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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Mar 13. 2022

39_ 너무 우울한 얘기만 한 건 아닐까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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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내내 너무 우울한 얘기만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노후 파산이니 중산층 붕괴니… 카페에서 커피 1잔 맘 편히 못 사 마시는 그런 얘기만 하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나이가 들어서 나빠지는 건 사회나 사람들이 노인을 대하는 태도와 건강 쇠약일 뿐, 그 외에는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노후란 체력과 사회적 위치 등 꽤 많은 부분이 하향선을 그리는 시기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죽을 날만 기다리며 우울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우리 동네 수영장(시에서 운영)에 새벽반, 이른 아침반을 차지하는 건 할머니들이 시고 심지어 몇 년 전에는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 백발 어르신이 10km 완주하는 것도 봤다. 경보 말고 조깅으로. 어찌나 멋지던지. 매일 20대 때처럼 일과를 소화하기는 어렵겠지만, 건강을 완전히 잃은 게 아니라면 나이가 많다는 무슨 그리 큰 문제가 될까.


노인이 돼서도 실컷 여행 다닐 수 있고, 맛있는 것도 사 먹을 수 있고, 재밌는 취미를 가질 수도 있고, 내 맘과 맞는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면 그만이다. 오히려 젊었을 때 벌어놓은 돈 덕에 일에 얽매이지 않고 조금 더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새로운 꿈을 꾸고 도전하는 풍요의 시기일 수도 있다. 단순히 계산하면.


하지만 막상 내 부모님이 환갑을 넘으니 그 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단순한 계산의 답과 사뭇 다르다. 새로운 운동이나 취미, 사람들과의 만남, 여행, 좀 한적한 동네에 주택에서 살고 싶다는 꿈 뭐든 하실 수는 있는데 막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다 할 수 있는 그것들이 돈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거기까지 쓸만한 돈이 없었다.


노후 경험이 없다고 이해 못 할 거 하나 없는 쉬운 얘기다.

20~30대에 아프리카, 코타키나발루, 산토리니 어디든 갈 수 있고~ 계절마다 다른 지역에서 살기, 카페 사장되기 등 원하는 꿈에 도전할 수 있고~ 겨울에는 스키, 여름에는 래프팅 등 넘쳐나는 취미 활동 언제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할 체력과 열정은 충분하지만! 돈이 없어서 그중 무엇도 하기가 어렵다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하고 싶은 일은커녕 당장 생계비를 벌어야 해서 지옥에 끌려가는 듯한 기분으로 한 달에 절반 이상을 직장에 바치는 게 나이 들어서도 똑같다. 그래서 늙어서도 할 수 있는 건 수두룩하지만 할 수가 없다. 일하지 않아도 안전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한 돈이 없어서.


결국, 하루 종일 TV, 인터넷 방송 등으로 대부분 시간을 보내고 외출이라고는 산책과 장보기 정도가 전부인 단출한 삶을 산다. 등산을 가고, 전시회를 가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지 못하고. 그 이유는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 아니라 당장 그 티켓 30,000원이 버스비 5,000원이 아까운 처지라 그렇다.


그나마 젊을 때는 건강과 나이 그 2개 믿고 그깟 전시회, 그깟 여행 일단 질러~ 패기라도 부리지만 나이가 들면 건강과 나이 그 2개를 모두 잃는다. 그 패기 좀 부렸다가는 당장 내일 먹을 밥이 없어 생계가 위태로울 판이다. 그러니 꼬질꼬질 낡아빠진 소파에 누워 TV와 휴대전화를 보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행복이라는 건 마음먹기에 달린 거라서 노숙자가 되어 거리의 음식을 주워 먹으면서도 마음이 편하다며 삶에 만족할 수 있는 있는 거라. 누구든 맛있는 음식은 한 달에 1번 만 원 내외로 사 먹고, 여행은 꿈도 안 꾸고, 내의를 포함해서 옷은 1년에 2번이나 살까 말까 하고, 돈 드는 취미나 활동은 아무것도 없이도 무탈한 하루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만.


누구도 그렇게 살지 않는다.(극히 소수를 제외하고) 

오히려 적은 월급에 맞춰 사는 사람보다 자기 수준보다 좀 더 누리고 사느라 카드빚에 허덕이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그들에 모습은 가난한 삶은 꽤 우울하다는 내 생각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한다.


내가 지금까지 얘기는 특별할 거 하나 없는 흔하디 흔한 조금 가난한 노부부 일상었다.


누군가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일부러 부풀리지도 않고 아주 약간의 가감도 없이 내가 보는 그대로를 이야기했을 뿐이다. 근데 글을 쓰다 보니 우울한 글이 대부분이다. 과장된 거 하나 없는 이야기다 보니 믹스커피 1잔에 행복 같은 건 저 뒤로 밀려나고 만 것이다. 결론적으로 행복한 삶이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믹스커피 1잔으로는 택도 으니까.


부모님에 삶에서 조금 가난한 것이 지금보다 노후에 인생을 얼마나 더 쎄게 옭아매는지, 가난하면 행복하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래서 10년 더 젊은 지금보다 얼마나 나쁘겠냐며 노후에 가난을 우습게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선명히 느낀다. 내 부모님의 노후가 고단했던 것은 가난 때문이었지, 단순히 늙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은 아니었다.


나이 들면 우울증과 무기력이 올 만하다는 걸 알기 전, 그러니까 내가 부모님의 노후에 끼기 전에 삶을 무료한 일상에 찌든 어머니에게 한마디 한 적이 있다.


“뭐라도 좀 해요. 돈 안 들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은데… 가난해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잖아요. 행복을 스스로 챙겨야지 그렇게 뭘 할 생각도 안 하면서 삶에 재미가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고 지치는 삶이 주는 무기력함, 우울감이 집 앞에 공원을 산책하려는 마음조차 거둬들인다는 걸 아는 지금은 부모님께 공짜 취미라도 만들어라, 밖에 나가서 걷기 운동이라도 하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히 아이보다 노인이 많은 우리나라는 정책을 통해 노인들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고령화 사회로 들어선 국가인 일본은 노인을 노동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노동력으로 인식하고 주변 서비스업 등의 일자리를 늘렸다고 한다. 노인들만 고용하는 시간제 아르바이트 증가 등 노후에도 본인의 능력으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나는 우리나라도 점점 그렇게 좋은 시스템이 생길 거라 믿는다.


다만, 나라가 아무리 신경을 써도 가난을 벗겨주지못한다.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 신경 쓰면서 빈곤으로부터 구해줄 뿐. 물론, 조금 가난한 삶이 이따금 비참하기는 하지만 생사를 쥐고 흔드는 건 아니라서 영 못 살 건 아니다. 다만, 우리는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심해  필요가 있다. 노후를 살아가는 건 바로 나니까 말이다.


나는 노인의 가난이 이렇다고 한들 빈곤만 피한다면 조금 가난한 서민으로 살아도 좋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근데 부모님의 삶을 함께 살아 보니 좀 가난한 삶은 너무도 위태로웠고, 상당히 우울하기까지 하다. 만만하게 보고 웃어 넘기기는 쉽지 않을 정도로. 특히나 젊어서도 생계를 위해 돈 벌어대는 것이 꽤나 고달픈데, 늙어서까지 그 짓을 해야 한다는 것부터가 인생 참 고달프게 한다.


그걸 알기 전에는 휴대전화로 유튜브만 들여다보시는 아버지와 TV 드라마에 빠져 사시는 어머니가 그럭저럭 꽤 행복하게 잘 지내시는 줄만 알았다. 그리고 실상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는 걸 알고 난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쓴다.


누구든 이 얘기를 보고 500원짜리 믹스커피 하나로 행복을 느끼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걸 알았으면 해서. 그래서 누구 하나라도 더 가난을 경계하고 거기에 침식당하지 않기 위해 뭐라도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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