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이유를 모르고 쭈욱 파란색이 좋았다. 특별한 호불호가 강한 편은 아니었기에 모든 것이 두루뭉슬 좋았던 나인데도 무슨 색이 좋으냐 물으면 당당히 파란색이라 답하곤 했다. 사실 6년 만에 나를 뱃속에 품었던 어머니는 태어나기 전 모든 아기 물품을 파란색 계열로 준비하셨다고 한다. 아기였을 때부터 주변에 있었던 것들이 전부 푸른 계통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모든 것을 파란색으로 갖추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건 없었지만, 원하는 물건을 고를 때 파란색을 선택하는 고집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여자아이들이 핑크에 목을 맬 때, 나는 파란색을 선택하는 조금은 독특한 아이였다.
왜 좋으냐, 고 물으면 열심히 이유를 설명하는, 꽤나 모든 것이 이유 있었던 야무진 성격이었는데도, 파란색이 왜 좋으냐 물으면 그냥 가만히 웃곤 했다. 특별히 이유 없어도 그냥 좋은 것도 있구나. 하고 처음 깨달은 것이 바로 파랑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좋은 건 그냥 좋은 걸 텐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는 이걸 왜 좋아할까, 기운을 쓰며 고민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 조금 귀엽게 느껴져서 피식 웃게 된다.
사춘기가 왔을 땐, 우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우울하다, 고 말할 때 ‘블루’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고서는 또 그게 그렇게 좋았었다. 차갑게 느껴지지만, 따뜻하게 느껴지는 단어라고 무심코 생각했던 것 같다. 20대에 줄곧 사용하던 닉네임은 따뜻한 파랑, 을 뜻하는 영어 단어 warmblue였다. 나를 파랑님, 파랑님. 하고 부르던 온라인 상의 얼굴도 모르던 그 어느 시간을 함께 흐르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얼마 전엔 뉴스에서 코로나 블루, 라는 단어를 접하고 기분이 조금 묘했다. 언젠가 내게 그렇게 낭만적이었던 블루가, 지금은 이렇게 무기력하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하고. 어떤 우울은 무기력과도 맞닿아 있겠구나, 하고 하릴없이 생각하게도 되었다. 그래도 최근엔 공기가 좋네, 하고 올려다본 하늘에선 뽀얀 구름, 말갛게 파아란 풍경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래도 아직은 블루해서 좋은 것들이 많이 있다. 블루스, 라는 음악 장르의 기원이 되었다고도 하는 블루, 파아란 하늘, 그리고 의미 있을 블루한 날. 또 파아란 혹은 이유가 있을 어떤 블루, 블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