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이 우아해질 수 있나.

by Sunyeon 선연



벌이가 준다는 건, 욕구도 함께 줄여야 한다는 것.



장바구니를 들고 마트의 큰 매대 앞에 선다. 안드레아 그루스키의 사진처럼 정직하게 늘어선 많은 물건들을 나는 좋은 대로 선택해 바구니에 담을 수 있다. 당연하겠지만 음식이나 물건들은 붙은 가격에 따라 자연스레 등급이 나뉜 상태다. 등급이 높은 것은 비싸고, 낮은 것은 다소 저렴하다. 1초의 고민도 없이 높은 가격의 물건을 바구니에 간단하게 넣을 수 있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나는 가끔 이 소박하면서도 소박하지 않은 생각에 잠시 헛웃음을 웃는다.



Andreas Gursky '99 Cent'_ 1999





여름의 끝이다. 소득이 터무니없이 줄어든지도 제법 되었다. 생산 활동을 쉬고 있는 나는 그럴싸한 자유를 마음에 심었다. 원할 때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이 부자연스러운 자연스러움에도 적당히 몸을 맡길 수 있게 되었고 오후의 무기력함에도 어느 정도 적응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계획한 일이 내가 계획한 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조금 더 너그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것까지는 꽤 괜찮은 변화다. 스스로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 움직이고, 커피 한 잔을 마셔도 굳이 급하게 털어 넣지 않아도 되며 밀어놓은 집안일을 좋은 대로 해내고 누군가와 웃을 시간을 조금 더 늘릴 수 있다는 것. 스스로를 위한 음식을 하는 데에 더 공을 들이고 화분에 물을 주는 시간에도 여유가 생기고 이런 변화가 썩 반갑다는 것. 그런데 단 하나. 시간을 선택하는 스펙트럼은 늘어났지만 금전적인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는 반비례 곡선을 타고 있다는 것을, 당연스레 확인하는 순간도 비례해서 늘었다.


필요한 물건들은 미리 리스트업. 어떻게 하면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구매가 가능할까,

내가 지금 이 물건을 사게 되면 다른 어떤 것을 다음 달로 미루거나 접어야 할까.

바깥에 나가 처리할 일들을 한꺼번에 모아 처리해야지, 교통비가 비싸니까,


문장을 써 내려가다 '교통비가 비싸니까'라는 항목에 잠시 멈추니 묘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 교통비가 비싸다는 것. 사실 후불 신용카드를 들고 출퇴근을 하며 한 달에 일정 이상의 교통비를 당연한 고정지출로 소비하던 나에게는 크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이다. 당연스레 나가는 돈이었고, 해야만 하는 소비였다. 그런 내가 외출의 횟수를 교통비를 신경 써가며 조절하게 되다니. 이건 이전에는 '아마도' 없었던 일이다.


소비패턴도 달라졌다. 여유롭게 받아 마시던 캡슐 커피의 정기구독을 해지하고 스트리밍 사이트의 이용권을 더 저렴한 것으로 바꾼다. 필요한가,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게 장바구니에 넣어 계산하던 것들을 오래 고민해서 고르는 버릇이 생겼다. 이 물건이 꼭 필요한 물건인가, 세 번 이상 스스로에게 묻는 습관이 닭살처럼 오도도 올라올 때마다 과연 이것이 합리적인 것인가, 를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하는 일상들을 요즘 살아내고 있다.


합리적인 소비를 해야 한다고 일정 부분 나를 코너로 나 스스로가 내몰고 있지는 않은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것을, 소비를 줄여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것이 꽤나 크고 센세이션 한 변화라고 고백한다. 진작부터 합리적이었어야 하는데, 지금 와서 무슨 적당한 타협이랍시고 합리를 찾나.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도 딱히 별 수는 없다. 상황에 맞춰 나를 밀어 넣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지킬 수 있는 동그란 일상이 있으니까.


가진 게 좀 덜해도 우아하게 살 수 있다면.



언젠가부터 나이가 들면 우아하게 살고 싶다. 고 생각해왔다. 내 주변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더라. 우아한 애티튜드는 중요하고,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커피 한 잔 위로 오가는 건 별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다. 소비를 줄여 보니 알겠더라, 어떤 부분에서 내가 선택권을 좁혀야 하는지, 그로 인해 줄어드는 내 선택지가 왜 쓸쓸하게 느껴지는지. 나는 무의식 중에 내 스스로가 우아하지 않다 느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합리적인 것이 우아하지 않다는 말과 어떤 관계가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소만큼의 소득을 벌어들이지 못하고 있는 나를 꽤 그럴싸한 나로 인식하려면 적어도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내' 가 있어야만 가능했던 것이었다. 아, 쉬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이쯤 되니 좀 쉬어보자! 하고 호기롭게 일을 그만 둔 나 스스로에게도 김이 슬쩍 빠진다.


얼마 전에 만으로 서른다섯이 되었다. 합리적인 소비를 따져가며 스케쥴링을 하고 연체동물처럼 적당히 풀려 있는 나날들 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돌부리처럼 박혀 있는 생일이란 어쩌면 특별해서 특별할 것 없는 날이었다. 8월은 소비를 조금 덜 하기로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돈을 더 많이 써 버렸네, 스스로를 조금 쪼아대고 있던 어느 날 급작스레 찾아온 별 것 아닌 별 것 같은 날이었고 생일에도 카드 명세서를 확인하는 일상이라니 하릴없구나 느끼던 날 중 하루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 인사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연락이 끊겼던 사람에게도 너 오늘 좋은 날이구나, 축하한다. 는 메시지가 왔다. 가만히 평소처럼 보내던 하루에 따뜻함이 몇 가닥 더해지니 내가 꽤 우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사람이고 조금은 의미 있구나, 를 깨닫는 별 것 아닌 과정 하나만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내일을 기대할 용기를 얻지 않던가.


여자인 동시에 잠시 경력을 쉬어가는 조건의 나에게는 어쩌면 앞으로도 끊임없이 합리적인 생활을 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 나날들이 자연스레 이어질지도 모른다. 혹여라도 계획하던 임신을 하게 되고 육아를 하게 된다면 일을 쉬는 기간이 조금 길게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몇 달 후의 내가 어떻게 생활하게 될지 앞을 모르고 쉬는 기분이 들어 조금 불안해질 때마다 지금의 소득 조건이 긴 텀으로 늘어날 때의 상황도 함께 고려해보게 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의 상황에 자연스레 익숙해지는 것 밖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하고 나는 생일날을 차분히 보내며 생각해보았다.



쉼에 익숙해지기, 기어이 우아해지기. 아니 우아해지지 않아도
괜찮은 날들과 만나기.



벌써 내일이 다섯 번째 실업 인정일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새로이 맞닥뜨리기 위해 선택한 삶. 일을 그만두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을 공부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비에 관한 것은 더더욱 그렇다. 맞닥뜨려보지 않은 상황을 눈 앞에 마주하고 있다는 것은 언어를 새로 배우는, 체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아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일지 모른다. 어쩌면 별 것 아닐지도 모르는 일이다. 특별한 문제도 아닐 수 있고. 다만 나는 지금의 상황에 맞게 소비와 욕구를 줄여나가고 있고, 몇 년에 걸쳐 힘겹게 모아두었던 적금을 만료기간에 맞추어 배분하고 그 일부의 소득을 기어이 소비하고 있다. 필요한 상황에 소비하는데도 '구태여 손대지 않아도 될 돈에 손을 대는 지금' 이 조금은 죄처럼 느껴지는 과정에서 부딪혀 얻고 잃는 것들이 생기는데 그것도 쉼의 일종이라고 나는 마음을 다잡아 본다. 생산활동을 당연히 유지해 나가는 것이 삶이었다면 그 반대의 삶도 모양은 다르지만 그마저 삶이니까. 지금의 상황에 맞춰 조금 더 저렴하게, 합리적으로 소비하기를 고려하는 것이 쓸쓸하다는 생각에서 차츰 멀어져 보고 싶다.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횟수도 조금씩 줄이던 와중에 생일 선물로 넉넉한 금액의 커피 선불카드가 들어왔다. 현실적인, 특별할 것 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나에게 너무나 고맙고 감사한 선물이었다. 누군가가 선물해준 마음을 가볍게 한 모금. 들이키면 또 나는 제법 괜찮은, 우아한 사람이 된다. 뭐 우아하지 않아도 좀 어떨까, 언젠가 일을 다시 시작해, 그때의 소득에 맞춰 다시 소비패턴이 바뀌는 날이 올 때까지 오늘 필요한 것들을 채워가며 살면 될 일이다.


아마 나는 이미 합리적으로, 우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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