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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Feb 21. 2022

27_ 어쩌다 부모는 자식에게 돈줄이 되었을까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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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있으면 부모는 없어도 된다.”

“부모에게 바라는 건 돈뿐이다.”


가끔 이런 식에 기사들을 본다.

그리고 기사를 보며 불효 막심하다 욕을 뱉으면서도 막상 돌봄이 필요한 부모를 외면하는 사람들을 본다. 자식이 없는 나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부모의 기분이 어떨지 사뭇 궁금하다.


얼마 전, 어머니는 또래 아주머니들이 하나같이 자신에 일을 그만두고 손주들 봐주느라 만나서 밥 한 끼도 먹지 못하게 되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손주는 절대 안 봐주겠다던 이들이 막상 유치원 하원 때맞춰 나가야 한다며 바빠 죽겠다 푸념하는 모습이 재밌기도 하고, 이제 당신 나이가 그럴 나이라는 것도 신기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나는 아주머니들이 소득을 잃은 것을 걱정했다.

부자도 아닌데 지금 일을 그만두셔도 되는 걸까. 손주들 좀 키워놓으면 70대 되실 텐데 그때 다시 취업이 되실까? 만약, 일을 못 찾으면 자식들이 도와줄까?? 그들에 불행을 걱정하는 것조차 오지랖이라는  알지만 내 부모님의 노후를 들여다본 나로서는 이제 그런 생각이나 드는 것이다.


아쉽게도 주변에는 부모의 노후를 노동으로는 돈으로든 야금야금 빼먹는 모습만 보인. 결혼할 때는 집 부탁, 애 낳으면 손주 육아, 교육비 조달, 사업할 때는 투자, 생활비가 부족할 때 부모님 찬스를 쓰는 자식뿐이다. 가끔 용돈 몇 푼 쥐어드리고 식사 한 끼 같이 해 드려 놓고 한 번씩 큰돈 가져간다.


50만 원 정도 넣으면 100만 원 뱉어내는 요술 항아리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 요술 항아리는 금이야 옥이야 국빈 대접은커녕 늘  귀퉁이에 처박힌 신세다. 자식들은 밖은 뻔질나게 돌아다니면서도 안에 항아리는 아주 큰맘 먹고 이따~금씩 들여다본다. 혹여나 항아리“우리도 노후 자금이 필요하니 너희에게 더 이상 금전적 도움을 줄 수 없다” 한마디를 끝으로 뚜껑을 딱 닫을라치면 자식들은 무섭게 섬뜩한 표정을 하고서는 “그러고도 부모냐!”라며 인연을 끊겠다는 등 온갖 포악질을 부린다. 이미 필요할 때 말고는 자주 찾아뵙지도 않으면서. 효도는커녕 부양은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면서. 그 모습은 마치 나보다 못 살고 힘없는 노인에게 무형의 폭력을 휘두르며 돈을 빼앗는 젊은이를 보는 듯하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는 나는 항아리가 극진한 효도를 받았으면 하는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그저 생계에 시달리지 않고 낡은 몸 상하지 않으면서 보통으로 안전하고 평화롭게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하지만 많은 항아리들이 더 이상 요술을 부리지 못하거나 깨져버릴 경우 그냥 항아리들만 모아놓는 분리수거함에 버려지고 있었다.


이미 위태로운 아주머니들에 사정을 알게 될 때마다 나는 작지 않은 안감느낀다. 늙은 부모가 가난으로 힘든 것보다 젊은 내가 가난하게 사는 게 더 힘들다며 징징거리고 손 벌리는 자식을 보면 미간부터 찌그러진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사랑이니 내가 인상 쓸 필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남의 사랑에 관심을 줄여야 한다. 자고로 남의 일에는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남의 사랑에 끼는 것만큼 쓸데없는 오지랖도 없으므로.


근데 궁금은 하다.

자식들이 너(부모)는 빈곤으로 비참하게 살든 말든 자기를 도우라고 함부로 해도 차마 나(부모)는 자식들에게 “내가 널 위해 비참하게 사는 것까지는 못하겠구나.”라며 내 빈곤 피하자고 자식들 외면하지 못하고 자신들에 노후를 내어주시는 부모님. 그들에 사랑은 왜 그런 관계가 됐을까?


사랑하는 관계에서 한쪽이 너무 기우는 것이 부모·자신 간이라면 거기에 대해 이것이 옳은 것인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고 쳐도 한쪽으로만 퍼주는 사랑과 그로 인해 위험해지는 한쪽의 삶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둘 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무엇이든 내어주기만 할 게 아니라. 그래야 양쪽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거 아닐까.


부모가 무엇이든 내어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부모가 돈줄이 되는 것이 문제라고 하면 어머니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답하신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런 사랑을 모른다. 자식으로서 그것이 자식을 잘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어머니는 내가 이런 얘기를  때마다 “너는 애 안 낳아봐서 몰라~ 부모는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은 거야. 설령 그게 자기 인생을 망가뜨리더라도. 아마 네 글을 읽는 분들은 죄다 그렇게 생각하실 거다. 너도 애 한번 낳아보라고. 너도 똑같을 거라고.” 이런 말씀만 하신다. 그럼 나도 꼭 한마디 한다.

 

“서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부모·자식 간도 있잖아요.”


차마 자식들이 돈 없는 부모는 필요가 없고, 들어가는 부모는 없는 게 낫다는 말은 못 해도 행동으로 여실히 보일 때마다 그 부모의 기분이 어떨지 나는 모른다. 그저 그것이 슬프거나, 화나거나, 비침하거나 그런 종류의 기분일 거라는 짐작만 할 뿐. 


결혼할 때도, 아이 낳을 때도 부모에게 손 한 번 안 벌리고 잘 살고 있다는  아주머니 댁 첫째 딸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얘기를 흔히 들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하면서. (그 첫째 딸내 아기는 시어머니가 봐주고 계시는 중이라고 한다)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는 자식이라는 그 당연한 모습을 보기가 참 어렵다. 무슨 신화 속 이야기도 아니고. 


오늘도 부모님이 벌어다주신 돈으로 파인애플을 주문하면서 나도 그 신화 속 주인공은 아니지 한숨을 푹 쉰다. 그리고 기왕이면 제 일 제쳐놓고 손주들 봐주는 아주머니 모두 노후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으면 하고 연약하디 연약해서 하찮게 그지없는 바람이나 해본다. 또 쓸데없이 오지랖이나 부린다. 시간이 남아도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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