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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 Aug 20. 2021

망설임

망설이듯 계절이 간다, 고 생각하던 참이다. 해가 다 뜨기 전의 아침 기온과 퇴근할 때의 저녁 기온을 보며 계절의 경계란 어쩜 이렇게 흐릿하고 모호할까. 생각하고 마는 거다. 여름에 강한 나는 올해 여름을 참으로 힘들게 보냈다. 너무 뜨겁고 습해서, 베란다에서 열대 과일을 키워도 좋겠다는 허울 좋은 상상까지 했던 터였다. 무엇보다 많이 망설인 여름이기도 했다. 어떤 선택 앞에서 망설임은, 무언가 하나를 확연하게 결정하게 하기도 하고, 그것도 아니면 망설인 채로 어떤 결과에 도달하기도 한다.


최근 진급 면접을 보았다. 결과는 '어쩌다 합격' 같은 느낌으로 합격이었다. 레주메를 제출하기 전 수십 번을 망설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구조적인 문제들과 현실적인 부분 스스로 준비가 되었는가 하는 자아성찰이 '저번보다 티오가 넉넉하다.'는 사실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믿는다고, 더 많은 걸 보고 경험하고 넓은 시야를 갖추고 싶다고 면접에서 떨면서도 씩씩하게 말했지만 과연 이게 잘하는 일일까, 하는 의심은 계속해서 들었다. 운명에 맡기자는 생각으로 망설이면서도 지원 레주메를 제출했지만 사실 아직도 망설여진다. 망설인 채로 은근슬쩍 어떤 결과에 도달한 꼴이다.


사실 떠올려보면 작은 선택들 앞에서, 여전히 망설이는 일이 잦다. 일상처럼 망설인다. 옷장 앞에서, 식당의 메뉴 앞에서, 집의 냉장고 앞에서. 책을 고르려고 들어간 서점 앞에서. 입술을 열기 전, 우산을 챙길까 고민하는 마음 앞에서. 어쩌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오래 , 자주 망설이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망설임 앞에서 무언가를 꼭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일 때에 더 많이 생각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지만 나는 이런 내 망설임이 싫지 않다. 어떤 망설임이 꼭 어떤 선택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어찌 되었든 될 일들은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고, 자연스레 '되어질' 것이니까. 망설이며 내일 아침의 커피를 고민한다. 어떤 원두를 쓸까, 어떤 분쇄도로 원두를 갈고, 어떤 추출기구로 커피를 내릴까. 결과를 결정하지 못하고 결국 늦잠을 자버리는 의외를 만난다고 해도, 어쩌면 꽤나 즐거운 망설임일지도 모른다. 



아마, 모든 것은 순리대로. (c) 아마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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