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능력이라고?
나는 평소 집에 있을 땐 미드, 영드나 외국 프로그램들을 꼭 틀어놓는다. 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영어 수업 하는 것 외에는 영어를 쓸 사람도 쓸 일도 별로 없기 때문에 귀라도 열어 놓기 위함이다.
데이팅 프로그램도 자주 보는 편이다. 짜인 각본 외에 그들의 생각이나 경험, 일상 등을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게 듣기 편하기 때문이다. 그중 나는 <Love is Blind>의 애청자다.
Love is Blind는 외모는 전혀 볼 수 없게 완전히 차단된 포드라는 곳에서 오롯이 대화만으로 결혼할 상대를 찾는 프로그램이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대화뿐이고 상대를 알아가는 방법 또한 대화뿐이라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여기서 영어 공부하는데 도움이 많이 됨) 이 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단어가 있다.
바로 vulnerable.
사전적 의미로는 '연약한'이라는 뜻이다.
출연진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출연진들은 대화를 통해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자신의 상처나 약점, 불안정함 등을 오픈한다. 그런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 알아가고 말을 꺼내는 자체만으로도 치유를 하거나, 위로를 받는다.
그런데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able라는 형용사 어미가 쓰인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치를 뜻한다. 연약한데 저런 형용사 어미가 붙는다고? 명사형인 vulerability의 어미 역시 ability 즉, '능력'이라는 뜻이다. 왜지? 생각해 봤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나고 멋진 모습은 쉽게 드러낼 수 있다. 아니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다. 인정욕과 과시욕은 인간의 큰 욕구 중 하나이니 당연지사겠다. 하지만 동물의 본능일까?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내비치고 싶지 않은 것 또한 당연하다. 나를 모자라게 볼까 봐, 나를 무시할까 봐, 혹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인정하지 못하고 가리고 또 가린다.
나는 내 눈을 가리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나의 모습에 반하는 부분은 부정하기보다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혹여나 발견했을 때는 받아들일 수 없어 묻어버렸다. 그리고 괴로워했다. 그렇다. 발전할 수가 없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식상한 말이 있다.
<에반 올마이티> 영화에서 전지전능한 올마이티가 웨이터 행세를 하며 손님에게 한 말이다.
"누군가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인내를 줄 거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인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줄까요?"
내가 더 단단하고 발전할 수 있길 바랐고 그러기 위해서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 상처들을 인정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무너졌고 후회했지만 드디어 그것을 인정했다. 쉽지 않았지만 이것은 분명 내가 가 갖게 된 새로운 능력이다.
모든 위기가 기회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잘만하면 그것은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의 시작은 나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인정하고 나아가려는 태도다. 메타인지와도 결부하겠다.
나의 vulnerability를 인정하고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용기가 필요한 진짜 능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