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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몽드 Jul 12. 2019

명상하기엔 너무 좋은 날씨

[Mindfulness | 마음챙김]

명상하기'에' 너무 좋은 날씨



혹시 커버 사진을 보시고 '외국인가?'라고 생각하신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7월 8일 월요일 서울 용산가족공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날 날씨가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햇빛이 조금 셌지만, 꽤 강력한 바람이 이틀 내내 불어 초여름의 열기와 먼지를 훌훌 날려 버렸습니다. 아침부터 마음이 들뜨고 오늘은 집에 박혀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 집 근처에 용산가족공원이 있습니다. 항상 느끼지만 용산가족공원은 미군 부대랑 가까운지 몰라도 공원 자체가 외국 같습니다. 널찍한 잔디밭, 크고 오래된 나무들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큰 규모에 비해 사람들이 자주 찾지는 않아 한적한 편입니다. 날씨가 끝내주던 월요일 오후. 생수 한 통, 가벼운 책 한 권을 챙겨 용산가족공원으로 향합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연둣빛 잔디밭과 살랑이는 버드나무, 아찔할 정도로 파란 하늘과 그 위에 크고 보송보송한 구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품은 바람이 제 몸과 마음을 휘감습니다. 저는 날씨에 취해버렸습니다. 바람결에 제 마음과 몸을 뉘어버렸습니다. 이 순간이 계속되었으면 했습니다. 사진으로라도 지금 느껴지는 모든 것을 담고 싶었습니다. 몸과 마음은 이미 바람 속에 들어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발길 가는 대로 공원을 걸었습니다. 삐약 거리는 참새, 뭐가 그리 급한지 째액 우는 직박구리가 이리저리 날아다닙니다. 풀내음이 제 온몸 구석구석에 베어 듭니다. 그러다 제가 좋아하는 들판에 도착했습니다. 용산가족공원의 안쪽에 있는 널찍한 들판 가운데에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이 순간을 느껴봅니다.




야외에서 명상을 해 봅니다. Headspace 명상 어플을 켜고 짧게 명상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런! 호흡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제 마음이 지금 너무 위로 떠 올라 있는 것 같습니다. 바람이 계속 저를 날려 보냅니다. 5분, 10분 Headspace 명상이 끝나도 저는 호흡에 집중을 못했습니다. 지금 제가 있는 환경이 호흡에 집중하고 명상하기엔 너무 좋습니다. 바디 스캔, 감정 스캔을 했을 때, 제 몸은 바람이 되어 있었고 감정은 너무 들떠 있었습니다. '으으 명상을 해야 돼', '왜 이렇게 집중이 안 되지?'라며 저 자신을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깨달았습니다. 



'그냥 있자.'

마음챙김 명상을 매일 하고 글도 쓰고 공부도 하지만, 마음챙김의 핵심을 또 잊어버렸습니다. 


벤치에 잠깐 누워서 바람을 즐겼습니다. '아 시원해~', '맨날 이러면 얼마나 좋아~', '좋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니 너무나 평온해졌습니다. 생각도, 느낌도 바람에 보내버렸습니다. 

저는 온전히 그곳에 있었습니다. 




온전히 있음을 느끼고 몸을 일으켜 세워 앉았습니다. 몸의 변화를 느껴보고 주의를 천천히 바라보았습니다. 여전히 평온했습니다.

가져온 물로 목을 축이고, 잠시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종종 '내가 여기서 책을 읽고 있네'라고 관찰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책을 바라보고 독서를 즐깁니다. 



명상이 잘 안돼 날씨 탓을 하는 것은 진정한 마음챙김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 은 7월 12일 금요일 낮에 쓰고 있습니다. 어제, 그제 흐릿한 날씨는 가고 다시 푸릇한 하늘이 보입니다. 



오늘, 명상을 하기'에' 너무 좋은 날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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