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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soh Mar 11. 2020

어린이집 모범생의 페르소나

엄마라서 행복해요


연지는 2돌이 지나고 처음 어린이집에 입소를 했다. 다들 어린이집에 보내니 당연히 나도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두 돌까지 가정육아를 했더니 주위의 간섭이 심해졌다.


왜 안 보내니?

애 사회성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니?

애가 어린이집을 안 다니니까 이렇게 규칙도 모르고 그러지 않니?

이제 그만 보내지 그러니?

왜 끼고 있니?


연지는 한 명인데 연지를 키우는 수많은 사람들을 접하며 가뜩이나 낮아진 자존감이 점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시간을 보내왔다. 주변의 얘기에 휩쓸려 연지는 2돌이 지나고 어린이집에 입소를 했다. 연지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 동안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청소를 하며 빨래를 했고 연지의 하원 시간만 기다렸다. 1주일은 신이 나서 등원을 했다. 2주 차부터 고비가 왔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연지는 아침마다 울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적응 기간이니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했고 나는 어린이집 문 앞에서 집까지 뛰어서 왔다. 그러다 열흘쯤 되었을 때 연지의 배변 활동에 문제가 생겼다. 배변을 못하니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얼굴은 누렇게 변해 버렸다. 주변의 잔소리고 뭐다 다 필요 없고 퇴소를 했다.


다시 가정 육아가 시작되었고 4돌까지 함께 했다. 4돌이 지나고는 어린이집으로 입소를 했다. 그동안 엄마랑만 지내던 연지는 새로운 친구들과 배움의 과정을 탐닉하며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등원을 할 수 있었고, 어린이집 적응 기간을 무사히 마치는 연지를 보며 나는 취직을 했다.



어린이집에 입소하고 그해 겨울에 가졌던 재롱잔치. 작은 몸으로 저렇게 많은 동작을 외워냈다는 게 정말 신기해서 공연을 관람하는 내내 흐뭇하면서도 왜인지 모를 눈물이 흘렀다. 연지가 똑똑해서 안무를 리드하게 됐다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어쩌면 순서를 하나도 까먹지 않고 잘 해내는지 정말 놀라웠다.


연지는 어린이집에서 모범생으로 불렸다.


어린이집 1년을 다니고 유치원을 18개월 다니는 동안에도 선생님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머니~ 연지는 나무랄 데가 없어요~ 얼마나 모범생인 제 몰라요.. 정리도 제일 잘하고 심지어 애들 정리하는 것도 도와주고 정말 기특해요 어머니. 호호호'

'연지가 정말 그래요? 선생님??'

'네~ 연지가 인기도 많고 제 말도 얼마나 잘 듣는지 아주 그냥 예뻐 죽겠어요~~호호호'

'연지가 선생님 말을 잘 듣는다니 신기하네요~ 제 말은 일절 듣지를 않거든요. 집에서 자기 물건 정리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정말 신기하네요~ 호호호'

'사실 연지 같은 애들만 있으면 저희가 힘들게 하나도 없어요 어머니. 호호호'

'(연지도 그럴까요??)'


집에서 연지는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아이다. 엄마 말도 잘 안 듣고 물건 정리는 해본 적도 없고 그러던 아이가 모범적으로 기관 생활을 한다니 복잡한 생각이 올라왔다. 선생님 말도 잘 듣고 정리 정돈도 잘하고 뭐든 시키는 일은 잘하는 '모범생'



어린이집을 잘 다니다가도 어느 날 아침에는 현관 앞에 이불을 깔고 누워서 시위를 했다. 그 당시 우리는 무리해서 집을 샀었고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갚고자 하는 마음에 나는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서 이 빚더미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


'엄마, 나 어린이집 가기 싫어.'

'연지야, 가야 해~'


목욕을 시키고 로션을 발라주다 보면 귓불 아래가 빨갛게 찢어져 있던걸 자주 봤다.


'연지야, 여기 왜 이래?? 다쳤어??'

'몰라 나도.'


며칠을 들여다봐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순간 나쁜 생각이 밀려 들어왔지만 그냥 거기까지였다. 나는 일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순 없었다. 연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니 못했다). 앞만 보고 내달리던 통에 연지의 5살, 6살 시절 모습은 내게 남아 있지 않다. 그저 열심히 산 세월만 있을 뿐. 남편이 베트남으로 발령이 나면서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가정 경제에도 숨이 트였다.


우여곡절 많았던 회사에 마지막 출근을 하기 전 날밤 연지는 많이 아팠다. 밥도 못 먹고 계속 토하는 바람에 결국 응급실까지 가게 되었고 그 작은 손에 바늘을 꽂아야 했다.


'많이 힘들었구나, 우리 딸.'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며 모범생 유연지는 퇴소를 했고,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엄마 옆에서 비모범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미안했어 연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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