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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네숨 Nov 08. 2024

버려진 곳에서 창조의 탄생이

쓰레기를 줍던 어린 시절에서 미학에 대한 고민까지



 11살  때  전학 왔을 당시 나의 주변환경은 이전과 아주 달라졌다.

 당시의 학교의 인상은 기계처럼 푸르스름한 창백하고 빛다운 빛없는 그늘진 긴 복도가 영화 메트로폴리탄의 무성영화처럼 느껴졌다. 실내화를 갖고 오지 않은 날은 15개의 교실이 무표정하게 줄지어 있는 복도를 지나 교실 끝까지 갈 때  발이 시리고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처벌을 주는 그런 기분이었다. 친구도 없었고 새로 온 동네에도 적응을 하지 못했다. 선생님들은 조용한 나를 그저 착한 아이로 생각하기만 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라고 바뀌던 시절  12살, 5학년이 되었다.


전봇대 주변에 쓰레기봉투가 어지럽혀진 골목길을 지나던 모퉁이에서 인테리어 가게에서 버린 원단 카탈로그를 주웠다. 그 카탈로그 원단에는 파스텔 톤의 꽃무늬와 헤링본 패턴, 페이즐리 패턴들이  바인딩되어 책자처럼 되어 있었다. 그 원단으로 인형 옷을 만들기도 하고 연극에 쓰일 인형들도 만들기도 했다.

 

 동대문 중고서점에서는 아주 오래된 책 중에 곰팡이 내가 나는 과월호 잡지들도 많았는데  그 중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중고책을 골랐다.


TV에서 볼 법한 웅장한 풍경과 몽골 초원의 얼굴이 붉은 소녀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단 돈 500원이었는데 집에 꽂아두면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의 곰팡이내가 책장사이에서 폴폴 났다.  


 냄새가 나더라도 소유할 수 있는 것 중 내게 큰 가치 있는 것이라 여겼다.


당시에 친구들과 어울리며 학원을 다니는 시기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계기가 생겼다.


겨울방학 숙제로 나는 딱히 무엇을 만들만한 것이 없어서 천, 병뚜껑, 라면통으로 식물과 화분을 만들어서 냈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작품을 매우 특별히 여겼고  미적감각 있는 아이라 생각하셨는지 교무실에서 칭찬을 하며 미술을 해보라는 선생님의 의견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미화부장도 하게 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을학기를 맞이하여 학교 놀이터 청소를 담당했다.


수줍음 많고 조용했던 나는 쓰레기 줍기와 미화를 한다는 것에 굉장히 기쁨을 느끼며 성격이 활달해졌다. 친구들에게 그 많고 많은 낙엽들을 주워 담자고 명령을 내리고, 낙엽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친구들 이름을 호령하기도 했다.


마치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정당하고 값어치 있는 행동이자 의미 있고 놀이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 이후로 나는  경기도 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나의 미술실력을 체감했지만 중학교에 가서는 딱히 눈에 띌 만한 창의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사생대회에 나가서도 좋은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정해진 스킬을 익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험위주의 공교육을 거치면서 비교의식, 경쟁의식들로 순수하고 창의적인 열정들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창작과 예술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예술은 배울 수 있는 것인가. 감상자로서 샤갈과 세잔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색감과 형태에 미적 감동을 느끼는 것으로도 충분한 것일까도 생각했다. 물론 예술을 잘 배워서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 생각도 할껄 ...)



훌륭한 창작자가 되면 미야자키 하야오 혹은 스필버그의 버금가는 감독은 될 수 있으리라는 거대한 꿈도 있긴 했다.


그러나 중학생이 생각했던 예술은 사실 너무 막연했다.

그러나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 대신 창작을 할 수 있는 학교 진학을 선택했다. 좀 더 자유로운 사고를 하고 싶었다. 학교는 자율적이고 창작위주의 실습을 하였다. 그리고 학교 도서관을 많지 않지만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진중권작가의 미학 오디세이를 읽었다.


미학오디세이를 통해서 이해했던 것은  우리 인간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타고난 상태로 태어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결국 내가 쓰레기를 통해 아름다운 꽃 조형물을 만들고자 했던 것과  단 돈 500원에 담긴 인쇄에 고화질로 출력된 알래스카와 몽골의 대초원을 사서 그 기쁨과 황홀을 느끼는 것도 하나의 예술이었던 셈이다.


 





두 번째 생활예술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실 혼자서 생쇼였다. 라이브쇼라고 하자.


여름에 정전이 된 적이 있었다 그때 무심코 켠 손전등 뒤로 보이는 벽에 비치는 그림자는

가보지 않았던 우랄산맥이라고 이름 지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놀이를 하던 나는 나중에 흥미로운 작가를 알게 되었다.


쓰레기와 고철로 그림자 형상을 재창조하는 tim novel & Sue Webster 작가였다.

듀오로 결성한 그들은 쓰레기로 자신의 옆모습을 그림자로 만들어낸 것이다.

저 쓰레기에 빛이 없었더라면 저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었을까?

Shadows by Tim Noble & Sue Webster


플라톤이 말한 동굴의 세계와 동굴 밖의 세계는 매우 달랐다. 그러나 동굴 안의 사람들은 새로움,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고 알고자 했다. 작가의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는 쓰레기를 미지의 세계로 여겼고, 그것을 새롭게 상상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어둡고 찬란하지 않은 시대적 배경과 개인적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문학에서 더 많이 발생했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내면적 에너지가 큰 원동력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예민하고 남들보다 다르게 보는 능력을 갖고 있는 심미안과 감각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내면적 자유를 허하지 않을 때 가장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스러운 환경에도 불구하고도 예술가들을 창작을 향해 나아간다.



 결국 가장 어두운 밑바닥,  혹은 우리가 미적으로 아름답고 여기지 않았던 곳에서 예술이 탄생할 수 있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으로 인해 돈을 탕진하고 감옥에서  글을 썼다. 인간의 번민하는 갈등과  심리를 섬세하게 탁월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그의 소설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통해 탄생할 수 있었다.


대학생 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 빠졌던 이유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지만

창조적 능력은 삶의 응축된 단면을 펼쳐내고 독창적으로 만들어낸다.


결국,  자신 개인의 가장 응축되고 닫혀 있던 한 면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학습과 자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나의 주변을 돌아보며,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힘과

개인 스스로가  예술과 창작이 인생의 하나의 디딤돌이 되어 나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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