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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Feb 25. 2022

30_ 30년 후, 아이는 나를 어떻게 대할까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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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이나 거리에서 부모의 손을 꼭 잡고 종종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저 아이는 30년 후 부모를 어떻게 대할까?’


궁금하다.

엄마, 아빠가 아프다고 하면 울먹거리며 달려오던 아이는 30년이 지나서도 아픈 부모에게 그렇게 달려와줄까? 이미 장성한 자식들은 얼굴 한 번 보고 싶다는 늙은 부모에게 달려오기는커녕 불편한 눈빛을 보낸다. 그럴 때마다 그 어른들도 30년 전에는 저 아이들과 같았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30년 후,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은 참으로 긴 세월이다.

하지만 지금 거울 앞에서 수십 번 눈을 감았다 떠도 나는 어머니께 젤리를 허락 맡고 먹던 어린아이가 아니다. 누가 봐도 30년은 늙은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이리되는 동안 나의 부모님은 60대가 되셨다. 그리고 내 부모님의 부모님(이하. 조부모)은 모두 80대가 넘으셨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풍에 걸리셔서 거동을 못하셨다. 하지만 자식들은 하나같이 모시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고 할머니는 쫓겨나듯 딸 집~ 아들 집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셔야 했다. 내 어머니는 내 외할머니를 떠올리실 때마다 아픈 몸으로 메뚜기처럼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니시게 해서 평생 죄송스럽다며 아직도 그때 생각을 하실 때면 지독히 슬픈 표정을 짓곤 하신다. 당시 요양원이 드물기도 했지만, 다들 경제적으로 어렵기도 해서 그곳에 모시지 못했다. 하지만 요양원으로 모셨다 한들 좋은 결말은 아니었을 거다. 그곳 또한 형편 따라 돈이 제일 적게 드는 곳을 골라 쾌적하게 살만한 환경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후회스러운 날로부터 수십 년에 세월이 흘렀다.

내 외할머니를 모시지 못했던 그들은 환갑이 지났고 그들에 자식들은 30대에 들어선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 중 한 사람은 생계가 위태로운데도 나서서 돕는 자식이 하나 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자식한테 아프다고 한마디 했다가 아픈 부모 책임 못 지니까 알아서 건강 챙기라는 소리나 들었다고 했다. 누구는 암에 걸렸지만 병원에 동행하는 자식 하나가 없고 내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응급실에 갔지만 아들은 그 일로 따로 연락한 적이 없다.


누구는 자식이 셋이나 됐고 누구는 자식이 좋은 회사에 다녔다. 하지만 부모들은 아무도 돌봄을 받지 못했다. 돌봄은커녕 건강할 때에도 같이 시간 좀 보내자 하면 자식들은 난감을 떤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막상 큰일 닥치면 또 틀려~ 그때는 자식들밖에 없어~.” 확신하시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작은 일에도 이러한데 더 큰 일에 잘할 거라고 기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옛날 우화 중에 이런 게 있다.

할머니를 지게에 지고 산에 모시고 갔다가 지게와 함께 내다 버리고 내려오는 아버지를 따라갔던 아들이 그 버려졌던 지게를 가지고 내려왔다. 그래서 아버지가 “이제 그건 필요 없다.”라고 하니 아들이 “왜요? 저도 나중에 아버지를 산에 버려야 하는데.”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예전에는 이 이야기에 교훈이 ‘내 아이가 내 모습을 보고 배울 테니 효도받고 싶으면 너도 효도해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부모님을 모셔도 내 아이는 나를 모시지 않을 확률이 높다. 우리가 부모를 모시지 못하는 이유와 같은 이유로. 갈수록 더 건강한 부모조차도 모시지 않으려고 하는 판이다.


사정이 있다.

맞벌이하는 집은 평일에 부모님을 돌봐드릴 수가 없고, 외벌이인 집은 배우자가 불편해하고, 경제적 여유가 없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 해도 다들 바빠서 조부모를 돌볼 여유가 없다. 부모 안쓰러운 것보다 내 생활이 유지되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이 자식이라. 자식이 할 수 있는 희생은 요양원에 모시면서 요양원 비용을 내드리는 정도다.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한마디 앞세우고서.


나는 그런 자식들에 사정을 잘 안다.

그리고 내 어머니 또한 그런 자식들에 사정을 잘 아신다. 그리고 아직 아이가 어린 부부들도 잘 알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그 사정이기에 그 사정을 잘 알 수밖에 없다. 시부모나 처가 부모가 일주일만 자고 간다고 해도 날이 서는 부부가 많다. 하지만 아직 어린 자식이 자기에게 그런 눈치를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요양원에 가기 싫다고 발악하다가 결국 요양원에 보내지거나, 눈치 주며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거나, 외면당하는 자신의 부모들을 보면서 30~50대들이 이렇게까지 노후 준비를 안 할리가 없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금 아이들 역시 성인이 되면 저 혼자 먹고사는 것도 힘들고 결혼했으면 손주 키우랴, 가정 지키랴 힘들 것이 너무도 뻔한데 말이다.


부모를 부양하는 자식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일이 될 가능성은 드물다. 그런 가정을 보는 건 이제 매우 드문 일이 됐다. 노후 대책 없는 현실에 대해 한소리 하면 “없는 사람들은 정부가 다 도와준다니까 그 도움이나 받으며 사는 거지 뭐!”라며 큰소리친다. 자식한테만 손 안 벌리면 된다면서.


공원이나 거리에서 아이의 손을 꼭 잡고 환희 웃는 부모들을 보면 궁금해진다.

그들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1년에 몇 번 뵙지도 않으면서 큰 문제없다 싶으면 됐다며 얼른 자기 집으로 돌아오기 바쁜 자신들에 모습을 그 아이에게서도 떠올릴까? 내 어머니는 자신이 늙어서 자식에게 이런 대우를 받을지는 몰랐다며 한탄하셨다.


자식들과 가까이 살아도 홀로 사시는 이웃 아주머니의 집에는 명절, 손주들 맡길 때, 아주머니가 뭐 준다고 가져가라고 할 때만 아이들이 드나들 뿐이다. 가정 잘 이룬 든든한 자식들이 있지만 막상 골절로 입원하셨을 때는 집에 와서 오랫동안 챙겨주는 가족은 없었다. 그들에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보며 그것이 자신의 미래라고 생각할까? 잘 모르겠다.


하긴, 내가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옆 환자는 죄다 할머니셨는데 간병은 자식이 하지 않았다. 다들 직장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겨우 시간 쪼개 들렀으니 바로 가봐야 한다는 말을 했다. 보호자로 왔다 갔다 하기도 힘들다는 듯 툴툴대면서. 그 모습에 기겁하던 내게 어머니는 그냥 자식이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거라고, 그저 입·퇴원할 때만 와서 병원 수속만 해결해줘도 충분한 거라고 하셨다. 하지만 막상 연락 1번 어려운 아들에게 섭섭해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그 충분하다는 말이 내가 아는 충분함과는 다른가보다 했다.


“나 먹고사느라 힘들어서 두 분께 효도 못 해요! 그러니 두 분이 알아서 잘 사세요. 나한테 도와달라고 연락하지 마시고 요양원을 가시든 알아서 다 준비하시라고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우리는 이런 말을 창피해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떳떳하게 한다. 부모를 위해주지 못하는 것은 불효가 아니라 당연한 거고 노후 준비를 잘하지 못한 부모는 자식에게 죄인이라면서. 부모 아프다는 소식에 내 인생 걱정부터 한다. 내 일 다 내팽개치고 부모에게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조부모를 모셔야 하는 부모님들은 ‘어떻게 모셔올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모시지 않고 요양원으로 보내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한 지가 오래다. 지금 나와 내 부모님의 관계처럼. 자식이 효자여도 나는 요양원에서 지내게 될 확률이 높다. 어린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자식들이 부모를 모시는 게 당연하지!”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는 어려운 사정이 너무도 많다는 걸 다. 다만, 부모님께 자주 연락드리고 자주 뵙는 것 정도,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작은 따뜻함 정도는 전할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은 하고 싶다. 부모님을 버리듯 요양원으로 보내 놓고 연락 한번 없다든지, 서로 떠맡기 싫어서 죽일 듯이 싸우는 모습만큼은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20~40년만 지나면 우리는 지금에 부모님 나이가 되고 부모님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 나는 지금 그때를 묻는 것이다. 자식들한테 기댈 생각이 없다면, 우리가 60~90대가 되었을 때 아이들이 우리를 돌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지금 노후 준비를 그런 식으로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내 자식은 커서 나에게 뭐라고 할까?

30년 전 내가 그랬든 못난 엄마, 아빠여도 곁에만 있으면 된다며 30년 후에도 가난한 나를 꼭 안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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