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 집에 가서 저녁 먹어도 괜찮아요?
이런 메시지를 엄마에게 보낸다고 가정하자. 아마 나는 보기 좋게 네모창에 써 놓고도 보내기 전에 한번 망설일 것이다. 엄마의 오늘이 괜찮을까, 내가 간다고 또 이것저것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시진 않을까. 전화 대신 나는 늘 메시지를 선택할 것이고 엄마도 늘 그렇듯 움직이는 이모티콘과 함께 담담히 답장을 보내오실 것이다. 정해진 것처럼 서로의 시간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우아하고 확고한 계획 같은 것이, 엄마의 기류에는 있다.
나는 그것을 그대로 배웠고 그래서 나 또한 딱히 무모하지 않은 것 같다. 바깥에 나와 독립한 여식이 엄마의 집에 가서 밥 한 끼를 나누는 것은 어찌 보면 흔하게 따뜻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나는 늘 일주일 전에 먼저 연락을 한다. 오늘 어때요? 내일 어때요? 급작스럽게 엄마와 약속을 잡지 않는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딱 그만큼의 정중함과 그만큼의 예상 가능한 플롯과, 딱 그 정도의 배려가 있다. 서로를 불편하게도, 들뜨지도 않게 하는 그것.
가끔은 과일을, 가끔은 좋아하시는 막걸리 한 병을, 가끔은 그냥 빈 손으로. 퇴근해서 캄캄해진 길을 걸어 어제 입은 옷만큼 친숙한 집에 가끔 찾아간다. 엄마가 해 주시는 찬들과 밥을 먹기 위해서다. 간혹 바깥에서 데이트를 하는 날도 있지만, 독립 이후 엄마의 일상은 나를 만나는 계획의 반 정도는 '나에게 무언가를 먹이기 위해' 존재하는 삶을 사시는 것처럼 당연한 듯 분주하다. 두 주, 가끔은 몇 주를 건너 집에 들러 보면 저녁 시간 맞추어 식탁 위는 맛있어 보이는 반찬들이 가득하다. 엄마와 나는 희한하게 식성이 많이 닮았다. 정성스레 무친 나물이나 직접 만든 된장으로 끓인 찌개. 금세 지은 햅쌀밥, 시간을 오래 들여 다듬은 우엉조림 같은 눈으로 보기만 해도 건강해질 것 같은 풀뿌리나 날것의 맛이 종종 나는 그런 종류의 음식들을 좋아하는 걸 보면. 식성이 많이 닮았다. 아니. 이렇게 적다 보니 나는 그냥 엄마가 해서 식탁에 올려두시는 찬이나 음식들을 그냥 무조건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릴 적부터도 나는 잘 먹는 아이였고 그 모습이 예뻐 무언가를 자꾸 더 해 먹이고 싶다고 말씀하셨었다. 엄마는.
엄마의 식사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조금 빨리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조금 늦은 퇴근을 하고 손을 씻고, 엄마의 식탁에 앉을 때까지 나를 기다려 주신다. 독립 전에는 같은 공간 안에서도 분리되었던 식사 시간이 이렇게 조그맣게 모양이 된다. 나는 이것이 못내 신기하게 느껴진다. 퇴근을 하고 돌아와, 당연한 듯 몇 시간 전에 김이 빠졌을 조금은 식은 밥을 익숙하게 밥공기에 퍼담고 건넌방에서 저녁 드라마가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익숙하게 밥을 씹어 삼키던 이제 1년이 지나버린 그때의 저녁 풍경이 어렴풋이 떠올라서다. 늘 그렇게 엄마의 식사시간과 내 식사 시간은 각자의 생활 습관에 따라, 혹은 필요에 따라 조금. 어긋나 있었다.
익숙한 집을 떠나면서 내 저녁 식사에는 새로운 법칙이 생겼다. 나는 더 이상 식은 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지 않게 되었고, 다만 더 늦은 식사 시간을 오롯이 맞이했던 것이다. 건너편에는 혼자 떠드는 티브이 소리가 나지막이 흘러나오고 이건 이것 나름대로 미묘하네. 생각하며 밥알을 삼킨다. 엄마의 식탁과 나의 식탁에 올라가는 찬은 여전히 엄마의 손이 닿은 그것인데,
흩어지지도 모아지지도 않은 붕 뜬 식사시간이 독립 초반에는 제법 어색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건, 나 아닌 엄마도 동일하게 느꼈을 감정일 것이라고.
그런 확신 아닌 확신이
지금 이렇게 조그맣게 모양이 된 저녁 식탁 위에서 때깔 좋은 새 반찬들을 보며 드는 것이다.
숟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한다. 나는 여느 때처럼 자연스럽게 웃으며 맛있다고 말한다.
자연스러운 공기가 흐르고, 그간의 일상 이야기가 오간다.
12월을 쉽잖게 보냈다고 한 달을 뭉뚱그려 한 마디로 정리해 이야기하니
엄마의 표정에서도 담담한 대답이 건너온다.
'엄마도 그랬어.'
좀처럼 표정을 바꾸지 않는 온화한 엄마의 옆얼굴을 잠시 본다.
이어지지 않을 대화일 걸 알면서도 나는 물에 종이배를 띄우는 여섯 살의 심정으로 되묻는다.
'엄마도, 그랬어?'
온화한 옆선이 조용하게 끄덕이며 곡선을 긋고
나는 떴던 밥 한 숟갈을 마저 입에 넣은 후에
수저를 잠시 내려놓고 엄마를 본다.
엄마가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식탁 위에서 엄마 이야기를 듣는다.
얼마 전에 갑자기 눈 위에 빨갛게 실핏줄이 터져 보기가 싫었다 하셨다.
그래서 안과에 가 볼까 생각했는데
마침 너희 집 근처가 좋겠다 싶어 우리 집 근처까지 오셨다가
집 방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셨다고 했다.
딸한테 전화를 할까,
아니야 괜히 걱정시키겠지.
청승맞게 핏줄 터졌단 이야기를 해봤자
걱정만 시킬 것을 뭘 해. 하고.
에이.
엄마는.
다음번엔 그냥 전화해요. 아프다고 해,
그 공기에 무슨 말을 보태야 할지 몰라, 나는 에이-라는 말로 엄마의 머쓱한 웃음을
아무렇지 않은 듯 맞받아쳤다. 물론 너는 왜 그렇게 힘들었냐는 엄마 말에 '엄마, 사실 나 많이 힘들어요.' 같은 말 대신 '나는 그냥 12월이 버거워요, 이제 거의 다 지났으니 괜찮을 거야.' 같은 말밖에 보태질 못했다.
그만큼. 엄마랑 나는 식성만큼 성격의 어느 모양도 참 많이 닮아 있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엄마를 오랫동안 닮고 싶어 했거나
쭈욱 닮아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강한, 아니 강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아프다는 말 하나 누구든 걱정시킬까 머리 위에 띄워 놓고 괜찮다며 웃었다.
가족이니까 조금 더 흐트러져도 좋을 텐데.
서로 의지하라고 있는 거잖아요, 가족은.
생각해보니 그런 허울 좋은 한 마디도 나는 보탠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예고도 없이 세상을 갑자기 등지신 이후로도 그 전에도 이미. 엄마는.
그렇게나 강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걸.
나는 아주 오랫동안 알면서도 모르고 있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쯤,
엄마는 아주 빠른 손으로, 큰 가방에 내가 한동안 먹을 음식들을 참 많이도 싸신다.
밀폐용기에는 가끔 라벨이 붙어 있고 어떤 것은 나 무거울까 봉지에 가볍게 쌓여 있다. 가끔씩 해 먹이는 게 기쁘시단다. 잘 먹을 걸 생각하면 좋으시단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가방은 매우 무거워져 있어서 차 없는 내가 버스로 가지고 가기엔 조금 버거운 무게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보통 그 무게를 얹고 집으로 간다. 그 날은 잠시 그 무게를 발등 위에 올렸는데 천근만근 무거워서 잠시 눈물이 났다. 고개를 떨궜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버스 정류장에서 나는 이 무게를 도대체 어떻게 갚아나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엄마는 내 반찬 해 주는 사람이 아닌데. 이제 엄마 내 밥 그만 해 줘도 상관없는데. 나는 왜 매일 엄마에게 저녁 먹으러 가도 되냐고 묻는 걸까. 그래도 엄마는 괜찮아, 하시겠지. 그래도 네가 잘 먹으니 좋아. 잘 먹는 게 고마워. 하시겠지.
돌아와 촘촘하게도 싸 놓으신 반찬과 간식, 과일 등을 가지런히 정리하면서 생각한다.
아직 서툰 엄마와 내가, 서로를 묵직하게 느낄 수 있는 무게가 오롯이. 이런 것들이 아닐까.
새로 하게 되는 반찬. 밥 먹으러 가도 되냐 묻는 질문. 돌아오는 길에 가득 어깨에 지고 돌아오는 묵직함 같은 것들.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 나는 미션을 수행하는,
꽤나 비장한 말투로 엄마에게 말했다.
우선은 이렇게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러자고 대답하진 않으셨지만 멋쩍게 웃으신다.
나도 말을 더 보태지는 않았다.
엄마 쉬어요, 하고 대문을 조심히 닫는다.
그게 바로.
엄마와,
나겠지.
엄마와 나.
다 가까워질 수 없는 어떤 모양의 위에.
그래도 괜찮을 때 괜찮다고
고마울 때 고맙다고
더 사랑한다고 오래.
자연스레 오래. 말하고 싶다.
대화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내 엄마이기 이전에, 다른 이름의 삶에 대한 욕심을
제대로 드러내 본 적도 없는 엄마에게
나는 어떤 하루들을 선물할 수 있을까.
찾아내어 바지런히 알려드려야겠다.
엄마는 내 엄마가 아니어도 사랑스럽다고.
그런데 나는
엄마가 내 엄마라서 다행이라고.
참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