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하루 사유

나를 짓누르는 자격지심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압력이었다

by 아말

얼마 전,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매뉴얼을 속속들이 알고 있던 그 친구에게 함께 비행한 사무장이 물었단다.


"너는 그런 걸 어떻게 다 알아?"


그리고 그 친구는 내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나를 유독 따르던 그 친구는 내가 쉬는 날이면 우리 집에 놀러 오곤 했다. 집에서 비행 매뉴얼을 보는 나에게 그 친구는 놀라며 물었다.


"언니, 쉬는 날 매뉴얼을 왜 계속 봐?"

"일어날 수 있는 일에 준비해야지."


나는 기억을 하지 못하는 내 대답을 그녀가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영어공부를 시작했지만 재밌었다. 이후 어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 포부와는 달리 날이 갈수록 자격지심에 휩싸였다. 동료강사, 선임강사 모두 연수 및 유학 경험이 있었고 tesol도 소지하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무시하지고 않았지만 내가 부족한 건 아닐까 먼저 작아졌다. 행여나 칭찬이라도 들으면 '나를 잘못 본 건 아닐까', 기대에 못 미칠까 봐 불안했다. 그래서 더 공부하고 영어를 더 많이 쓰려고 애썼다.


승무원이 된 것도 어쩌면 그 불안 덕분이었다. 나도 해외에서 영어를 마음껏 쓰고 싶었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 승무원이 되었을 때도 동기 대부분이 연수나 워킹홀리데이 등의 경험이 있었다. 그렇게 또 스멀스멀 올라오는 자격지심을 더 노력하는 방식으로 감췄다. 시간이 흘러 나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고 일을 잘하는 승무원이 되었다.


코로나로 한국으로 돌아와 필라테스 강사가 되었다. 새로운 길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던 때에 좋아하는 것이 어느덧 일이 되었다. 하지만 또다시 불안이 따라붙었다.


'운동 전공자도, 물리치료사 출신도 아닌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신뢰를 줄 수 있을까?'


더군다나 그 당시 '승무원 출신 필라테스 강사'는 그다지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꼬리표를 달기 싫었다. 그래서 더 공부하고, 더 움직이고, 더 깊이 들여다봤다. 회원님의 말에 더 귀 기울이고 회원님의 몸을 더 연구했다. 그렇게 약 3년 동안 회원님들은 떠나지 않고 나와 함께 했다.


면접과 말하기를 가르치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아나운서나 캐스터, 쇼호스트 출신이 많지만 나는 아니다. 방송 경력도 없다. 그래서 내가 감히 말하기를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생각했고 '쟤가 뭔데.'등의 반응을 상상했다. 남보다 내가 먼저 나를 의심했다.


"그러게, 내가 뭔데?"


그래, 나는 그들과 다르다.

나는 아주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그리고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과 수많은 소통을 해왔다. 각종 컴플레인과 팀 비행, 그리고 내 고객들을 위해 생각하고 말해온 사람이다. 그게 내가 해온 일이고 잘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전문성을 쌓고 있었다.

내가 나를 의심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나를 보고 자라고 있었다.

부족했기에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완벽하진 않아도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자격지심은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압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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