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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몽드 Jun 27. 2019

나 다운 한 끼

[마음챙김 먹기 | Mindful Eating]


늦게 일어날 생각은 없었다. 날이 흐려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 전날 몸이 피로해서 그런 걸까? 무거운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보니 10시 50분이었다.


집에 혼자 있었다. 아니, 나와 나의 사랑스러운 고양이 샤미도 있으니 혼자는 아니었다. 사람이 나 하나였을 뿐.

찌뿌둥한 몸을 깨워야 한다. Headspace를 켜고 Waking up 명상 5분을 시작한다. Andy Puddicombe의 목소리가 내 방을 감싼다. 보통 잠자는 명상 아니면 앉아서 하라고 하지만 정신도 온전히 깨어나지 못했는데 몸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렇게 눈을 감고 호흡하며 5분의 지난다. 몸도 마음도 늦은 아침을 시작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화장실에 먼저 간다. 몸이 가벼워지면 뱃속에서 배고픔이 느껴진다.

'음 오늘은 약간 배고프군. 그렇게 배고프진 않다.'

 - 식사 전 나의 배고픔을 느껴봅니다. 평소 그저 습관대로 냉장고 문을 열고, 식탁에 앉아있던 나를 생각해 봅니다.



부엌에 가서 물 한잔을 마시고 냉장고를 열어본다. 시간은 11시가 되었으니 아침보다는 조금 더 든든하게, 아점을 먹는 게 좋을 것 같다. 엄마가 잔뜩 주문해둔 제주도 보리빵이 다행히 냉동고가 아니라 냉장고에 있다. 레인지에 금방 돌리면 되겠다. 계란이 있으니 스크램블 에그를 해야겠다. 맞다, 리코타 치즈! 어젯밤에 분명히 레시피대로 했는데 아무리 끓여도 유청 분리가 명확히 되지 않아 레몬즙과 식초를 몇 번 더 붓고 면 주머니에 걸러두었다. 긴장스러운 마음으로 한 티스푼 퍼 먹어본다. 아아..약간 신데 음 뒤에 크림과 우유맛이 난다. 첫맛에 시큼함이 조금 강하다. 아쉽지만 그래도 먹을만하니 보리빵에 발라서 같이 먹어야겠다. 과일은 사과보다는 오렌지가 더 끌리고, 약간 스산한 기운은 밀크티로 데워줘야겠다.

 - 처음 만들어본 리코타 치즈입니다.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어떤 맛일지, 어떤 냄새와 식감을 지닐지 알 수 없지만 그런 호기심은 음식을 즐기는 중요한 태도입니다.




그렇게 나의 한 접시가 완성이 되었다. 구수한 보리빵, 올리브유 향이 풍기는 고소한 스크램블 에그, 새콤하지만 우유의 풍미가 있는 수제 리코타 치즈, 싱그럽고 달콤한 오렌지, 그리고 꿀 향기가 살짝 풍기는 밀크티.

접시에 푸짐하게 담았다.

제주 보리빵, 스크램블 에그, 수제 리코타 치즈, 오렌지 그리고 꿀을 넣은 밀크티.


특별한 재료는 없다. 보리빵은 앙꼬 없는 찐빵이지만, 그 구수함과 푸근함 그리고 자연스러움에 자주 먹게 된다. 레인지에 살짝 데워 따끈따끈하게 먹으면 그냥 먹어도 맛있고 뭘 발라 먹어도 맛있다. 스크램블 에그는 간이 중요하다. 예전에는 케첩을 찍어 먹기도 했지만 요즘은 올리브유와 후추 그리고 계란 자체의 고소함과 부드러운 식감을 즐긴다. 올리브유 대신 다른 기름으로 하면 계란의 향을 더 느낄 수 있다. 살짝 덜 익힌 스크램블 에그는 촉촉함을 더해준다. 가끔 우유를 넣을 때도 있는데 우유를 넣으면 부드럽지만 식감은 떨어진다. 포크의 옆면으로 한 입 크기 정도 잘라 콕 찍혀야 한다. 흘리지 않고 내 입 속으로 그 따뜻함과 부드러움, 촉촉함이 다 전달되어야 한다. 리코타 치즈는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치즈다. 리코타 치즈는 차가웠다. 차가우니 더 상큼하게 느껴졌다. 신선함과 산뜻함이 느껴졌다. 오렌지는 껍질을 까는 순간부터 그 싱그러움과 달큼함이 풍겨온다.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서 자르다 보니 손가락이 차갑지만 손 끝부터 물드는 오렌지향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밀크티는 나의 아침 스테디 메뉴다. 클래식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밀크티다. 원래는 설탕을 넣었지만 요즘은 꿀을 넣어 마신다. 홍차의 향긋함, 우유의 부드러움과 고소함, 그리고 꿀의 달콤함과 향긋함을 한 모금 마시면, 하루의 시작이 좋다. 몸이 따뜻해지고 향기로워진다.

 - 접시에 담긴 음식 하나하나에 집중해 보는 것.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집에서 먹는 간단한 식사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요. 특별한 재료 없고, 특별한 레시피도 없는 그저 그런 밥. 그런데 사실 그 한 끼에 자신이 가장 편하고 좋아하는 음식들이 담겨있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저도 그릇에 담고서야 '알아차렸습니다'. 혼자 있으면 핸드폰을 하거나, 신문을 읽거나 다른 것들에 주의를 돌리고 정작 식사에 주목하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그리고 그 행동들이 자동적이어서 의식하지 못합니다. 마음챙김하는 식사, 그저 내 앞에 놓인 접시 한 그릇을 바라보는 것이 시작이고 전부입니다.




특별한 재료도 없고, 화려한 플레이팅도 아니지만, 지금 이 한 접시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담겨 있다. 그리고 나의 손맛도 담겨 있다.

그래서 특별한 한 끼, 나 다운 한 끼다.







*마음챙김하며 먹기, mindful eating을 실천하고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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