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아직 보내지 못한 나에게, 새로운 해가 아직 어색한 그대들에게.
2017년 12월 31일. 자정이 가까운 밤. 아마 묵은해를 보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타종 행사에 몰려들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티브이에서 하는 카운트다운을 기다렸을 것이다. 10,9,8,7. 1이 울려 퍼지는 순간 17이라는 숫자가 필름 카운터 넘어가듯 쉽게 18로 바뀐다는 사실을, 우리 누구도 모르지 않는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작년에 건넸던 인사를 또 누군가에게 건네게 될 순간이라는 것도. 12월 31일은 그렇게 카운팅 한 번으로 쉽게 넘어가고 아무렇지 않게 누구든. 1월을 그렇게 맞이했을 것이다.
이렇게 쉬워 보이는 일련의 과정들. 우리는 어쩌면 준비도 없이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간단하게 생각하면 하루가 지났다는 것. 그것 이외에 특별할 게 없는 일이다. 계절이 표정을 바꾸지도 않았고,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았다. 올해 1월 1일은 월요일이었다. 일요일 이후에 하루를 더 쉰다는 것. 그 감각이 미묘하게 어색하다는 것 말고는 어쩌면 그 날은 별 것 없는 하루였을지도 모르겠다. 해를 맞이한다며 술이라도 한 잔 거나하게 걸친 사람들에게는 별것 아닌 숙취가 따라붙는 하루였을 테고, 집에서 조용히 쉬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무료하게 티브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대다가 소파 테이블에 무심하게 발을 걸치는 월요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모창 안에는 수많은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들이 툭 툭 툭 떨어져 내렸더랬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는 스스럼없이 연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인들이나 아끼는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랍시고 복 많이 지으라는 이야기나, 새해는 건강하자는.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할지도 모르는. 그래서 어떤 의미가 있든 없든 간에 새해 첫날에 어울릴법한 이야기들을 손가락이나 목소리로 전했었다. 아는 사람들에게 새해 안녕하기를 바란다는 인사를 하면서 '새해구나'를 뼈저리게 깨닫는 동시에 '새해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면 좋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이 오더라. 그렇다. 새로운 해, 특별할 것 없지만 나는 한 살 더 먹었고 어른인 이상 어른스럽게 새해 다짐쯤은 하나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느 순간 아슬하고 간지러운 위기의식에 잠시 사로잡히는 것이다.
12월은 우울한 사람들이 많은 해
얼마 전에 기사를 하나 읽었던 적이 있다. 정확하게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유독 12월에 우울감을 갖는 사람이 많아... ' 같은 느낌의 워딩. 기사 상단에 박힌 고딕체가 12월답게 서늘하게 느껴졌었다. 연말 모임에 나가 남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거나, 상대방의 포장된 행복을 보면 나는 왜 이런가 싶어 격한 우울감에 빠진다는. 또 한 해 동안 나는 왜 이렇게 해놓은 것이 없는가, 무력한 자기 상실감에 휩싸인다는 대략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긍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12월이 한 해의 끝 달이고 나 스스로도 무력감과 우울함을 많이 느꼈기 때문에 그 기사가 마냥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면 의미는 두기 나름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12월 내내 자문해보았다. 나는 17년 1월에 내가 그 해 어떤 사람이기를 원했는가. 어떻게 되기를 기대하고 바랬기에 이렇게 큰 공허함에 휩싸이는가. 그리고 나 아닌 어떤 사람들은, 얼마나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한 해를 보냈는가. 이 우울함의 근원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 하고.
아마 강박일지도 모른다.
쏟아지는 자기계발서들.이지 고잉을 강조하는, 삶을 사는데 꽤나 훌륭한 매뉴얼을 줄 것 같은 행동과 화법 관련 책들. '신경 쓰지 않는 기술'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 곳의 법대로라면 아마 누구라도 사회생활에서 완벽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훌륭한 기량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화려한 화술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마치 그렇게 완벽에 가까워지면 세상도 꽤나 아름다울 것이라는 그런 기대들 속에 다들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즐길 문화가 넉넉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고상한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책들도 즐비하다. 그 책들이 말하는 것은 화술이며, 취미이고, 어떤 것을 쉽게 이루는 기술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사실 일종의 '강박' 이 공통분모처럼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어디서든 역할에 맞는 꽤나 좋은 기본기를 갖춘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던가. 직장에선 좋은 상사나 좋은 직원, 집에서는 유순한 자녀나 좋은 부모, 바깥에서는 누군가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누구에게나 관심받는 삶. 관계에서 쌓이는 우울의 기반은 이 역할 어딘가의 포인트에서 본인의 무력감을 느꼈을 때 시작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사실 어디에서나 완벽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한 포지셔닝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으니까. 두 가지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다는 것은 무리고, 무리가 아니라 해도 그건 확실히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 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완벽한 사람. 그건 강박 아니었던가.
새해, 다짐하지 않기로 한다.
그래서 나는. 다짐하지 않기로 한다. 새해가 되면 펼치는 새 다이어리를 1년 꼬박 채우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않는 기분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자리에서 포지셔닝을 바꾸어 가며 고군분투하는 모두들. 하루를 스스로가 좋을 대로 보낼 권리 정도는 있지 않을까? 가끔은 의미 없는 일도 해 가며, 시간을 마음대로 쓰기도 하면서. 본인에게 가장 우선인 일을 택하지만 차선인 일은 잊어버리기도 하면서. 너무 속 편한 소리라고 누군가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짊어져야 할 역할도, 책임져야 할 시간도 아직 너무 많이 남아있으니까. 그래도 괜찮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새해 거창한 다짐 하나 없어도. 노력하는 당신의 오늘이 썩 괜찮지 않다고 해서 내일까지 괜찮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몸과 마음을 맡기고, 바람이 부는 대로. 떨어지는 대로 똑 똑 그렇게 흘러갈 수 있으면 또 괜찮지 않을까.
다짐 없는, 계획 없는 내 한해. 혹은, 내가 모르는 당신의 한해.
식상하지만 Happy new year.
모두 그 자리에서 , 흘러주시길. 그대답게 견뎌주시길.
(c) a m a d o . 2 0 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