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체념 사이

삼십 대의 꿈이라는 것은...

by Another Kind of

"한 때는 잘 나갔었죠. 스물두 살 때 저 데뷔 첫 해에 대극장 공연부터 시작했으니까요. 근데 막 시작하려던 그때, 여자를 잘못 만났어요. 제가 열심히 레슨 받고 트레이닝하는 걸 이해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그 여자에게 올인했죠. 회식자리에서 한 번은 어떤 형이 저한테 그랬어요. '넌 왜 막내가 항상 집에서 일찍 가?!' 전 이렇게 말했죠.

'여자친구 때문에... '그때가 가장 후회스러워요. 결국 헤어졌으니까."


뮤지컬 배우인가 보다. 지루한 주말을 견디기 어려워 혼자서 카페에 왔다. 비가 와서 휑한 카페 안에 딱 한 테이블에 두 남자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비가 와서 인지, 아니면 배우여서 유난히 큰 성량 때문인지 한 남자가 하는 말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물론, 억지로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다 사실 나는 카페에 가만히 앉아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의 사연 속에 잠시 들어가 그 사람의 마음에 공감도 해보고, 가끔씩은 왜 저럴까 하면서 은근슬쩍 흉보는 것도 - 사실은 재미가 있다.


"다시 열심히 해서 돌아가야죠. 사실 저는 정상에 올라가 본 적도 없이 지금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다시 열심히 해봐야죠."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나가버린 나의 열정이 생각났다. '지나가버렸다'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나도 아직 청춘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말이다. 열정이라는 것은 항상 멋지고,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하면 겁이 나기도 한다. 그것이 얼마큼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도 잘 아는, 그런 나이가 되었으니까.


한 때는 나도 그랬다. 성공,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어 불특정 다수의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는 일에 목메었던 것 같다. 어쩌면 지금도 진행 중일 수 있는 나의 그런 모습. 이십 대를 내내 그렇게 보냈다. 지금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고 늘 더 나은 나를 원했다. 항상 배우고 무엇이든 시도했다. 그리고 특별히 이룬 것은 없었다. 이루었을지라도- 그 모든 것이 마냥 다 의미 없고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그런 허무함과 우울감에 쌓여 1-2년을 보내고서는, 결국 모든 것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남들처럼 무언가 다른 배울 것이 생겨서도 아니었고, 이직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더 이상 그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휴식을 위한 것도 아니고 관광을 위한 것도 아닌 몇 달간의 여행 후,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어느 정도 치유가 되어있었고, 나를 괴롭히던 몸과 마음의 이상도 많이 치유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야 할지도 어느 정도는 가닥이 잡히게 되었다.


물론 그 가닥은 사실, 매일 같은 듯 다른 하루를 맞이하면서 흔들리고, 또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의미가 없었던 그때보다는 조금 더 견딜만하고 - 조금 덜 방황하는 것 같다. 성공이나 인정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뭐랄까, 좀 안심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치열했던 열정이 있던 그 시기가 마냥 그립기도 하다. 지금은 좀 '그런 거지 뭐' 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많으니.

너무 체념하지만 않게 나를 좀 트레이닝하련다. 그리고 긴 호흡으로 - 포기하지 않고 ( 엄청 열심히라는 말은 이제 못 하겠다. 나를 잘 알기 때문에..) 이 길을 계속 걸어가 보련다.

아니 사실, 걸어갈 길이 이 길밖에는 남아있지 않으니.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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