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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 Apr 27. 2022

미안해 봄.

여유 없는 건 마음일까 몸일까. 

글을 쉰 지 몇 개월이 지났는지 손가락으로 헤아리지 않아도 아득하다. 이유도 많았고, 핑계도 그럴싸했다. 나를 보호해야만 하는 나날들을 무력하게 보내고 있었다. 최근 찾은 가정 심리 의학과의 선생님은 '어떤 일로 이렇게, '라고 말을 떼는 당신 앞에서 갑자기 연거푸 눈물을 쏟아내는 나를 보며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참 힘든 계절을 보내고 계시네요.'


3월 말은 코로나 확진과 함께 지나갔다. 이따금 향이 느껴지지 않았고, 음식의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봄이 오는가 싶을 때도 심드렁했던 마음처럼 계절이 하릴없이 스쳐가고 있었다. 이따금 미열이 올라왔고, 식은땀이 났다.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하는 무기력은 흔했고 지속되어야 하는 삶에서 합당한 이유를 찾아야 할 필요성을, 그 당위성이 필요하지 않으면 금세 숨이 막힐 사람처럼 나는 지쳐 있었다. 일과 집, 집과 일. 소중한 지인들과 나누던 가벼운 안부 인사도 품이 많이 들어 괴로웠다.


오늘은 엄마와 버섯 향이 많이 나는 뜨끈한 솥밥을, 조미료 맛이 조금 나는 간이 센 반찬과 먹었다.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하고, 느닷없이 향한 건 근처 아이스크림 가게. 엄마가 최근 빠진 것이라며 '피스타치오 맛'으로만 큰 통을 가득 채운 아이스크림을 후식이라며 안겨 주셨다. 통 안에 그득한 녹색을 손목에 걸고 돌아가는 길. 늦은 저녁이지만 아직 채 지지 않은 해를 보며 아, 여름이 코앞이구나. 문득 처연해졌다. 건너편 지는 햇빛을 머금은 초록이 눈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만개했을 땐 예쁜가, 도 몰랐던 개나리 덤불들이 하릴없이 쪼글쪼글, 말라 있었다.


그제사 나는 아직 피어있는 동네 앞 꽃나무에 새삼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 네가 피는 것도 몰라봤구나. 오랜만에 카메라의 전원을 올렸다. 두 개의 배터리 칸이 남아 있었다. 사는 아파트 동네의 정문부터, 후문까지. 8분 정도의 저녁 산책을 했다. 지기 전 봄이, 시간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아직은 봄이라고 믿고 싶었다. 바람이 좋았다. 눈을 잠깐만 감고 있어도 놓치기 쉬운 계절이, 소중함이, 아름다움이 곁이 있었다. 행복이란 건 뭘까,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걸까 너무 작아서 알아채기 어려운 걸까.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행복은 크고 작은 것의 문제는 아닐지 모르겠다. 셔터를 누르며 잠시 마음에 서늘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스몄다. 마스크를 쓴 채로 나는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눈물이 났다. 어쩌면, 이런 순간들을 행복이라고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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