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부모님 농사일을 도와드릴 겸 시골집으로 향했다. 한적한 풍경과 익숙한 흙냄새가 반갑기도 했고,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기대되기도 했다.
둘째 날 점심을 먹고 난 뒤, 엄마, 아빠, 그리고 나는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TV를 보며 가끔씩 대화에 끼어들었다. 평화롭고 느긋한 오후였다.
그런데 갑자기 주방 쪽에서 ‘치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인덕션 위에 올려놓은 주전자에서 물이 펄펄 끓어 넘치고 있었다. 순간 놀란 엄마와 아빠는 “어떡하지?” 하며 당황했지만, 바로 몸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아픈 무릎과 허리를 붙잡고 겨우 일어나 인덕션을 끄러 가는 모습은, 마치 슬픈 코미디 같았다.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불이라도 났다면, 두 분은 생각으로는 재빨리 대피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쉽게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그 현실이 웃기면서도 마음 아팠다.
사실 그 상황에서 내가 먼저 일어나 인덕션을 껐으면 됐을 텐데, 나는 그저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부모님의 느린 걸음이 낯설었고, 그 낯섦이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부모님도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시며 허리, 무릎 안 아픈 데가 없으셨다. 그날은 그 현실이 피부에 와닿았다.
그날 이후, 나는 부모님의 걸음이 느려졌다는 사실을 단순한 노화의 증상이 아니라, 내가 더 많이 도와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전엔 부모님이 나를 챙겨주셨지만, 이제는 내가 부모님을 챙겨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날의 주전자 사건은 내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 작은 사건이었다. 느려진 걸음 속에 담긴 세월의 무게, 그리고 그 무게를 함께 나눠야 할 내 책임. 그 모든 것을 담아, 나는 오늘도 부모님의 곁에서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