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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반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조건 밥.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가장 자주 먹는 탄수화물, 그러니까 사람에게 필요한, 필수 불가결한 가장 기본 단위라면 그건 밥이 아닐까 싶었던. 무엇보다도 뽀얀 쌀밥을 좋아했다. 조금 꼬득꼬득하게 지어진 밥 한 그릇이면 하루를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날들도 있었다.
쌀알이 찰지게 붙어 밥공기에 새초롬하게 적당한 찰기로 모여 있는 모양도 곱지만, 사실 제일인 건 그 밥알들을 양껏 넣고 입을 움직일 때다. 적당히 바스러지는 것보다 조금은 오래 씹어야 하는 꼬득한 밥을 좋아했던 것은 밥을 이를 움직여 꼭 꼭 씹을 때마다, 익은 쌀알이 부서져 입 안에서 달아진다는 그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 좋아서였던 것 같다. 밥을 꼭 꼭 넣고 씹고 있어야만 뇌가 배부름을 야무지게 인식하는 느낌이다. 물론 어울리는 찬도 중요하고 찌개나 국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기본. 밥이 주는 행복함에 비할 수는 없다.
최근엔 골든퀸이라는 품종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골든퀸을 먹어보는 나름의 퀘스트를 진행 중이다. 저 아밀로오스 쌀이라는 골든퀸 품종은,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그 이후부터가 아주 환상적인데 밥을 지을 때 고소한 누룽지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운다. 밥을 할 때부터 밥 한 그릇을 기대하게 되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밀프렙 도시락에 따끈한 밥을 싸서, 근무하는 곳에서 밥을 레인지에 데울 때도, 집에서 나는 것과 같은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고소한 밥 향기가 날 때부터 슬몃, 올라오는 식욕이 반갑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반갑고, 가장 맛있는 밥은 엄마가 해주는 '밥'이다. 엄마가 내 밥을 해주기 위해 태어난 사람도 아닐 텐데, 독립 이후 더 자주 반찬이나 밥을 기꺼이 받아먹게 된다. 친가가 가까워 가끔 들르면 엄마는 딸이 먹고 싶어 했던 밥반찬을 기억했다가, 이미 해 둔 것을 식탁에 올리신다. 그러고도 밥을 먹고 난 이후엔 꼭 작은 소분 통에 해 둔 반찬을 종류별로 싸신다. 그걸 집으로 들고 와 또 며칠을 마음 푸지게 먹고 나면, 집에서 해 먹을 수 있는 밥이 더 맛있을 수 있는 이유는, 엄마가 해주신 음식들 때문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알게 된다. 오늘이 내 생일인 걸 알고는, 엄마는 또 생일밥을 잔뜩 준비해서 가져다주셨다. 불고기, 미역국, 데워 먹기만 하면 되는 손수 지은 밥, 잡채. 푸지게 밥상 한번 대접한 적 없는 딸은 또 이렇게 큰 빚을 진다.
밥에 진심인 편이지만, 최근엔 여름이라 입이 좀 짧아졌었다. 영문도 모르고 조금 핼쑥해지기도 했다. 여름의 끝이 다가오고 있으니 바지런히 또 잘 챙겨 먹는 나날들로 돌아가야겠다. 무엇보다도 밥을, 가끔은 엄마가 해 주시는 밥을, 그 고마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