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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 Aug 05. 2021

겨울의 초콜릿


밸런타인데이를 한 번도 기념하거나 제대로 챙겨본 적은 없지만, 왜인지 겨울의 초콜릿에는 늘 마음이 동했다. 냉장고에 넣지 않아도 알맞게 단단해지는 기온 덕일까. 계절을 대표하는 음식들, 그러니까 여름에는 냉면, 겨울에는 호빵. 같은 공식에 끼워맞추긴 애매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 초콜릿은 늘 겨울에 맛있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추운 날엔 나도 모르게 단 것이 당긴다. 혀 끝에 뭔가 단단하고 말캉한 것이 닿았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일어나는 거다. 그럴 때에 편의점 매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계산해서 나오는 즉시 포장을 뜯는 것이 포인트다. 파삭, 하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곤 하는 거지.


두 번째, 기온이 중요하다. 영하의 기온이 쭈욱 지속되는 한겨울에는 어디에서 초콜릿을 골라도 원하는 경도의 초콜릿을 만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경도란 딱, 손으로 똑 뿌갰을 때 살짝 힘을 주어야 하는 정도의 탄성이 느껴지는 그것이다. 알루미늄 포일이 폭, 기분 좋게 갈라지는 감촉을 즐긴다. 


세 번째, 때로 카카오 함량은 중요하다. 70퍼센트, 85퍼센트, 99퍼센트. 어느 정도 쌉싸름한 것을 고를 것인지 그날의 기분에 따라 결정한다. 씁쓸한 것을 먹고 싶을 때는 85퍼센트 정도의 카카오 함량에 만족하며 쓴 맛을 천천히 즐긴다. 조금 덜 단 것을 먹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몸에 좀 덜 미안한 걸, 싶은 머쓱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99퍼센트는 미지의 맛. 에 가깝다. 굳이 표현하자면 잘 정제된 종이 맛 정도일까. 새삼스럽지만 초콜릿을 가만히 맛보며 이 세상에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맛은 얼마나 많을지, 생각하게 된다. 눈을 감을 때까지 무언가를 맛보아도 내가 모르는 세상의 맛은 잔뜩 있을 것이다. 다 아는 맛이라도 올해 겨울의 초콜릿은 또 다른 맛이 나겠지. 매 해 새로운 초콜릿을 맛보는 기분으로 살고 싶다. 알더라도 다 알지 못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알고 있다는 착각으로, 때로 우리는 많은 걸 놓치고 있지는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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