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못 돌아간 여행자

격리 시설 생활이 시작되다

by 아말

아침에 출국했다가 점심때 다시 입국한 INAD 승객이 된 나.

집에 가서 오프를 즐기려던 계획은 무산되고 그대로 공항에 갇히게 되었다. 공항 지상직원의 말과는 달리 카타르 공항은 오전에 출국할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와 가운을 착용하고 카타르로 입국하는 사람들을 막았다. '국경봉쇄' 쯤으로 생각하면 되겠다. 나름의 분류를 하고 줄을 세웠다. 나도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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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후속조치 없이 일단 못 들어가게 하는 상황이라 내 기다림은 약 8시간 정도 지속되었다. 기내식을 먹고 내려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지나자 공항에서 물 한 병과 스낵박스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땐 제대로 된 절차도 없으면서 무작정 이렇게 방치하는 것에 대해 화가 치밀었지만 기억은 미화된다고 했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가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으니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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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낵박스로는 허기를 달랠 수 없었다. 근데 마침 너무 배고파하는 나에게 카타리(카타르 국적인)가 버거킹을 건넸다. 사양하지 않고 감사히 받아먹었다. 덕분에 행그리(Hungry + Angry) 지수가 낮아졌다.


입국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본국에 다녀온, 혹은 여행을 다녀온 크루들이 많았다. 차라리 집이나 여행이라도 다녀온 그들이 부러웠다. 크루들은 따로 분류되기 시작했고 나도 그 무리에 들어갔다. 관계자들은 우리를 다른 곳으로 인솔했고 마지막 여행지를 조사했다. 나는 내 사정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생각할 때 크루들의 마지막 여행지는 중요치 않았다. 여행이 아니어도 비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그들은 회사와 연락해 우리의 최근 비행 스케줄을 조사 하기 시작했다.


'아뿔싸!' 나는 속으로 외쳤다.

3월 4일, 이 사달이 나기 며칠 전에 나는 인천비행을 다녀왔다. 물론 이때 신천지 여파로 호텔에서 가급적 외출을 삼가라는 안내를 받았고 나 역시 마트에서 장만 보고 호텔콕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속으로 체념했다. '나는 이제 집으로 못 돌아가겠구나.'


역시나 나는 격리조치 판정을 받았다. 약 40여 명의 크루들 중 당시 고위험국가(이란, 이태리, 한국 등)에 비행이나 여행을 다녀온 세 명은 정부 관리 시설로, 나머지는 회사 숙소나 집에서 격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사실, 시설 격리와 한국으로 쫓겨나는 두 가지 옵션이 있었다. 처음엔 8시간 동안 너무 힘들어서 홧김에 "한국 갈래!"라고 했지만 캐리어에 며칠 짐밖에 없기도 했고 앞으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아서 격리소에 가겠다고 번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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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아침 카타르 도하에서 6시 50분 비행기를 탔고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한국 여권 소지자로 입국이 거절 돼 오후 2시 30분에 다시 카타르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약 8시간 정도 공항에서 대기하고 밤 10시 30분쯤 공항에서 나올 수 있었다. 집에 가기 위해 공항을 나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어색했다. 공항에서 나오니 앰뷸런스 몇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저걸 타야 한다는 게 억울했다. 반나절만에 세상이 뒤집혔다.


그렇게 앰뷸런스를 타고 30분을 달려 정부 격리 시설에 도착했다.

정부 숙소는 회사 숙소 격리와 달리 1인 1실이 아닌 1집을 제공했다. 시설도 깨끗하고 조용했으며 단순한 나는 여기에 또 만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갑자기 벌어진 이 모든 일에 당황하고 막막했다. 그렇게 나는 낯선 집에서 혼자 뜬 눈으로 첫날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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