섭함이  집 딸내미 귀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할머니의 입에 랍스터가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딱 가지뿐이지 않을까? 우연히 그 비싼 걸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거나 아니면, 직접 사다 드시는 것. 전자를 기다리다가는 랍스터를 평생 못 먹게 될 수도 있으니 후자를 선택하는 게 좋지 않을까 혼자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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