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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ul 31. 2022

91_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애틋하지만

목차__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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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늙어서 몸져누워도 절대 자식들한테 수발들게는 안 할 거야. 애들한테 그 고생을 시킬 수는 없지!”  


노후에 대한 걱정 속에서 쉬이 듣는 말이고 참으로 애틋한 마음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애틋함은 그저 마음일 뿐이라 몸져누운 나를 돌보기는커녕 돈 100원도 벌어오지를 못한다. 그러니 결국 누군가에 도움 없이 생활하기 힘든 상황이 오면 자식에게 연락이 닿고 만다.


만약, 그때 자식에게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스스로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경우 정부의 도움을 받거나 그것조차 안 될 경우 빈곤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모두 상상 이상으로 불행하고 비참한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식에게 폐를 끼치느니 빈곤을 택하겠다 하면 더 할 말은 없다.


다만,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사는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에 대해서.


일단, 나는 내 부모가 그런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한다면 평생 그것이 내가 행복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가 될 듯싶다. 내가 죽을 때까지 그것은 내 마음에 피멍이 되고 슬픔이 되어 나를 괴롭힐 것이다. 부모의 불행은 충분히 자식에게도 불행이 된다. 그래서 기왕이면 두 분이 빈곤만큼은 피하고 조금이라도 안정적으로 살아주시기를 바란다. 자식들에게 피해를 주느니 죽어버리겠다는 말만 하시기보다는 내가 잘 사는 게 자식들에게도 좋다며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셨으면 좋겠다. 


그러니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면,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조그맣게라도 해결책을 마련해놓아야 하지 않을까.  마음이 간절하다면 말만 하지 말고 노후 준비에 꽤나 신경 쓰는 게 맞지 않을까.


친척분 중에는 부부간의 불화로 가족과 따로 나와 혼자 사는 분이 계신다. 약간의 비상금만 가지고 나오는 바람에 허름한 집 한 칸을 겨우 얻고 소득이 적은 일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사정을 들어보니 생활이 여의치가 않고 주거문제도 불안하여 늘 절절매는 듯했다. 근데 자식에게는 일절 도움을 안 받으신다. 세 명의 자식들이 다들 공부 잘해서 취직도 잘했다며 자식 자랑이 대단했던 분이다. 예전부터 자식 사랑이 끔찍했던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과 떨어진 이후로 여짓까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자기 형제들에게만 연락을 한다. 특히, 내 어머니에게 가끔 보다는 꽤 자주 실직이나 주거, 금전 문제 등으로 연락이 오고 있다.


그분에 전화를 받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궁금하다.

그분이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면 병원 수속은 누가 밟고 간병은 누가 하며 비용은 누가 감당할까. 나중에 생계가 위태로워졌을 때는 도대체 어떻게 상황이 수습될까. 그나마 지금은 50대라는 나이 덕에 일이 있지만, 이제 곧 육십인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어 나라에 도움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아플 때는 누가 돌봐주고 돈을 대줄 것인지가 나는 불안하다.


형제들도 이것이 걱정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분에게 이런 얘기를 조금이라도 비추며 자식들 이야기를 꺼내면 아직 멀쩡한데 왜 그런 생각을 하냐며, 그때 가서는 죽든 말든 알아서 하겠다 큰소리치신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죽을 것 같을 때마다 형제한테 손을 내미니 그때 알아서 한다는 말은 그저 내 자식만 위하겠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 건 스스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서 그 힘으로 자식들을 자신의 불행에서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기 힘든 시기가 오면 결국 그분을 맡는 건 자식이다. 성인이 되고 각자의 가정이 있는 형제들이 흔쾌히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 형제를 돌볼 리 만무하다.


그걸 아는 형제들은 그동안 자식들한테 얼마나 헌신적이었냐, 이제는 도움 좀 받아도 된다 한 번씩 말을 꺼내 보지만 달라지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 자식들은 지금 자기 부모가 그렇게 비참하게 사는 걸 알면서도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는다는 부모의 생각을 철저히 따르는 중이다.


그분은 가난에 허덕이며 살면서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그 말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건 그나마 소득이 끊기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지금보다 살기가 더 힘들어지면? 자식들에게 외면을 당하든 말든지 간에 그 문제는 자식들에게 넘어갈 것이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결국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돈이 많아도 자식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있지만, 그때는 돈이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문제 해결이 훨씬 쉽다. 자식이 짊어져야 할 짐에 무게가 훨씬 가벼워진다는 얘기다. 그러니 뭘로 보나 노후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떼를 쓰듯 내가 알아서 할 거라는 말만 할 게 아니라.


이런 마음 껄끄러워지는 소리에 누군가는 “어떻게든 자식들한테 안 알리면 그만이야!” 더 큰소리칠지 모르지만 사실 중요한 건, 자식들에게 알리고 말고 가 아니다. 자의로 자식에게 도움을 받지 않든 타의로 도움을 받지 못하든 그런 문제가 닥쳤을 때 어떻게 해결할 거냐는 거다. 본인에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으냐는 것이다. 비참할지 조금은 괜찮을지 결국은 본인의 선택에 달린 거니까.


자식에게 도움을 받지 않을 거라면

그 빈곤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는 거, 그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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