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느낌이었다
2020년 3월 23일, 휴가를 맞아 여행 가던 길에 끌려가 격리를 시작한 지 14일째. 드디어 어이없고도 알차게 보내던 격리생활을 청산하는 날이다. 휴대용 바보상자, 태블릿으로 그동안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를 끝냈는지 헤아릴 수 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열혈검사>, <멜로가 체질>, <킹덤>, <종이의 집>, <엘리트들>, <리버데일>, <신과 함께>, <더 플랫폼> 등등.
두 번째 격리숙소에서 함께 지내게 된 한국인 크루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 승무원이었다. 비행도 제대로 못해보고 격리를 하게 된 것도 모자라 각 나라들의 국경 봉쇄로 카타르항공의 비행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간만의 휴식을 즐기고 있을 때 그 친구는 앞으로 카타르항공 승무원으로서의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 친구의 배려 덕분에 두 번째 격리소 생활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격리메이트와 함께 배달음식을 시켰다. 정확히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마 우리 둘의 격리소를 출소하는 날이 달랐고 나의 출소가 먼저 예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나의 출소 전 날에 치킨을 시켜 먹기로 약속했었다.
나는 출소 당일에 배급되는 식사까지 야무지게 마치고 집으로 귀가했다. 귀가 시 보통 크루들을 출퇴근시켜 주는 크루 버스는 제공되지 않았다. 간단한 짐으로 시작했던 격리와는 달리 짐으로 가득 찬 캐리어를 끌고 마스크를 꼭 눌러쓰고 밖으로 나왔다. 햇빛은 작열했고 거리는 한산했다.
여러 생각이 스치는 동안 우버가 도착했다. 우버 기사님도 마스크를 낀 채 짐을 싣는 것을 도와주셨다. 그렇게 적막한 사막 도시를 달려 우리 집에 도착했다. '홈 스위트 홈'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 같았다. 우선 제공되는 어메니티가 아닌 내 용품들로 아주 따뜻하고 긴 샤워를 했다. 그리고는 같은 건물에 살고 있던 한국인 동생의 집으로 올라갔다(얼마 전 이 친구의 결혼식 사회를 보았다).
그녀는 내가 온다고 출소 기념 두부를 준비해 두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과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들로 가득 채워진 식탁.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가? 갇혀있지 않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만으로 행복해졌다. 그렇게 밤이 깊도록 먹고 웃고 떠들었다.
회사에서 주어지는 스케줄에 따라 생활하는 승무원으로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로스터(비행 스케줄)를 확인하는 것이다. 격리소를 출소한 날로부터 7일 동안의 스케줄이 또 격리로 변경되어 있었다. 바로 회사에 메일을 했다. 추후 증상이 있는지 지켜보기 위해 자가격리 7일을 추가한다는 컴퍼니 닥터의 답장이 왔다. 그렇게 시설 격리가 끝나고 또다시 자가 격리가 시작되었다.
사실 이때 전체 크루들에게 회사의 안내 메일이 돌았다. 코로나로 인해 비행도 많이 없어지고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시기에 잠시 본국에 돌아가 있을 지원자들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웰페어에 엑싯퍼밋을 신청하고 카타르를 나갈 수 있었다(당시에는 카타르를 나가는 것도 허락이 필요했다). 문제는 나가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일단 남은 유급휴가를 다 사용하게 되면 카타르로 재입국되는 날까지 자동으로 무기한 무급휴가가 적용이 될 예정이다. 꼭 한국을 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도하에서 휴가를 쓸 경우 유급 휴가가 모두 소진되는 날부터 비행으로 복귀해야 한다.
여행을 결심했을 때까지만 해도 안전불감증이었던 나는 격리동안 하루가 달리 악화되는 상황을 접하며 경각심과 공포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지경이 되어서야 카타르항공 승무원의 마스크 착용이 허용된 사실에 더 이상의 비행이 두려워졌다. 고민 끝에 자가 격리가 끝나면 나도 엑싯퍼밋을 신청하기로 했다. 자가격리 동안 열심히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총 21일간의 격리를 끝내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준비를 했다. 여행을 강행한 것 이후로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가져올 결정을 하고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