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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Feb 22. 2022

28_ 나라면 요양원에서 살 수 있을까?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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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요양원에서 살 수 있을까…?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는 곳, 죽어서야 나올 수 있는 곳이야!!!”


연세 많으신 어머니를 모시는 문제로 걱정하시던 이웃집 아주머니는 요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요양원이라는 말만 나오면 무서운 영화에 나오는 내레이션처럼 공포에 떨며 이렇게 말씀하시니 골치 아프다며 한숨을 쉬셨. 그리고 몇 년 전까지 복권가게보다 흔한 요양원이 동네있는지조차 몰랐던 나는 그분들이 그곳을 왜 그렇게 싫어하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요양원은 깨끗한 병실처럼 자기 배드 하나, 간이 서랍장 하나가 있고 햇살 들어오는 창문이 있는 곳이었다. 제때 밥이 나오고, 청소할 필요도 없고, 돌봐주는 사람도 있어서 홀로 외롭지 않고, 자식들만 와주면 언제든 외출할 수 있는 곳. 그래서 그럭저럭 꽤 살만한 곳. TV에서나 잠깐 봤던 장면들이었다.


그러다 요양원 봉사활동에 다녀오신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단번에 집에서 살다 죽으리라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편에 서게 되었다. 요양원에는 기저귀를 차신 분들이 많아 대변 냄새가 진동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창문이 잠겨 있어서(혹시 모를 사고 방지를 위해서라고 함) 환기가 어렵다고 했다. 거기다 창문에는 시트지를 붙여놨는지 밖이 잘 보이지를 않아 갑갑한데 마당도 없지~ 그렇다고 요양원이 넓은 것도 아니지~ 그렇다고 혼자서 외출이 되는 것도 아니지~. 동행자로 자식들이 와야 나갈 수가 있는데 자식들은 거의 찾아오지도 않지. 볕도 잘 들지 않고 똥내가 뭉근한 곳에서 노인들은 용변을 고, 밥을 먹고, TV나 휴대전화를 보고, 가끔 요양원에서 사람을 초대해 공연을 보여주거나 그림 그리기 등에 활동을 하는 것이 전부인 듯했다.


예전에 입원했던 6인실 병실이 떠올랐다.

그곳도 개인적인 공간과 활동 공간이 좁은 침대 그 한 칸뿐이고 거기서 먹고, 자고, 지내야 했다. 하지만 커다란 병원은 매우 넓어서 산책하듯 걸어 다닐 수 있고, 씻는 것도 내 마음대로, 먹는 것도 내 마음대로(원래 환자식만 먹어야 하지만)  수 있다. 병원이다 보니 청소에 신경 써서 쾌적하고 화장실 역시 병실 밖에 있다. 


하지만 그것도 답답했다.

병원 밖으로는 외출이 어려워 따뜻한 햇살을 잔뜩 먹을 수 없고, 미세먼지가 있다 한들 병원 건물 안 공기보다 바깥공기가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데 그걸 못하니 늘 갑갑했다. 작은 자유를 빼앗겼을 뿐이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어지간하면 외출하지 말라는. 그런데도 늘 퇴원만 기다렸다. 내 옆에 아픈 사람들만 보는 것도 기분을 상당히 멕 빠지게 했지만 내가 나가고 싶을 때 나가지 못하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사람이 오래 머물 곳이 아니었다.


근데 요양원은 거기보다 더하단다.

먹는 것도, 나가는 것도 내 마음대로 못한다니 감옥이 따로 없다. 외출하려면 자식들에 동행이 필요하다. 하지만 요양원에서 일하는 지인의 얘기에 따르면 자식은 처음에 잠깐 다니다가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면 아예 발길을 끊고 부모님이 돌아가실  와서 장례나 치르고 가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요즘 노인들은 모였다 하면 요양원에 가서는 안 된다며 서로 의지를 다진다는 말에 응원이 절로 터져 나왔다. 한 번 요양원에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오니까 무조건 가지 않는 게 수란다. 골골거리면서도 그럭저럭 잘 지내던 분들이 요양원만 갔다 하면 한 달이 안 돼서 돌아가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 모양이었다. 한 번 가면 더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체념하게 되면서 더 빨리 돌아가시더라는 얘기가 떠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말이 어디서 이상하게 돌고 돌아서는 내 귀에 “부모님 빨리 돌아가시기를 원하면 요양원으로 모셔!”라는 말로 전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니 거기 가기 싫은 마음이 오죽할까. 죽을 자리 보고 가는 건데.


물론, 모든 요양원이 이렇지는 않다고 한다.

좋은 요양원은 독립된 공간도 있고 쾌적해서 어르신들도 크게 거부하지 않으신다고. 당연히 내 집에서 사는 것보다야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시설 좋고 깨끗한 곳은 자리가 없어서 들어가기 어렵다 할 만큼 인기가 좋다고 한다. 다만, 비싸서 그렇지. 비싸다는 것은 곧 빈자리가 있어도 보통 서민은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얘기다.


보통의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저렴한 요양원이다. 동네 돌아다니다 보면 허름하거나 그럭저럭 멀쩡한 건물 맨 위층에 있는 요양원. 시내 나가면 쉬이 볼 수 있는 그곳. 창문을 시트지로 다 가려놓아서 안이 보이지도 않고 산책할 마당은커녕, 요양원 안에 걸어 다닐 충분한 공간도 없어 보이는 곳, 그런 곳 말이다.  년 전인가 시장 가는 길에 사무실이나 차릴법한 건물, 요양원을 내면 안 될 것 같은 자리에 요양원이 있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요양원 얘기만 나오면 자식들에게 “거기서 죽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지, 요양원은 안 간다!!”라며 역정을 내신다는 이웃집 할머니 이야기에 이제는 ‘어휴, 자식들 힘들게 왜 저러셔?’가 아니라, ‘할머니도 자식들도 모두 힘들겠네….’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한 번은 식사도 혼자 차려 드시지 못하는 부모님에게 요양원을 권했다가 크게 싸웠다는 아주머니에게 “혹시 아주머니도 그 나이 되고 건강이 안 좋아지면 요양원에 가실 거예요?” 물은 적이 있다. 아주머니는 1초에 머뭇거림도 없이 “내가 거기를 왜 가니!? 난 절대 안 가!” 질색을 하셨다.


“건강이 나빠지면 어쩔 수 없이 누가 돌봐줘야 하는데… 따님이 그때 자기 가족들 돌보고 일하느라 바빠서 아주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낸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또 한 번 여쭸다.

그랬더니 단호하게 자기는 남의 도움이 필요한 그런 상황은 없을 거라고 하신다. 근데 다른 아주머니들에게 물어도 대답이 비슷하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경제에도 갈수록 번창하는 사업이 요양원인데. 동네에 하루가 다르게 늘고 심지어 확장도 많이 한다. 어느 날 시내에 나갔다가 편의점처럼 건물마다 요양원이 하나씩 있어서 얼마나 놀랐던지. 그동안 관심이 없어서 모른 거였지 동네에도 이미 몇 개나 있다. 거기엔 누가 갈까?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자신에 노후를 낙관한다. 늙어서 아픈 게 자기 의지나 뜻대로 되는 게 아닌데도 현실적인 대책보다는 본인은 아프지 않을 거라고 믿음이나, 그때 되면 어찌어찌 자기가 해결할 거라는 대답을 주로 듣게 되는 걸 보면. 은연중에 ‘그래도 자식인데….’라는 기대를 갖는 분들도 꽤 많은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처럼 노후 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믿는 구석 없고서야 지금 당장 먹고살기 힘들다며 노후를 뒷전으로 밀어 둘리가 없다.


자식한테 어떻게 기대? 그냥 요양원에 가면 되지.라는 말을 쉬이 내뱉으시던 어머니는 요양원 봉사에 다녀오신 뒤로는 그 말과 비슷한 말을 하시기는커녕, 절대 그런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며 질색을 하신다.


요양원을 부정적으로만 볼 생각은 없다.

남보다 가족이 하는 간병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더 고되다.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더 쉽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자식이 개인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부모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일 테고. 결국, 서로에게 좋은 선택은 아니다. 그래서 요양원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가고 싶지 않다….


“어머니, 이제 요양원에서 지내셔야 할 것 같아요.”


나도 이 말을 듣게 될까?

충분히 걸을 공간이 부족한 곳에서 햇빛도 제대로 쬐지 못하고, 바깥공기도 맡지 못한 채 누워만 지내면 건강하던 사람도 시름시름 앓고 정신이 흐려지기 마련이건만. 그런 곳에 나보고 떠밀려고 한다면 내 기분은 어떨까…? 영화에서나 보던 넓은 마당에서 휠체어를 타고 볕을 쬐는 좋은 요양원이 아닌, 우리 동네에 그 작은 건물 위층에 있던 요양원에서 나는 살 수 있을까…?


그곳에 간다 한들 당장 목숨이 끊어지지는 않겠지만, 마음은 못살겠다며 죽어버릴 것 같다. 그래서 근처에 요양원을 볼 때면 나는 도저히 못 살겠다 싶은 곳에 혹시 내 부모님을 보내게 되지는 않을까, 아직은 먼 미래에 내가 그 꼴을 당하지는 않을까 꽤 자주 불안해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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