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ang Kim Sep 21. 2021

어느 중년 아버지의 교육관

아버지, 가치관, 그리고, 자녀교육

[작가주] 2018년도 즈음에 2004년에 모 지인께서 적은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amangkim/48

그리고, 2004년 당시 두살이었던, 그리고 2018년에 사춘기 소녀였던 딸램은 대학생이 되었네요. 오늘은 짧게나마 아버지와 아이의 근황을 올려 볼까 합니다.




그 때의 젊은 아버지는

사교육은 시키지 않겠다고 했던 젋은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사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았습니다. 조기유학과 같은 특별한 수단을 강구하지는 않았지만, 그 아버지의 여건 상 이 아이는 조기 유학과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 아이는 가족들과 함께 필리핀을 가게 됩니다. 아버지의 여건상 이유로 말이지요. 조기유학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던 이 아이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쓰는 곳에 홀로 남겨지게 됩니다. 아버지는 오리엔테이션 첫날, 이 아이의 얼굴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선생님이 말씀을 다 알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하는 멍한 표정을 보며, 아버지에게 들었던 생각은


"과연 잘한걸까?" 

"오기전에 유학을 위한 사교육을 시켜야 하지는 않았을까?"

"한학년 아래로 입학 시킬까?"


와 같은 조기유학을 보내는 일반적인 부모들이 가질만한 모든 질문들이 머릿속에 맴돌았었지요. 그렇게 두 아이를 두고 오던 필리핀 조기 유학 첫날을 뒤로 하고, 아버지와 아이 그리고 모든 가족들이 그렇게 필리핀 생활을 하게 됩니다. 처음 6개월정도는 가족들 모두가 고생을 했었지만, 6개월이 지나면서, 아이와 그 아이의 동생 모두 학교생활을 잘 적응하고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호주학제를 따르던 그 아이의 첫학교는 아이의 학년이 오르자 힉교의 컬리큘럼이나 수준이 처음같지 않다는걸 알게 되었고, 그렇게 다른 학교를 알아보게 됩니다. 그렇게 선택을 했던 학교는 카톨릭 학교 였습니다. 참고로 아버지와 아이의 종교는 기독교이고, 흔히 알려진 카톨릭과는 그 궤를 약간 달리 합니다. 아시다시피, 필리핀의 공교육은 한국처럼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에 사는 외국인들은 국제학교나 사립학교를 보내게 됩니다. 아버지가 택했던 아이의 두번째 학교는 사립학교 중에는 평판이 괜찮은 학교예요. 아버지의 기준에서 평판이 좋은 학교는 시험을 잘 보느냐의 기준이 아니라 얼마나 자유롭게 학교생활을 잘 할수 있느냐가 그 기준이었답니다. 만약, 아버지가 필리핀에 계속 정착을 했었다면, 이 아이는 이 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또 한번의 여건으로 인해, 6개월 정도만 이 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6개월 밖에 다니지 않은 학교를 굳이 이야기 하는 이유는 이 당시에 아이와 아버지는 그들의 종교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가톨릭 학교다 보니, 일반 학교들과는 다른 것들이 존재했거든요. 예를 들자면, 아침 미사같은것 말이지요. 기독교(특히, 감리교)와 가톨릭은 어떻게 다른지, 아침 미사는 참석해도 되는지, 성모 마리아는 어떤 존재인등부터 채플시간이나, 일요일 성경학교에서 배우는 성경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에 대해서 아이는 진지하게 질문을 했고, 아버지는 진지하게 대답을 해 줍니다. 아, 참고로 아이와 아버지가 필리핀에서 다녔던 교회는 UCM(Union Church of Manila)라는 100년도 더 된 미국 교회였답니다. 필리핀이 못하는 나라이긴 하지만, 100년정도 된 미국교회는 선진문물의 체계와 시스템들을 잘 가지고 있었지요. 대부분의 한국교회에서 바라보는 기독교와 하나님의 가치관과는 많이 다릅니다(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룰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어쨋든 그 때 이 아이는 종교에 대한 많은 질문들을 하고, 스스로 고민하게 됩니다. 그와 함께 이 아이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을 어렴풋이나마 시작하게 됩니다.

Union Church of Manila (출처: 아버지의 페북)


그렇게 4년정도가 지나고 아버지와 아이(와 동생과 엄마)는 에미레이트(UAE)라는 다소 생소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아이에게 에미레이트는 런닝맨에 나온 사막에 한가운데 생긴 신기한 도시 정도의 동네였지요 (참고로, 그 당시 런닝맨에 나왔던 도시는 두바이(Dubai)이고, 아버지와 아이가 정착한 도시는 UAE의 수도인 아부다비(Abu Dhabi)랍니다) 


https://youtu.be/khLKNKPUF4I

런닝맨 두바이 동영상 (출처: 너튜브)


사막의 나라에서

처음, UAE이라는 낯선 나라, 기존의 문화는 전혀 다른 이슬람 문화권을 접한게 2016년이네요. 아버지에게 아부다비 생활은 그야 말로 "광야"였습니다. 그전까지는 겪어보지 못한 밑바닥 인생을 경험하게 됩니다. 초장기에는 어려서 아버지에게 닥친 어려움에 대해서 몰랐던 아이는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와 엄마에게 처한 어려움에 대해서 이해하게 됩니다.

아부다비 (출처: 아버지 페북)

아부다비에서 아이가 다니게 된 학교는 영국의 학제를 따르는 국제학교 였습니다. 영국의 학제는 미국이나 호주 학제와는 적지않은 차이가 납니다. 세부적인 차이를 다 설명하기는 어렵고, 가장 가시적인 차이는 학제제가 13학년제라는게 큰 차이입니다. 즉, 우리나라의 고3, 미국, 호주의 12학년이 영국학제에서는 13학년이 되고, 대략 1년정도 일찍 시작해서 13년을 배우는 구조 입니다. 어쨋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 입장에서는 이전과는 전혀 환경에서 다시 적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도 아버지에게는 필리핀에서 느꼈던 그런 두려움은 없었답니다. 필리핀에서의 4년동안 아이의 영어를 모국어수준으로 사용할 줄 알았었고, 자기 동생과는 영어로 대화는게 더 편한 정도의 수준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나중에 아이는 아부다비에서 처음 적응 하는게 필리핀에서 처음 적응했을 때 보도 더 힘들었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버지는 그런 아이의 어려움을 처음 이해하게 됩니다. 영국학제에서는 초등학교 과정은 매우 쉬운 편이나 GCSE를 하게 되면서(우리나라의 중등과정에 해당), 그 난이도가 급상승하게 됩니다. 아이가 힘들어 했던 이유도 아부다비에 오자마자 GCSE과정을 하게 되면서 생긴 어려움도 있지 않을까 짐작을 해봅니다. 이때부터 아버지는 아이의 공부에 대해서 전혀 관여를 하지 않게 됩니다. 물론, 아버지는 경험상, 수학, 물리, 경영, IT와 같은 과목들을 아이에게 가르칠 능력이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아이는 아이만의 아이 스스로의 공부방법을 채득하고, 더 이상 누구의 강요나 조언 따위는 필요없는 수준이 됩니다. 그럼에도 아버지와 아이는 많은 토론을 하게 되는데 다양한 주제로 열띤 논쟁을 합니다. 물론, 이런 논쟁은 아버지의 승리(?)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아버지의 논리를 뒤집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답니다. 이 무렵이 젊은 아버지를 처음 소개한 글을 썼던 2018년 경이네요.


영국학제에서 GCSE를 마치는 11학년이 되면, A-Level(우리나라 고등과정에 해당하지만, 2년과정임)이라는 걸 하게 됩니다. 통상 영국소재의 학교나, 영국학제를 완전히 따르는 국제학교에서는 통상적으로 A-level을 하지만, 영국학제를 따르는 일부 국제학교에서는 A-level대신 IB과정을 하게 됩니다. 아이가 다니던 영국학교는 A-level대신 IB를 하는 학교였고, 그렇게 아이는 IB를 하게 되지요. A-level이나 IB를 포함한 다양한 학제에 대한 할말은 많으나, 오늘은 건너 뛰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혹시라도 수학과목에 대한 학제가 궁금한 분들은 다음 글을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https://brunch.co.kr/@amangkim/54


IB 졸업과정(Diploma)은 기존의 다른 학제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그중에 가장큰 차이는 영작을 어마무시하게 해야 되다는 점일 겁니다. 시험성적만으로 평가하는 A-level과 달리, IB는 시험성적으로 평가하는 과목들(수학, 영어, 물리, 화학 등)도 있지만, 영작자체로 점수를 주는 별도의 과목이 존재 합니다. 그리고, 이 과목들은 영어가 모국어인 이들에게도 굉장히 어려운 과목들입니다. 어쨋든 확실한건 많이 쓰도록 한다는 겁니다. 이 과정이 앞으로 논문을 써야 하는 석,박사에 생각이 있다면 확실하게 도움이 되는 과정이지요.


대입준비

미국 유학에 경험이 있었던 아버지는 아이에게 미국쪽으로 지원을 하도록 조언을 해줍니다. 처음 미국보다는 영국쪽을 선호했던 아이는 결국 생각을 바꿔 미국쪽의 학교를 지원하게 됩니다. 당시 공부를 곧잘 했던 아이는 서서히 본인이 더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가 생깁니다. 그렇게 아이는 입시를 준비합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가고 싶은 학교에 무한한 지원을 해줬으면 하지만, 여건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가고 싶은 학교들은 대부분 굉장히 비싼 학비와 생활비가 드는 곳들 이었거든요. 아이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는지, Common App을 통해 학교를 지원할 때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장학금(need-base)을 같이 지원하겠다구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비 미국인이 미국학교에 장학금을 지원하게 되면, 합격할 가능성이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장학금 지원하는것 자체로 말입니다. 장학 금지원여부에 관계없이(need-blind) 입학사정을 하는 학교는 하버드와 MIT정도 입니다. 적어도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학교들 가운데서는 저 두곳만이 장학금 지원 여부와 관계없이 입학평가를 하는 곳이었으니까요. 아이는 재정지원 함께 원서를 낸 학교들과, 외국인들에게는 need-base 장학금이 아예없는 학교들 몇 군데를 추려 대략 10여군데의 학교에 원서를 지원하게 됩니다 (이후에 지원을 어떤 식으로 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지원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관심이 있으시다면 말이지요) 결론적으로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장학금 지원을 했던 모든 학교에서 탈락을 했지요. 아버지는 아직도 


"장학금을 지원하지 않고 지원했다면 어땟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어려울 걸 알면서도 아버지를 생각해서 그렇게 지원해준 아이에게 아버지는 지금도 미안합니다 (아, 장학금을 지원하지 않았다고, 아이가 냈던 학교들에 합격을 하리라는 보장이 없기는 합니다. :p 하지만, 정답은 신께서만 아시겠지요.)  


2021년 9월, 

아이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토론토로 향하게 됩니다. 아이가 최종적으로 입학을 결정한 토론토대학(University of Toronto)은 외국인들에는 장학금 제도가 거의 없답니다. 학비 또한 아이가 원래 가고 싶어 했던 미국의 학교들 보다는 싸긴 했지만, 여전히 어마무시하게 비싸지요. 당분간 아버지와 엄마는 허리띠를 더욱더 졸라 매야겠지만, 아버지가 그렸던 교육관과 가치관으로 자란 아이가 자신의 꿈을 항해 떠나는 모습을 보면 마냥 뿌듯하기만 합니다. 17년전 젊은 아버지는 40대 후반의 중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철이 없나 봅니다. 

아이가 보내준 토론토 사진 (출처: 아버지 페북)

딸램! 아빠가 사랑한다.


덧.

아직도 아버지는 아이가 어떻게 커갈지 궁금합니다. 아버지는 대학입학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걸 너무나 잘 압니다. 앞으로 이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거든요. 그렇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그 젊은 아버지가 가졌던 교육관이 적어도 아직까지는 틀리지 않은듯 합니다. 아직까지는 말이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엘리베이터와 기업경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