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지도 않지만 싫지만도 않은 격리소 생활 시작
낯선 격리소에서의 밤은 길기만 했다. 제대로 잠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단했는지 눈이 감기긴 했나 보다. 하루에 다섯 번씩 울리는 이슬람의 기도 소리 덕에 이른 아침 눈이 떠졌다.
원래 살던 집(카타르항공에서 제공하는 숙소) 보다 높은 층고에 볕도 잘 들었다. 새로운 날이 시작되니 길고 긴 어제가 과연 진짜 나에게 일어난 일인지, 지금 이게 현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짧은 여행이라 태블릿도 안 챙겼고 가진 건 옷 몇 가지와 휴대폰뿐이었다. 앞으로 14일을 여기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 너무 막막했다. 당시에는 이 분풀이를 회사에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라에서 행한 일을 회사라고 어찌할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짜증도 나고 화도 났다. 하지만 앞으로 비행 스케줄 등의 문제로 회사와 연락을 했다. 새삼 스마트폰으로 메일도 하고 메신저 앱도 쓸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공식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보니 개인적인 문제들도 있었다. 당장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대자연의 날도 다가오고 속옷, 담요 등등 물건들과 킬링타임 할 수 있는 태블릿도 필요했다. 회사 숙소는 집주인 없이는 절대로 문을 열 수 없지만 사정사정 부탁해 회사에서 동기 동생에게 우리 집 문을 열어주기로 했다.
센스 있는 동생이 태블릿에 <열혈검사>, <멜로가 체질> 드라마를 다운로드하여 주었다. 격리소에서 준 핫스폿 디바이스가 있는데 처음에는 잘 터지지 않았다. 덕분에 다운로드한 드라마로 시간을 잘 때웠다. 담요, 생리대, 마스크뿐만 아니라 라면과 반찬, 내가 좋아하는 믹스커피 등등 자잘한 물건까지 알뜰살뜰하게 챙겨준 동생 덕에 이 집에서 14일은 거뜬 없을 것 같았다.
격리소에 입소한 다음 날인 3월 10일부터 식사를 배급받기 시작했다. 아라빅, 필리피노 메뉴 위주였다. 이 음식들, 아니 모든 음식들을 맛있게 잘 먹는 편이라 다행이었지만 결국엔 물리기 시작했다. 물리는 것 보다 무서운 것은 6시에 저녁 식사 배급이 끝나면 늦은 밤에 찾아오는 배고픔이었다.
뭐 순서대로 대충 이런 식의 아침, 점심, 저녁 메뉴였다. 양고기, 닭고기, 치킨, 그리고 빵의 반복이었다. 처음엔 받는 대로 다 먹었는데 밤에 배고플 때를 대비해 바나나나, 개별 포장되어 있는 음식들은 따로 빼서 보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잘 터지지 않던 와이파이 기기도 잘 되면서 ebook 도 몇 개 다운로드하여 읽고 넷플릭스도 정주행 했다. 특히 <슬기로운 감빵생활>과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마치 나도 수감자가 된 느낌이었다. 동시에 3일 이상 오프도 없던 나에게 주어진 이 청천벽력 같은 휴식을 누구보다 잘 즐기기 시작했다.
격리소에 입소한 지 6일째 되는 3월 15일, 점심식사를 배급받고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이제 숙소를 옮길 거니까 3시까지 준비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나중에 보니 카타르항공 크루들만 회사 관리하의 숙소로 옮기는 모양이었다. 안 먹고 있던 점심식사를 빠르게 마치고 허겁지겁 짐을 싸기 시작했다. 오늘 회사에 친한 동생이 과일과 군것질거리등을 사다 준다고 했는데 다행히도 그 친구는 2시 55분 정도에 도착했다. 막상 혼자 낯선 곳에 동떨어져 있으니 나를 걱정하고 챙겨주려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다. 나는 해준 것도 없는데 미안하기도 했다. 빨리 나가서 그들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그렇게 3시가 되어 짐을 싸들고 로비에 내려왔다. 역시나 크루들과 기장들만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크루버스(크루들 출퇴근시켜 주는 통근버스) 3대가 있었다. 역시나 '동생이 늦게 도착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은 필요가 없었다. 3시에 내려와서 크루버스에서 약 1시간 반 가량 대기했다.
그렇게 오후 4시 반이 되어서야 버스는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익숙한 버스에 피곤한 몸을 맡겼다. 그렇게 다른 곳에 있는 새로운 회사 숙소에 도착했다. 회사 숙소인 만큼 한 집을 두 명이 나눠 쓰게 되었다. 반갑게도 나는 한국인 크루와 함께 버스를 타고 왔고 그녀와 함께 새로운 숙소를 쓰게 되었다. 짐을 풀고 고단한 몸을 씻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저녁 8시쯤에 저녁 식사를 받았다. 저녁식사를 받고 나서야 내가 꽤나 좋은 곳에서 첫 격리를 했었구나를 실감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곳에서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시 한번 낯설고 긴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