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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un 16. 2022

72_ 우리 집 노후 비상금

목차__ 下

● 적금 풍차돌리기 :

1년간 1달에 1번 1년짜리 정기적금에 가입, 총 12개의 정기적금 통장을 만든다. (금액은 원하는 대로) 그럼 1년 후 12개의 적금이 차례대로 하나씩 만기가 돌아오게 되면서 매달 1번씩 목돈을 받게 된다. 참고로 적금 가입은 꼭 매달 1개씩 할 필요는 없다. 2달에 1개, 3달에 1개 이런 식으로 본인의 상황에 맞춰 활용할 수 있다.


인터넷에 후기가 많으니 자세한 내용은 검색을 이용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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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었다.

우리 집에는 당연히 비상금이 있을 거라고. 그동안 초라하리만치 찌꺼기 같은 반찬도 허투루 버리지 않으시고, 옷은 닳고 닳도록 입으시며, 필요한 물건은 되도록 얻어오시고 주워오시던 어머니의 생활이 30년이 넘으셨으니 그 고됨이 고스란히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본 통장에는 비상금은커녕 생활비로도 빠듯한 숫자가 전부였다. 과거를 되짚어 보니 작은 여유조차 포기하고 얻은 조그마한 절약에 결실은 순식간에 자식들의 배와 머리를 채우는데 쓰이고 말았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연금 보험, 나는 은근히 이걸 믿고 있었다. 연금 보험은 중도인출(가입기간 동안 돈을 꺼내 쓸 수 있는 제도)이 가능했기 때문에 따로 비상금이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입원을 하고 병원비 폭탄을 때려 맞기 전까지는.


검사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병원비가 백만 원 단위로 늘었다. 실손의료보험은 먼저 병원비를 계산하고 난 후에 그 영수증으로 보험 청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이 필요했다. 신용카드가 있으니 당장 결제를 못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당시 연말정산에 더 도움이 되는 현금영수증을 하고 싶었던 게 문제였다. 당장 현금이 없었다. 그래서 연금 보험 중도인출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하려고 보니 이게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연금 보험은 적립금을 주식이나 채권 등 금융상품에 투자한다. 그러니 수익률이 마이너스일 때 중도인출을 하게 되면 손해가 발생하게 되고, 거기다 돈을 꺼낼 때 먼저 입금한 돈을 꺼내 주는 선입선출 방식이면 더 손해가 커진다. 투자금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복리수익이 많기 때문이다.  


1~2년도 아니고 6년 넘는 세월의 득을 포기하는 건 황금똥을 낳는 햄스터를 잃는 것과 같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현금영수증 혜택 받는 거 중도인출 손해로 다 깎아 먹게 생겼으니 결국, 연금 보험은 적당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퇴직금은 어떤가.

집 대출금 떼고 아들 독립금 보태주고 남은 돈 2,000만 원. 처음에 부모님이 “이 돈은 우리 집에 최후의 보루다! 정말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쓸 거다!” 하셔서 이게 진짜 우리 집 비상금이 되어줄지 알았다.


하지만 병원비가 부족하면 이거라도 꺼내 써야 하지 않겠냐고 물으시던 아버지의 표정에는 딸에 대한 걱정 외에도 무언가를 잃는 듯한 허무에 가까운 감정들이 복잡하게 섞여있었다. 불안하신듯했다. 이것마저 없으면 정말 기댈 곳이 없는 거니까. 청춘을 다 받친 대가가 전부 사라지는 것 같아 슬프신 것 같기도 했다. 어머니도 이후에 또 누가 또 아플지도 모르고 내 건강에 얼마가 들어갈지도 모르니 최악에 상황을 대비하여 퇴직금만은 건드리지 말자고 하셨다. 그래서 그때 집에 있던 현금 탈탈 털고 부족한 건 신용카드로 채워서 병원비를 결제했다.


이후 병원에서 퇴원하고 부모님 돈을 관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게 불로소득과 비상금 마련이었다. <2년 안에 1,000만 원 모으기> 기간을 1년으로 하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한 달에 최소한 84만 원을 저축해야 하는데 당시 아버지 월급 180~210만 원이라 그럴 수 없었다. 관리비, 보험료, 연금, 휴대전화비 등 고정지출도 만만치 않고 최소 식비와 절대 줄일 수 없는 지출(ex. 병원비, 생필품 등)도 염두에 둬야 하니까. 그래서 기간은 2년으로 정했다.


비상금은 적금 풍차돌리기로 마련했다.

이자 수익률에 장점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장 저금할 수 있는 금액이 많지 않으니 다달이 조금씩 액수를 늘리는 시스템을 가지고 싶었다. 원금 손실 없이 불규칙한 어머니 수입을 언제든 추가로 넣기에도 좋기도 하고.  


2017년 매달 1번씩 정기적금에 가입하기 시작해서 2018년부터는 매달 120만 원에 목돈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근데 총 저금액이 40만 원이던 4개월 차부터는 더 이상 저금할 수 있는 돈이 없었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통장은 더 만들어서 10개까지 늘렸다. 거의 절반은 적금을 못하고 나머지는 생활비 아낀 돈이랑 간간이 생기는 어머니 수입을 넣다가 1년 후에는 통장이 하나씩 만기가 되면서 받은 120만 원으로 비어있던 적금 통장을 채웠다.


돈을 제때 넣지 못해서 스트레스받기보다는 어떻게든 돈을 모으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무엇보다 은행 적금 상품은 돈을 제때 입금하지 못해도 원금 손실이 없으니 내 마음대로 입금을 멈추거나 중도 해지할 수 있다는 게 마음이 편했다. 이자는 원래 받으려던 것보다 적겠지만.


그리고 1년 뒤.

주먹구구식으로 한 결과 통장이 10개로 모은 돈은 700~800만 원 정도. 제대로 모았다면 총 1,200만 원이겠지만, 중간에 돈이 없어서 제대로 입금하지 못하고 만기 때 받은 돈으로 남은 적금을 메꾸다 보니 금액이 적다. 그래도 예전에 비상금 200만 원도 없었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부자인가!


비상금 액수가 늘면 현금 얼마, 저금에 얼마, CMA 통장에 얼마 이렇게 나눠서 관리해도 좋다. 하지만 우리 집은 이후 치과 치료니 뭐니 자꾸  쓸 일이 생겨서 저금 상품으로만 관리하고 있다. 예금 풍차돌리기를 이용해서.


돈을 모을 때는 꽤 힘들었다. 정신적으로.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을 고민하다 결국 포기해야 하는 그런 기분을 자주자주 매일매일 느껴야 하니까.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결국 돈을 덜 쓰는 것뿐이라. 그렇다고 수입을 늘리는 건 절약보다 더 어렵고.


근데 그 시간이 영원하지 않고 일단 비상금이 한번 마련되고 나니 이후 여기에 더 이상 신경  일이 없어 좋다. 아끼고 아끼느라 더 쪼들리던 생활도 덜해지고. 이제는 커피 한 잔을 포기할 이유도 줄었다. 병원비가 많이 나오거나~ 갑자기 냉장고가 고장 나는 등 초과 지출이 생기면 요걸로 해결하고 있다.


무슨 일 생길 때마다 요렇게 해결할 돈 있으니 가난에서 슬쩍 벗어난 기분이 든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사실이지 뭐. 

요렇게 하나씩 이뤄가면서 실제로 크게 한 걸음씩 가난에서 멀어지는 게 이 노력에 뻔한 결과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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