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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Feb 26. 2022

31_ 당신의 노후에 일어날 변화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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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휴, 힘들다! 조금만 쉬었다 가자.”


언제부턴가 산책을 가면 어머니는 꼭 공원 입구에서부터 의자를 찾으신다. 그리고 대형마트에서 한 바퀴 휘돌고 나면 한 번 쉬어주어야 한다. 집에서 세 식구 먹을 반찬 2개 정도를 만든 날에는 꼭 쪽잠을 청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가 체력이 조금 떨어지시나 보다, 살짝 피곤하신가 보다 했다. 정말 힘드신 게 아니라.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마트 한 바퀴를 도는 것이 힘든 체력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그때 내 나이는 밤을 새도 멀쩡하다는 무적에 체력을 가진 20대였다.


“아이고 힘들다~ 힘들어~”


그래서 나이 드신 분들이 버릇처럼 하는 이 말에 무게가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그냥 조금 힘들면 으레 하는 말버릇이라 그것이 일상생활을 버겁게 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한숨 자면 다시 잘 지낼 수 있는 그 정도에 힘듦인 줄 알았다. 늙었다는 것은 나이가 주름이 많이 늘고, 안색이 좀 칙칙하고, 탄력이 없는 피부 등 늙어 보이는 거 외에 겉으로는 크게 달라진 건 없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20대 후반에 나는 모야모야병으로 몸이 많이 쇠약해지고 심한 어지러움과 두통, 구토, 저혈당 증상 등을 한꺼번에 겪었다. 체력이 급격하게 나빠졌고 덕분에 집 밖에 10분도 나가 있기가 힘든 게 가능한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당시 50대 후반이셨던 어머니와 산책을 가면 나는 공원 입구에 가자마자 앉을자리를 찾고 어머니는 공원 한 바퀴를 걸으셨다.


이뿐만이 아니다.

건강이 나빠지니까 머리도 전보다 둔해진 게 확 느껴진다. 새로운 걸 알게 되면 한참 동안 ‘그래서 이걸 뭐라고 했더라…?’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대화할 때도 원하는 단어가 바로바로 떠오르지 않아 말을 멈추기 일쑤다. 그냥 기분 탓이 아니라 내가 그 변화를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내 행동 범위가 조금 달라졌다.


순간 조금만 걸어도 금방 지치시고~ 뭔가 설명하면 금방 이해하지 못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떠올랐다. 이거였구나. 이런 변화를 겪고 그런 삶을 사셨던 거구나. 그제야 알았다. 늙어서 체력이 떨어졌다고 하는 게 젊었을 때처럼 단순히 쉬면 회복되는 게 아니라는 걸.

 

몸이 쇠약해진다는 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상황이 나빠지는 일이었다. 20대에서 30대로,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갈 때도 체력이 전만 못하다느니 늙었다느니 하는데, 그건 꼴값 떠는 거였다. 그때의 체력 저하와 노후로 인한 체력 저하는 완전히 급이 다르다.


이전에는 피곤함이나 지침이 그냥 좀 쉬면 해결되는 정도의 문제였다면, 노후는 그 의 생활방식을 이어가지 못할 만큼의 문제다. 쉽게 설명하면 30~50대에는 잘 쉬면 다시 일할 수 있지만, 노후에는 아무리 쉬어도 그때처럼 일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거다. 아무리 쉬고 또 쉬어도 50대의 체력으로도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아직 늙지 않은 이들에게는 누누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한들 이해도 공감도 하지 못한다. 눈앞에 노인을 데려다 놓고 직접 보여줘도 모른다. 불과 몇 년 전, 건강한 편이셨던 59살에 나의 어머니 역시도 당시 건강이 나빠 잠깐 외출해도 몹시 피곤해하는 내 몸 상태를 전혀 공감하지 못하시고 조금만 더 나가보자 하셨다. 그러다 작년 뇌졸중 진단을 받으시고 몸이 많이 안 좋아지후에 내게 한 말씀하셨다.


솔직히 그때 나는 네가 더 걷지 못하는 것이 정말 못 걸을 정도여서 일까 싶었어. 그래서 운동을 좀 더 했으면 하는 욕심도 좀 있었고. 근데 내가 아파 보니 그게 아니네. 우리 딸이 이렇게 힘들었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프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된 게 너무 슬프기도 하고…. 할머니 되는 거 남의 일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내가. 


아직 50대인 어머니의 지인들도 60대에 어떻게 몸이 휘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60대인 어머니가 아무리 말해줘도 자기 일이 아닌 듯 흘려듣는다. 결혼이나 출산 전에는 결혼, 출산 후의 삶을 절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다. 그래서 노후가 만만했다. 하지만 막상 겪어 보니 이건 불행과 다름이 없다. 부모님은 종종 “내가 50대만 돼도 날아다니지~” 한탄을 하신다. 60대가 되니 몸도 그렇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예전하고 많이 달라지셨다면서. 59살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하신다.


노후란 이런 신체 변화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로 인해 삶의 방식이나 환경이 바뀌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노후에 건강하고 돈이 많아 고생할 일이 적다면 그런 불행에 가까운 변화 역시 별일 아닌 것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면 이건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가난한 삶은 더 짙어지게 될 테니 말이다.


젊어서 죽지 않는 이상 누구나 이런 일을 겪는다. 

예외가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에 일이라고 믿않는.


그러니까 다들 젊었을 때 노후 대비를 허술하게 할 수 있는 거다.


노후를 대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단 하나, 생계유지다.


60대 이후에도 30~40대와 같은 건강을 가질 수 있다면 노후를 대비해야 할 필요는 없다. 건강한 몸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의학에 도움으로도 어렵다. 내 몸이 노쇠해지고 있다는 거, 그리고 노쇠해지고 말 거라는 사실. 그걸 알아야 한다. 머릿속으로 “그렇구나~”로 끝낼 게 아니라, 내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걸 제대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도 계속 늙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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