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시간.
나, 일 그만둔 이후로 어딘가 자꾸 허전하고 빈 것 같고. 시간의 틈새가 이유 없이 두렵고 그런 마음이 드는데. 대체 왜 그런 걸까,
'너, 일 오래 했잖아. 너무 오래 해서 몸이 휴식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한 거야. 그래서 막 아프고 그런 거고.'
일을 그만둔다고 이야기했을 때, 가장 많이 듣던 질문은 바로 왜? 였다. 12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일을 해 온 걸 알고 있는 친구들이 전부 같은 질문을 했다. '너무 오래 일해서, 한 타임 쉬어 가려고' 멋쩍게 웃으며 말하면 그제야 '그래, 너 이제 쉴 때 되었지.' 하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열심히든 아니든 다음 달의 지출을 위해 이번 달의 나를 굴리고 굴려 아웃풋을 내야만 하는 것, 그런 삶이 당연한 모두들에게 쉰다는 건 어떤 의미인 걸까, 새삼스레 다시 되새겨보는 시간이 됐다. 어깨를 두드리며 그래, 너 지금도 애쓰고 있어.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은 기분이 듬과 동시에 '그냥 쉬는 건 안 되는 걸까? 이상한 걸까?'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내가 있었다.
올해 봄, 12년 넘게 일하던 인생 첫 직장을 그만두고 처음으로 맞닥뜨린 것은 제한 없는 시간과 무엇도 서두를 필요가 없는 자유였다. 자유라고 부르기 애매한 자유.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무의식 중에 할 일을 리스트업 했다 체크해 나가는 식으로 매일을 영위했던 나의 삶은 무력하게 무너졌다. 젠가 게임을 하다 블록 하나를 잘못 건드려 와르르 무너진 것을 보는 모양새와 같은. 갑자기 주어진 자유시간에는 그런 막연한 무거움이 있었다.
일을 마무리한 다음날, 어색한 알람 소리에 일단 눈이 떠졌다. 전날 마신 알코올이 올랑올랑 위 안에서 가벼운 시위를 하고 있었고 손가락 지문으로 알람을 끄면서 더 이상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불안함이 동시에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다시 침대에 쓰러졌다. 천정을 보며 애매하게 욱신거리는 두통에 아, 아프구나. 싶은 감각에 현실감이 뒤따랐다. 더 이상 알람이 필요하지 않겠네, 뒤늦게 깨달았고 siri를 불러 모든 알람을 지우는 것으로 퇴사 다음날을 시작했다.
홀가분했나, 아마 그랬던 것도 같다.
퇴사한 다음 날, 또 그다음 날. 며칠간은 느지막이 일어나 되는대로 영양분을 채워 넣었다. 나 스스로를 위한 식사를 준비하면서 딱히 시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배가 고프면 고픈 대로, 그렇지 않으면 않은 대로 스스로를 풀어 두어도 되는 시간이 너무 어색했다. 계산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뒤로 애매하게 늘어지는 시간들이 줄을 섰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밥을 챙겨 먹고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그걸 탁탁 털어 널어놓는 과정들이 미묘하게 늘어지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해 남은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기 위해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던 내 모습이 멀게 느껴지더라. 그러니까 이를테면 퇴근 이후의 그럴싸한 삶은 내 기준에서는 내일의 아침의 알람을 듣고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는 불안감과 비례하는 그래프 곡선을 긋고 있었던 것이다.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없었더라면 내가 이걸 서둘러 정확하게 해 낼 필요가 있었을까, 시간의 틈새에서 루즈하게 꿀렁꿀렁 몸을 흔드는 연체동물이 된 기분. 구태여 설명하자면 연필이라도 잡지 않으면 간단한 한 문장도 생각해내지 못할 것만 같은, 그런 감각 같지 않은 감각들이 세포를 건드리는 느낌. 내가 제약하지 않으면 아무런 제약이 걸리지 않는 무한한 시간 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그 시간들에 삼켜지는 기분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에이징 마인드'
서점의 자기계발 코너에 가면 대부분의 심리학 도서들이 모으지 말아라, 정리하지 말아라, 버려라,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살아라. 와글와글 외치는 느낌이 든다. 회사를 그만 둘 즈음 읽던 것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만한 힐링 관련 자기계발서들이었다. 그런 잔잔한 문장들이 쉬어야 하는데도 쉴 이유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려줄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너는 지금 그만큼 지독하게 애쓰고 있다는 것을 신랄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무모함, 내일의 안정적인 소득을 포기하더라도 잠시 휴식을 하며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찾는 달콤함이 필요하다는 것. 다들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하는 그럴싸한 계획 없이 퇴사 자체가 특별히 아름다운 일이 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 계획도 목적도 없는 '퇴사'는 남들이 보통 하고 있고, 당연히 하리라고 여겨지는 기본적인 생산 활동을 무모하게 그만둔다고 보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까. 애쓰지 않아도 괜찮고,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빡빡한 일상에 힘을 주는 것 같은 자기계발서들은 비로소 매일을 초 단위의 데드라인과 적당한 밀당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나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닐까, 싶어 피식, 웃음이 났다. 견디는 사람에게 견디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위로해야 하는 사회, 그런 책들이 잘 팔리는 사회. 누구나 퇴사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지만 당장 퇴사하고 싶은 마음 자체가 무모한 꿈처럼 느껴지는 매일, 매일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하는 힐링계의 책들은, 고된 일을 수 일 지속하다 겨우 쉬는 날에도 일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 한잔을 건네는 느낌으로 쓰인 것들이 아닐지, 매일의 성취감을 딱히 느낄 이유도, 시간에 맞춰 쫓길 필요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외려 불안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퇴직 이후의 삶을 살아내며 공부하게 되었다.
봄을 지나, 여름. 계절이 하나 바뀌는 동안 나는 시간의 무력함에 적응해가며, 스스로가 어떤 제약 없는 공간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시간의 주도권을 쥐고 하루를 끌고 가야 한다는, 특별한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시간을 어떻게 컨트롤하고 배분하느냐가 오롯이 내게 쥐어져 있어 버거운 것이라고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것을 내가 계획하고 생각하는 그대로 조율하고 해나가야 한다는 것은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와의 약속으로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사명감과도 연결되었다. 조금씩,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들로 어떻게 시간을 채우면 좋을지.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나 스스로가 이야기하는 목소리에 내가 어떻게 화답하면 좋을지를 고민하는 시간들을 보내게 되더라. 쉬어 보니, 회사를 그만둬보니 그제야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 것들이다. 앞으로도 나는 오롯이 오늘을 컨트롤하며 내가 잘하는 것과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에 익숙한지. 어떤 것들을 잘 하게 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서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간들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멀지 않은 가까운 언젠가, 나른하고 애매한 지금 이 시간들이 얼마나 그리워질까, 상상하게 된다.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누군가들의 삶은, 자연스레 먹고사니즘에 국한되어 당연한 듯 반복되고 있을 것이다. 쉬어보려 해도 쉬는 것이 어색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이 어려울, 아주 많이 어려울 모든 사람들. 나 또한 계절을 한번 넘긴 이제야 쉬는 게 익숙해지고 있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을 쉬어 가는 일은 조금 두렵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고. 바쁘게 스스로를 몰아가고 있을 때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감각들과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아주 귀한 과정이라고. 아직도 내가 십수 년 해 온 '내가 좋아하는 일'로 앞으로의 내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새 출발선에 섰을 때 지금 보내고 있는 꽤나 의미 없어 보이는 설렁설렁한 이 시간들이 내 인생에 꼭 필요한 순간들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 같은 확신이 선다. 당연한 듯 일에 치이고 있는 누군가들에게 언젠가 쉴 수 있게 되면, 잠시 쉬어봐요. 무책임하게 이야기해보고 싶어 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