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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un 09. 2022

67_ 퇴직금이 노후를 책임져 줄 수 있을까?

목차__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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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아버지는 정년퇴직하셨다.

20년 넘게 한 공장에서 시설관리 일을 하시다가 퇴직금으로 8천만 원 조금 넘는 돈을 받고 직장인 딱지를 떼셨다. 그리고 퇴직금은 바로 일부 아파트 대출금(지금 사는 곳)을 갚고 남은 건 연금 보험에 가입했다.


연금 상품에 가입하기 전, 손실 위험을 극도로 싫어하시던 아버지는 은행 저금을 원하셨다. 그러나 예금처럼 중간에 필요할 때마다 편하게 꺼내  수 있고 은행 예금상품보다 이자가 더 나을 거라는 보험설계사님의 권유갈팡질팡하시다가 결국 연금 보험을 택하셨다.


수익률이 나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10년 동안 600만 원 이상의 이자가 붙어서 그건 문제 되지 않았다. 오히려 타격은 중간에 아들 독립 자금으로 5,000만 원을 떼어주는 바람에 부모님의 노후 자금이 2,000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였다.


조그마한 집 대출금, 자식 집값, 한 달에 12만 원의 연금(종신형). 아버지의 퇴직금은 그렇게 동이 났다. 그래도 집 대출금 다 갚은 덕에 몇 년간 생활비 덜 쪼들리고 1년 전부터 매달 12만 원이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대단한 생활의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부모님의 삶이 나아진 건 딱히 없었으니까. 더 나빠지지 않았을 뿐.


그동안 물가가 많이 올랐고 돈의 가치가 떨어져서 지금의 8,000만 원과 10년 전의 8,000만 원은 조금 다르겠지만, 그렇다고 한들 이 돈으로 삶이 달라지기 어려운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일 듯싶다.


퇴직금이 노후에 큰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까?


상당히 구체적으로 계산해볼 일이다.

생활비 월 150~200만 원을 예상하면 1억을 받아도 5~6년 안에 바닥이 나고, 집을 구해 임대를 놓는다 쳐도 월 30~50만 원을 얻게 되니 생활비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퇴직금이 3억이어도 돈 어디에 쓸까 룰루랄라가 아니라, 마땅히 돈 쓸 곳이 마땅치 않다며 근심 한 사발을 마시게 된다. 사업이나 금융투자 같은 건 워낙 복잡해서 제외했지만, 실상은 3억으로도 남은 생 생활비 문제가 맘 놓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보니 가게를 차려볼까, 과감히 투자해 볼까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근데 가게 하나 차리는데 억 소리가 나니까 3억도 빠듯한 것이다.


그나마 5억은 좀 살만하다.

그리고 10억은 여생을 꽤나 안심 정도 할 수 있다.

 이것도 다 당장 대출금 없고, 집에 환자 없고, 자식한테 들어갈 돈 없을 때나 여유로운 돈이다. 가족 중 누구든 병원 드나들고 자식들 집이니 뭐니 돈 대주면 반으로 쪼그라드는 건 순식간이다. 그러니 퇴직금을 믿고 노후를 준비하지 않는 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가!

 

유명 사립학교에서 퇴직하신 선생님도, 대기업에서 은퇴하신 아저씨도 퇴직금으로는 노후 생활비가 해결될 거라 기대하지 않으신다. 아쉽게도 주변에 퇴직금만으로 노후에 룰루랄라 하시는 분은 없다. 다들 생활비 걱정을 안 하는 건 연금이나 불로소득 덕분이다.


막상 퇴직금이 노후를 지켜주지 않는 것이다.

나 살 집이야 퇴직금 쏟아부어 마련하면 되지만, 죽을 때까지 매달 필요한 적당한 생활비는 마련하기가 참 쉽지 않다.


한동안은 나도 2,000만 원이 적은 액수는 아닌데 연금이 아니라 수익률 높은데 투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도 반대고 당신의 수중에 돈을 쥐고 있어야만 마음 편해하시는 듯해서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동안 힘들게 일하셨는데 이렇게라도 보상(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부족하지만)이 되었으면 싶기도 하고.


그러다 2년 전 보험사에서 내년 봄이 연금개시일이라며 연락이 왔다. 퇴직금을 생활비로 써버리면 아버지 마음이 허하실까 걱정이 되어 다시 해지하고 목돈으로 가지고 있을까 했지만, 그동안 비상금도 마련됐겠다 차라리 빨리 개시해서 연금을 한 번이라도 더 많이 받아 득을 보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연금 받은 지 1년쯤 돼간다.


퇴직금을 받은  10년이 지나고 보니 퇴직금이 노후에 가난을 해결해주기보다는 우산에 구멍이 여러 개 나 있는데 그중 하나를 막아주는 정도였다. 하하. 도움은 됐지만, 힘든 건 여전하다.


가끔은 “만약, 퇴직금 받던 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혼자 질문을 한다.

여담을 좀 하자면, 사실 아버지가 퇴직금을 받으시던 날 어머니께서는 대출을 조금 받아서 작은 아파트를 하나 사고 싶어 하셨다. 바로 옆 동네 아파트로. 하지만 아버지는 투자했다가 손해라도 보면 어쩌냐며 팔짝 뛰셨다.


지금 그 아파트 값은 1.5~2배 상승했고 대중교통이나 주변 시설이 좋아서 공실도 거의 없다. 그때 어머니 말씀대로 했으면 노후가 이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가 많이 남는다. 정말이지 우리 집은 어머니 말씀만 잘 들어도 상류층 되고도 남았지 이외에도 돈 벌 기회가후….


근데 이런 좋은 기회만 있었던 건 아니다.

당시 주변에서 아버지의 퇴직 소식을 듣고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후 준비해놨냐며 묻고는 곧 퇴직금으로 자기 사업에 투자하라, 아니면 좀 빌려달라며 말에 꼬리를 달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단박에 거절하셨고 사람들은 “그렇게 사니까 계속 힘든 거야~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히 도전해야 돈을 벌지. 지금처럼 손해 볼까 봐 벌벌 떨면 절대 가난에서 못 벗어나~”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로 10년이 지났다.

간간이 들려오는 그들의 소식은 하나같이 다들 어려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는 내용뿐이다. 거짓말처럼 다들 하던 일이 망했단다. 아버지의 소극적인 태도가 그 나쁜 기회들을 다 놓친 것이다.


어쨌든 다들 한 번씩 계산해보기를 바란다.

내 퇴직금으로 무얼 할 수 있는지.  내 퇴직금이 나의 생계를 어떻게 책임져줄 수 있는지. 아마 막막할 거다. 어지간히 많은 퇴직금이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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