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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Mar 31. 2022

44_ 돈이 들었다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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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다. 어머니와 나는 다리가 좀 짧다.

허리가 길어서가 아니라 키가 작은 탓이다. 160cm가 안 되는 몸은 마네킹에 걸린 원피스와 매대에 걸린 바지를 입으면 하나 같이 끝단이 못난이 zone에 걸리고 만다. 허벅지 중간지점에서 끝나야 딱 예쁜 치마는 하필 다리 제일 짧아 보이는 무릎에서 끝이 나고, 긴 바지는 죄다 남아도는 기장들이 뻗을 자리가 없다며 발목부터 종아리까지 주글주글 모여있다.


옷을 입을 때 팔다리가 유난히 더 짧아 보이거나 이상하게 더 두꺼워 보이게 하는 을 입으면 아무리 체형이 예쁘다 한들 소용이 없다. 옷이 날개라서 그 사람에 인상을 결정하는데 꽤나 많은 지분을 차지하다 보반대로 못난이 zone에 특화된 옷을 입으면 멋진 사람도 외모 값이 죽 깎인다. 그러니 평범한 나는 여간 신경이 쓰인다. 이 남아도는 기장들이.


그리고 그건 내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옷을 살 때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기장을 줄이고 싶다고 하셨다. 나 아주아주 어릴 적부터.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수선가게나 세탁소에서 옷기장을 줄이는 모습을 본 적이 드물다. 3,000원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더 올랐을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우리 동네 기준으로는 바지 기장 줄이는데 삼천 원이 들었다.


당시 삼천 원이면 순대 1인분이나 떡볶이 1인분 사고도 500~1,000원이 남았다. 어머니와 나까지 단 줄여야 할 게 바지와 상의 10벌은 될 텐데 그럼 벌써 3만 원, 치킨 한 마리 시키고 만 원은 남는 돈이다. 거기다 그동안 산 옷에 대부분은 세일 상품으로 5000~20,000원에 싸게 산 것들인데 3,000원 더 들여 기장을 줄이면 싸게 산 의미가 덜해진다. 옷기장 줄일 때 마음에 쏙 들게 줄여주는 적도 드물어서 3,000원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 적도 적지 않기도 하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머니는 꽤 오래전부터 재봉틀에 관심을 가지셨다. 30만 원짜리 재봉틀을 사도 딸내미 옷까지 죄다 수선하면 본전은 뽑고 남을 테니까. 우리가 원하는 길이에 맞게 언제든 단을 줄이고 늘릴 수도 있고. 질린 옷들은 좀 더 세련되게 수선해서 멋들어지게 입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조물조물 뭔가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그것이 퍽 재밌는 소일거리가 될 거 같다며 설레 하셨다. 


왼쪽으로 보나 오른쪽으로 보나 무조건 이득이었다.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것은. 그건 무료한 어머니의 삶에 조금의 활력이 되어줄 효자상품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청춘이니 몸이 좀 안 따라줘도 뭐든 하면 할 수 있다, 그러니 나이 드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그 말을 나는 너무 좋아하는 나는 어머니가 재봉틀 얘기만 꺼내면 냉큼 배워보시라고 권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늘 포기하셨다.


“이 나이에 이런 거 해서 뭐 해….”  


어머니는 늘 나이 탓을 하셨지만 실은 돈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노후에는 수선할 돈도, 수선을 배울 돈도 없었다. 어찌 보면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다. 그깟 수선 남한테 다 맡기든 재봉틀 사서 직접 배우든 끽해봐야 160만 원을 넘기지는 못할 거였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그럴 돈도 없었다. 늘 그 돈 때문에 그 작은 것조차도 망설이셔야 했다.


정말이지 그깟 몇 푼 때문에 이런 거 하나 과감하게 한 번 지르지 못할 건 또 뭐냐 싶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점점 70세에 가까워지시는 아버지의 실직이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계셨다. 다시 취직이 어려울지 모르는 그 상황이 닥치면 그 몇 푼이 너무도 아쉬워 절절맬 거라는 걸 말이다.


돈이 뭐길래, 그까짓 게 뭐길래.

이런 말은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쉽게 술술 나오지만, 당장 그 돈 때문에 그 소소한 취미 하나도 인생에 쉬이 들이지를 못한다. 처지가 여유롭지 못해 그까짓 돈에도 절절매야 하는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거실에 앉아 바느질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갈라진 실 끝에 침을 살짝 발라 좁은 바늘구멍에 실을 꿰어놓고 이렇게 저렇게 바지 기장을 줄이다 바느질이 마음에 안 든다며 투덜거리시면서도 늘 내게 완성작을 보여주신다. 그럼 난 너무 예쁘다, 길이를 아주 딱 예쁜 자리에 맞게 잘랐다 칭찬을 듬뿍 드려야 한다. 그래야 3,000원 아낀 보람이 있다며 환하게 웃는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래야 어머니도 나도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옷 하나 예쁘게 줄여 입지 못하는 처지로 지질구질한 마음을 조금은 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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