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덕분에 다시 배웁니다
협력 강사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학교가 얼마나 아이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 있는지 더욱 깨닫게 된다. 공동체 생활에서만 얻을 수 있는 진리가 있다. 오늘은 원칙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한 반에 약 18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은 수업자료로 색종이, 풀, 색연필, 마커, 클레이, 활동지 등을 준비하신다. 색종이는 단면, 양면, 반짝이, 전통문양 등 다양하기도 하다. 대체적으로 남자아이들은 파란색, 보라색, 검은색 계열을, 여자 아이들은 분홍색, 연보라 계열의 색상과 꽃무늬, 반짝이 등 알록달록한 색상을 선호한다.
어떤 선생님은 가지고 계신 수 백장의 색종이를 교실 앞에 두고 아이들이 원하는 색종이를 골라갈 수 있게 하신다. 요즘에는 학급문구 구입 예산이 있어 아끼지 않고 써도 될 만큼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부족하지 않긴 하다.
하지만 A반 선생님은 재료 제공 방식이 무언가 달랐다. 색종이를 종류별로 5장씩만 준비하신다. 그리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손을 들어 표시하게 하신다. 만약 해당 종류의 색종이를 더 많은 아이들이 원할 경우 가위바위보를 한다.
가장 인기 없는 것은 단면 색종이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은 알록달록한 무늬가 있거나 반짝이 색종이부터 시작하신다. 마치 경매가 이루어지듯 좋은 것들이 앞에서 선택되어 하나씩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인다.
선생님은 즉흥적으로 여러 가지 가위바위보 방법을 제시하신다. 이기는 가위바위보, 지는 가위바위보, 같은 것 내기 등 다양하다. 마지막 색종이 한 장이 팔릴 때까지 가위바위보는 치열하게 진행된다.
처음에 이 과정을 봤을 때 나는 아이들이 실망하지나 않을까 싶어 표정을 살폈다. 만들기나 색종이 접기는 원하는 색상으로 접을 때에만 만족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선택 방법이 투명해서일까? 억울해하지 않았다. 가위바위보라는 우연에 의한 선택을 의외로 잘 받아들였다. 자기 자신 외에도 네댓 명의 친구들이 같은 입장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하는 불평은 "아... 나는 빨간색 하고 싶었는데..." 이 정도였다.
교실 안에서 아이들은 제한된 자원을 나눈다. 때로는 원하지 않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자신 외에도 그 선택을 수용하는 친구들이 있기에 '흔쾌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평 없이 수용하는 편이었다.
초등학교는 40분 수업에 쉬는 시간이 10분씩 주어진다. 화장실은 층별로 하나씩 있다. 복도에는 음수대가 있다.
아이들은 화장실에 가거나 물을 마시는 것에 제약이 없다. 생리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옛날과 달리 수업 시간 안에 느껴지는 생리적 욕구는 교사가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 원칙이다.
A반에는 화장실이라고 쓰여 있는 두 개의 목걸이 명찰이 있다. 수업 시간에도 원한다면 선생님께 말하지 않고도 차고 화장실 이용을 한다. 각자의 물병은 책상 옆 작은 가방에 넣어져 있다. 목마르면 언제든지 수업 중에 물을 마실 수 있다.
다만,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수업 시작 후 10분 정도 지나야 이용할 수 있다. 쉬는 시간을 활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일종의 제약인 셈이다.
이외에도 선생님은 수업 시간 내에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활동을 끝낸 아이들에게 개인 시간을 주신다. 이때 아이들은 색종이 접기, 그림 그리기, 책 읽기 등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조용히 할 수 있는 활동만 가능하다. 다른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은 명확히 구분된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자유가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 자유는 주어진 시간과 공간 안에서 누릴 수 있다.
자유 Liberty의 어원은 라틴어 Liber이다.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메르어 Amargi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그 뜻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다'이다. 나는, 아니 우리는 제한 없는 광활한 대지가 아닌 어머니의 따뜻한 품, 그 '안에서' 자유를 느낀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원칙의 울타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