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 챙겨준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정부 격리 숙소에서 급작스레 크루 격리 숙소로 이사를 왔다. 크루 격리 숙소는 아직 준비나 정해진 체계가 없는 채로 격리자들을 받게 되었고 우왕좌왕, 우여곡절 끝에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배급받았다. 정부 숙소와 달리 크루 숙소에서는 캐서롤(기내식)을 받는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진짜 캐서롤이 나왔다. 그에 비하면 나는 그동안 1인 1실에 맛깔난 음식으로 호위호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음식의 고유의 맛을 즐기는 맛도리로서 역시나 맛은 있었지만 이렇게 삼시 세끼를 먹을 생각하니 두려웠다. 사실 이 기내식 때문에 입사 후 살이 7kg가량 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면증이 있던 나는 다시 한번 잠자리가 바뀐 것도 걱정되기 시작했다. 전 숙소와는 달리 처음 만난 한국인 크루와 공간을 셰어 하는 것도 살짝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고 금방 괜찮아졌다. 진짜 문제는 코로나의 급격한 확산이었다.
내가 격리를 시작할 당시에는 카타르에 코로나 확진자가 없었고 나 스스로도 코로나의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한 탓에 여행을 강행했었다. 하지만 두 번째 격리 숙소에서 카타르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했다는 기사를 보았고 격리 내내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3월 중순부터는 카타르항공 오피스도, 승무원 트레이닝도 중단되었다. 듣기로는 카페, 식당들도 다 문을 닫았고 마트만 영업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 격리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잘 먹고 잘 자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어이없는 첫날밤을 무사히 보내고 굶주린 배로 다음 날 아침을 맞이했다. 이곳에 있으니 마치 동물처럼 밥때만 기다리게 되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침식사는 깜깜무소식이었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배고픈 마음에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에 있던 시큐리티는 케이터링과 소통이 잘 안 되어 아침이 생략되었다고 말했다. 생략된 아침 때문에 지금 부리나케 점심식사를 냉장고에 넣고 있으니 가져가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때 시간은 오전 11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단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1차적 욕구조차 해결되지 않으니 판단력이 흐려지며 쉽게 감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게다가 밥때가 되면 공용공간으로 내려와 냉장고에 밥을 꺼내가는 시스템은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며 굳이 이렇게 격리를 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게 했다.
카타르항공 캐서롤 중 채식 메뉴는 그 포장지가 초록색이다. 계속해서 초록색 캐서롤만 나왔다.
이 상황을 들은 친구가 말했다.
"That's unhealthier than Corona!" (코로나 보다 건강하지 못하다.)
어쩌겠나.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간만 되면 배가 고팠다. 아마도 든든한 밥 한 끼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때가 되어 버선발로 내려가 식사를 챙겨 왔다.
그렇게 초록색 캐서롤만 먹으며 며칠을 보냈고 동료 친구가 필요한 것 있냐며 가져다주겠다고 연락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마음만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 나는 뭐라도 더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 염치 불고하고 필요한 것을 말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다시 한번 너무 감사한 일이다. 집에 있는 걸 챙겨다 주는 것도 아니고 이런 초 비상사태에 소중한 자신의 휴무에 시간을 내어 마트에 들러 내가 필요한 것으로만 장을 봐서 다시 내가 있는 격리 숙소를 배달해 준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 친구와는 얼마 전 후배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막 러시아 비행을 마치고 온 다른 친구가 귤을 가져다주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내가 있는 곳으로 오는 길에 토푸(한식당)에 들러 비빔밥과 밀크티까지 사 왔다. 사식을 넣어준다는 농담과 함께 친구는 나에게 잘 먹고 건강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어려울 때 비로소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평소에도 당연한 일은 아니지만 너무 감사했고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이 친구는 코로나 시절을 도하에서 잘 견뎠고 현재는 결혼해서 남편이 있는 미국으로 이주해 아주 잘 살고 있다).
드디어 고기와 쌀밥으로 배를 채웠다. 역시 무섭도록 찾아오는 배고픔이 사라졌다. 그리고 저 포장용기들을 깨끗이 씻어 두었다. 숙소에는 그릇도 없었기 때문에 계란과 오트밀 등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잠도 안 오는 밤에 뭐라도 해 먹기 위해서다.
이렇게 음식과 넷플릭스, 그리고 간단한 운동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격리소를 옮기고 며칠 뒤, 필리핀 의사 둘이 들어왔고 내 코에 면봉을 깊숙이 넣었다. 눈물이 쏟아졌고 이내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격리소 출소날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3월 9일 첫 격리소 입소일로부터 14일 째인 3월 23일 나는 출소 예정이다. 출소만 하면 모든 게 원상태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